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린 길레스피 지음 윤승희 옮김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한국대학신문 신지원 기자] 개와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도 나날이 확장되는 오늘날, 한구석에 여전히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반려동물보다도 우리 일상에 더 깊게 얽혀 있는 동물들, 바로 소, 돼지, 닭과 같이 고기로 키워지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가끔 뉴스를 통해 상기하게 될 뿐이다. 구제역, 돼지열병, 조류독감 같은 질병의 이름과 함께 수백만 마리가 신속하게 생명을 빼앗긴다. 주인에게 머리를 비비는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동영상을 보며 웃다 보면 때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소와 돼지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을까? 반려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자라날수록 더욱 짙어지는 이 그림자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동물 도축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이중사고가 흔하게 발생하는 지점이다. 성인이라면 대부분 잠깐만 생각해봐도 고기가 죽은 동물에서 나오고 동물들은 그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죽인다는 것은 당연히 살아있는 동물에 대한 폭력과 기본 권리의 침해를 동반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에 능숙한 전문가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기가 어디서 생기는지 기억하는 것 자체를 감쪽같이 잊거나, 상품으로 고기를 준비하고 생산하는 데 따르는 고통에 대한 더 깊은 사유를 뒤로 미룬다.

비판적동물연구학자이자 채식주의자인 작가 캐스린 길레스피는 농장, 경매장, 도축장을 직접 탐방하며 기록한 이 고발적 르포르타주를 통해 우리가 매일 먹는 고기가 어떤 폭력의 산물인지 낱낱이 밝힌다. 심지어 고기를 먹지 않아도 우유, 달걀 등 비육류 동물성 식품의 생산 과정에서도 필연적으로 동물들은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소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임신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린 송아지를 어미로부터 강제로 떼어놓아야 한다. 닭 역시 효율적인 달걀 생산을 위해 의도적으로 품종 계량을 거쳐 하루에 한 번씩 알을 낳는, 자연 상태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몸으로 진화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모든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그렇게 진짜로 잊어버린다. 이 책은 그렇게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을 우리의 눈앞에 정면으로 들이민다.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사육되는 수백, 수천만 마리 동물들의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보고 모든 동물들이 상품이 아닌 한 생명으로서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묻는다. 작가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착취당하다가 동물피난처로 와 여생을 살게 된 동물들을 만나고, 그들 하나하나가 각각의 개성과 삶의 발자취를 가지고 있는 생명임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상품화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의 순환 고리에 맞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와 대조되는 사육 동물들의 비참한 처지가 더욱 부각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문제를 인정하고 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해 진정한 동물 해방을 이룰 힘이 있다.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한 다양한 방법들을 깊이 고민해본다면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 하나의 온전한 생명으로 동물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인간과 동물의 상생의 길을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생각의 길 /1만8000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