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니 목소리를 넘어 절규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이하 사총협)는 재정난 가중으로 고등교육 붕괴 위기가 우려되자 11월 15일 등록금 인상을 결의했다.

사총협은 결의문에서 “지난 10여 년간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인해 대학재정은 황폐화됐고, 교육환경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 시설 확충과 우수 교원 확보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도 움직였다. 대교협은 대학기본역량진단과 대학혁신지원사업 등 핵심 고등교육정책의 개선을 촉구하며, 4일 교육부와 기획재정부에 대정부 건의문을 제출했다.

대교협의 대정부 건의문은 대학 공동체의 당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절박함의 방증이다. 그동안 대교협은 등록금 동결·인하 정책, 입학금 폐지, 학령인구 감소 등에 따른 재정난과 고등교육 질적 저하를 방지하기 위한 재정 확충 방안과 규제 개선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궁금하다. 전 세계적으로 명색이 선진국이고 자유 민주주의국가를 표방하는데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결의하고, 정부에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나라가 있을 것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겉으로 선진국을 표방하지만, 정책 수준은 후진국이다.

정시확대는 희대의 코미디다. 물론 대입 공정성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정시확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입에서 공정성 못지않게 안정성이 중요하기에 대입예고제가 도입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돌연 정시확대를 추진하더니 올해는 대통령까지 나서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다고 정시가 공정하다는 근거와 자료도 없다. 더군다나 또 한 차례 대입 개편이 예고되고 있다. 어느 정부에서 이토록 대입제도가 흔들리고, 불안할 것인가.

결국 문재인 정부의 철학 부재가 대학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교육부는 8월 대학혁신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대학혁신 지원방안의 정책기조는 ‘혁신의 주체로 서는 대학, 대학의 자율혁신을 지원하는 지역과 정부’다. 그리고 대학혁신 지원방안의 비전은 ‘대학의 자율 혁신을 통한 미래인재 양성’”이다. 이 또한 허울뿐이다. 대학에 대한 통제와 간섭이 강화되고, 대학 재정은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으며, 대입제도는 정치논리에 휘말리고 있다. 대학은 혁신의 주체 아니라 정부정책의 희생양에 불과하다.

반대로 선진국에서는 대학가가 정부를 신뢰한다. 정부가 대학의 자율을 존중하면서도, 대학 경쟁력 강화와 고등교육혁신에 투자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학 경쟁력 강화와 고등교육혁신에 대한 투자는 고스란히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되레 정부가 대학의 발목을 잡으니 국가 경쟁력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IMD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교육경쟁력(25위), 대학교육 적절성(49위) 차원에서 세계 중하위권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얼마 전 반환점을 돌았다. 문재인 정부 고등교육정책의 중간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다행히도 기회는 있다. 이제는 여론과 정치적 계산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대학 경쟁력을 고민할 때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3대 교육 혁신 방안의 하나로 등록금 인상 자율화 등 대학의 자율성 강화를 제시했다. “정부는 대학이 자율 혁신, 특성화와 구조조정을 주도하도록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대학 스스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되는 교육과정 혁신을 추진함으로써 대학 유형 다양화와 대학 시스템 구조조정을 도모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주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조속히 철학 부재의 오명에서 벗어나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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