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 서정대학교 교수

조훈 서정대학교 교수
조훈 서정대학교 교수

손흥민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70미터를 질주하며,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선수 7명을 제치고, 번리의 골망을 통렬하게 흔들었다. 손흥민은 인터뷰에서 패스할 타임을 놓치자 스스로 ‘질주의 부스터’를 가동했다고 답했다.

손흥민의 ‘질주의 부스터’에 우리가 열광하는 것은 질주의 시원함과 이를 혼자서 단기필마로 이끄는 영웅적인 행위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기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단기필마로 기업세계를 변혁의 소용돌이로 만들어 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의 설립자이자 최고 경영자(CEO)로 유명하다. 온라인 서점에 불과했던 아마존을 ‘에브리싱(Everything)컴퍼니’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질주의 속도는 손흥민급이다. 경쟁기업들이 손쓸 틈도 없이 이리저리 휘집고 다닌다. 무인편의점인 ‘아마존 고’는 소매·유통분야 게임의 논리를 송두리째 바꿔 나가고 있다. ‘아마존에서는 데이터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Data is king at Amazon)’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주장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어린 시절 우주비행사의 꿈을 가졌던 그는 2000년에 이미 개인회사인 ‘블루 오리진’을 창업, ‘우주생활’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창업 20여 년만에 세계 최강의 기업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대학의 혁신에 관심을 가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이미 모든 대학의 레거시(유산)를 버리고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대학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지금까지 대학의 자산은 하나도 쓸모가 없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마존 고’를 만들고 ‘홀 푸드’라는 기존 대형 체인점을 인수하듯이 새로운 개념의 대학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명문대학들을 사들이면 그만이다. ‘알맹이는 혁신으로, 껍데기는 과거의 명성으로’ 채우면 되는 것이다.

지난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과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한 ‘대정부 건의안’을 제출했다. 절박함의 반영이다. 지속적인 대학등록금 동결과 급격한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재정 악화는 이미 현실화된 지 오래다. 짜여진 재정규모를 가지고 제로섬 게임을 위한 상대평가를 준비하는 대학에게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배고픔이 절박함으로, 절박함이 혁신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혁신보다 생존을 위한 ‘좀비대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들어올 수 없는 대학, 혁신가가 들어올 수 없는 대학에 질주본능을 가지고 있는 손흥민이나 기업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꾸는 혁신가 제프 베조스의 출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난 1주일 동안 9000 시간의 강의가 제공되고, 120개의 연구논문이 발간되며, 1180만 싱가포르 달러의 보조금을 받는다. 7건의 기술 공개가 일어나고, 2명의 교수진 변화가 있다.”  7월 방문한 윤호섭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 교수의 이야기다.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대학으로서, 윤 교수는 대학연구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대학의 질주‘는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실제로 한국의 카이스트를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던 난양공과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의 아이콘이 됐다. 그들의 힘은 대학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협업을 통해서 나온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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