16년 최순실 사건 이후 이화여대 직선제 전환하며 촉발
성신여대·덕성여대도 잇따라 실시…동덕여대는 학생 요구에도 결국 불발
숙대는 총장직선제 TFT 구성 중…기존 선거권 있던 교수들은 소극적 움직임 '걸림돌'
전체대학 70%가 이사회 임명제로 직선제는 5%내외…공학 대비 여대 직선제 비율↑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11일 교내에서 학생이 참여하는 총장 직선제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11일 교내에서 학생이 참여하는 총장 직선제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총장님, ‘간식’ 말고 ‘투표권’ 주세요. 학생들이 어떤 문제에 처해 있는지, 어떤 교육을 원하는지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는 총장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고 싶습니다.”

대학가에 총장 선출 ‘직선제’ 요구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전체 대학 중 여대의 투표권 쟁취 움직임이 활발한 모양새다. 국내에 여자대학은 7곳. 이중 이화여대와 성신여대, 덕성여대가 총장 직선제를 이뤘다. 지난해 한차례 총장 직선제 요구가 빗발쳤던 동덕여대에 이어 최근에는 숙명여대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이어가면서 대부분의 여대가 ‘투표권’ 쟁취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국내 사립대 중 직선제를 통해 총장을 선출하는 대학이 5%인 점을 고려하면 여대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지난 11일 교내에서 학생이 참여하는 총장 직선제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교수들만의 밀실 선거와 이사회의 지명으로 선출된 총장이 우리 대학을 대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총장 선출 과정에도 학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을 비롯한 구성원들이 순조롭게 총장 선출 투표권을 쟁취한 이화여대와 성신여대, 덕성여대와는 달리, 숙명여대는 ‘교수’들의 이견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숙명여대는 그간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한 교수회의에서 최종 후보 2명을 정한 뒤 이사회가 총장을 뽑는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했다. “이왕에 투표권을 갖고 있던 숙대 교수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나누는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게 숙명여대 학생·직원 관계자들의 말이다. 총학생회 측은 ‘학생 참여’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며 지난달 10일부터 캠퍼스 내 노숙 농성도 이어가고 있다.

학생들은 학내 거버넌스에 학생이 본부와 대등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 바로 학생 참여 총장직선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 나수빈 씨는 “교수들만이 참여한 선거와 이사회 임명으로 선출된 총장은 대학의 모든 구성원을 대표할 수 없다”면서 “학생이 총장 선거의 유권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대학의 구성원이 아닌 객체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총장 임명제와 간선제를 통해 총장을 선임하고 있다. 전체 사립대 130여 곳 가운데 72%에 달하는 99개 대학에서 임명제에 따라 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임했다. 대학 구성원 참여 없이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방식이다. 나머지도 대부분 ‘간선제’를 택하고 있다. 직선제로 총장을 뽑는 대학은 5%(7곳)에 불과했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사립대학 총장선출 실태 전수조사’에 따른 결과다.

여대 중에서 가장 먼저 총장 직선제를 이룬 대학은 이화여대다. 이화여대는 2017년 개교 131년 만에 처음으로 총장 직선제 투표를 했다. 당시 선거에서 김혜숙 총장이 학생 유효투표수 9835표 가운데 9384표(95.4%)를 얻어 선출됐다.

이후 성신여대가 지난해 1936년 건학 이래 처음으로 교수·직원·학생·동문 등 학내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총장 직선제를 시행했다. 심화진 전 총장이 교비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게 총장 선출 방식의 전환 계기가 됐다. 성신여대는 최근까지 이사회가 총장을 임명해왔다.

덕성여대도 현재의 제11대 총장 선출부터 직선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제11대 총장 임용 후보자 선거는 교수, 직원, 학생, 동문이 참여했다. 특히 결선 투표에서 현 강수경 총장은 선거 참여 학생 유효 득표 수 3444명 중 3386명(98.3%)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주요 사립대 중 학내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 직접 총장을 뽑은 대학은 이화여대와 성신여대, 덕성여대로 여대에서만 이뤄졌다.

여대의 총장 직선제 선출은 지난 2016년 비선실세 최순실 사건에서 촉발됐다. 당시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학 비리 사건이 터진 후 최경희 전 총장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도입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대 교수는 “여전히 많은 대학이 총장선출 방식에 대한 민주적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여대에서는 직선제 전환이 비교적 눈에 띄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는 여성들의 권리 찾기 인식이 확산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화여대 입시비리로 얽혔던 최순실 사건이 터지며 촉발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사립대의 경우 대부분의 운영비가 등록금으로 꾸려져 학생들의 권리 찾기 움직임에 힘을 싣고 있다”며 “직선제에 바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총장 후보를 평가하는 정책평가단 제도를 실시한 연세대처럼 학생들의 참여 기회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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