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지상주의' 타파 시급

새 정부의 첫 내각 인선을 지켜본 학벌타파를 주장하는 ‘학벌없는사회’는 “차라리 서울대 공화국이라고 선포하라”며 고위 공직에서 특정학벌이 독점적인 비율을 차지한 것을 비판했다. 이번 조각에서 총리를 비롯해 장관 및 국무조정실장 21명 중 13명이 서울대 학부 출신이며, 청와대 참모진 중 80% 이상이 서울대 학부 출신으로 비율만 보면 청와대는 가히 ‘서울대 공화국’이라는 것. 고위 공직자 임명만이 아니다. 한국교육개발원 홍영란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31%는 신입사원 채용시 ‘학력’을 포함시켜 출신대학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 연구위원이 기업종사자 5백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 서류전형에서 학벌을 중시한다는 응답이 38.7%에 달했으며, 명문대 출신일 경우 가산점을 준다는 응답이 37.1%로 ‘그렇지 않다’(32.0%)는 답보다 많았다. 전문가들은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학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방의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실을 타개할 수 없으며, 공교육 강화와 지방대 육성이라는 정부의 교육개혁은 물론 사회개혁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서울대를 필두로 한 대학 서열체제가 입시를 통해 능력서열로 인정돼 학벌주의 사회구조가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만큼 서울대 개혁과 지방인재 지원방안, 입시제도 개선 등이 실행돼야 한다는 것. 서울대 개방론부터 민영화, 폐교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울대 개혁론이 나오고 있으며 지방대 출신의 취업기회 확대를 위한 인재할당제를 실시하고 대학 서열화의 못자리인 입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먼저 홍훈 연세대 교수(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는 현대판 신분제도인 학벌 문제를 해결하려면 권력 편중 현상을 해체하고 낮은 서열의 대학을 육성하며 입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의 경우 학부를 전국의 국립대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개편해야 하며, 공직 임명시 특정대학의 비율이 30%를 넘지 않도록 공직독점을 금지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역간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서는 전국의 거점국립대학을 육성해야 한다”며 “지방국립대에 대한 특단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영섭 건국대 교수(학벌없는 사회만들기 대표)는 “우리 대학은 전국적으로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형 피라미드가 확고하게 자리 잡아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위치, 국립과 사립이라는 위상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고 있다”며 “수도권 집중과 국·사립대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국·사립간 등록금 수준을 평준화하고 지방대 학생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정 교수는 국·사립 대학간에 기능상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편파지원을 시정, 공정한 여건을 만들어 각 대학이 역량을 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방대 육성은 돈 몇 푼을 지원해 준다고 대세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수요자들의 선택과 대학 자체 역량에 의해 존폐가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입시제도와 관련, 홍훈 교수는 수능시험을 점차 자격고사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는 “중·고교와 대학의 관계를 끊어야 대학 서열화를 완화할 수 있다”며 “수능에서 백분율 총점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또 “대교협과 같은 민간기구에서 정부 예산을 지원 받아 ‘복덕방’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학생들이 한 곳에 원서를 내면 적성 등을 고려해 대학에 알려주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학벌주의 철폐를 명분으로 교육의 획일화, 하향평준화를 시도해서는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달 개최한 정책포럼에서 이종각 강원대 교수는 “서울대를 폐지한다고 해서 학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자칫 능력중시 사회를 만든다면서 실력중시 풍토마저 없애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명문대의 존재가 아니라, 한번 지방대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불합리한 인력관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학벌주의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후 사회 진입시스템과 진입후 승진사다리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능력기반 보상체계를 확립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체제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