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칼럼] 자율도 분배되는 우리나라 대학
[리더스 칼럼] 자율도 분배되는 우리나라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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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대학이 아우성이다.

11월 28일 교육부가 서울 16개 주요대학의 정시 비중을 ‘40%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입학처장들이 “학생선발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앞서 11월 15일에는 전국 사립대학 총장들이 “2020학년도부터 등록금 자율책정권을 행사하겠다”며 정부의 등록금 동결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또 교육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 계획’ 시안에 대해 전국대학노조는 “‘무늬만 자율’일 뿐 교육부 주도 구조조정 계획”이라며 폐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총장, 교수, 교직원 등 목소리의 주체는 다양하지만 내용은 한결같이 ‘대학의 자율성 보장’이다. 속내는 과도한 정부의 통제와 가이드라인으로 학생 선발, 재정, 정원 운용 자율조차 ‘분배’되는 대학 현실에서 벗어나자는 결의임에 틀림없다.

입시 매몰 대학정책…선발 자율성 침해
교육부는 11월 28일 대입 공정성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고려대‧서울대 등 서울지역 16개 주요대학에 대해 2023학년도부터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교육부가 ‘유도’ ‘권고’라는 표현을 써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시 확대를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과 연계하겠다고 안내하고 있어서다.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면 반드시 정시 확대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게 친절한 교육부의 설명이다.

대학 사회가 들끓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입시부정 의혹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제도의 탓으로 불똥이 튀더니, 결국 대학의 자율성 침해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대학의 학생 선발권이 정치 포퓰리즘의 희생양이 된 꼴이다.

하지만 10년여 간의 등록금 동결정책으로 재정난에 놓인 대학들이 정시 확대를 거부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가 돈 줄을 틀어막고, 강요된 자율을 분배하는 형국이다. 이래서는 대학의 재정 여건이 자율성에 ‘반비례’하게 될 지경이다.

인재양성의 산실인 대학에 자율적인 학생 선발과 학사 운영은 생명과도 같다. 정권의 이념과 정치적 부침에 따라 좌우돼서는 대학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생존 자율 위협하는 등록금 동결정책
대학의 재정 자율성도 실종된 지 오래다. 여파가 교육환경을 황폐화하는 것을 넘어 대학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2009년 시작된 반값등록금정책으로 대학 등록금은 10여 년째 사실상 동결 상태다. 대학 입학금도 대통령의 폐지 공약에 따라 국‧공립대는 2018년 전면 폐지됐고, 사립대는 2022년까지 폐지된다. 때문에 대학의 실질 재정은 크게 줄고 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OECD 교육지표 2019’에 따르면 대학의 정부 재원 비율은 GDP 대비 0.7%로 OECD 평균 0.9%보다 낮다. 반면 민간 재원 비율은 1.1%로 OECD 평균 0.5%의 두 배가 넘는다. 학부모 주머니에 의존하는 처지인 셈이다.

그럼에도 고등교육 부문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은 1만486달러로 OECD 평균 1만5556달러의 67%에 불과하다. 10조원 남짓한 1년 고등교육 예산의 절반 가까이는 장학금이다.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나머지 예산의 절반 정도가 교육과 연구에 쓰일 뿐이다.

교육여건 악화는 불 보듯 자명하다. 실제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분석에 따르면 기계‧기구매입비, 연구비, 실험실습비, 도서구입비 등이 2011년 이후 150억원~600억원 이상 감소했다. 학교 건물에 물이 새는 데 예산이 없어 한동안 수리를 못하고, 학회지 구독을 끊거나, 우수 교수진을 모시려다 적은 연봉에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볼멘소리가 특정 대학만의 현실은 아니다.

대학 경쟁력 지표도 하락하고 있다. 2011년 39위였던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대학교육경쟁력평가 순위가 2017년 53위까지 떨어졌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교육시스템의 질’ 부분이 2011년 142개국 가운데 55위에서 2017년 137개국 가운데 81위로 급락했다. 물론 이런 순위가 절대적인 바로미터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내부혁신과 성장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대학이 있을까.

오죽하면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11월 정기총회에서 “2020학년도부터 법정 인상률 범위 내에서 등록금 자율책정권을 행사하겠다”고 결의했겠는가. 물론 현행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직전 3개년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율 아닌 자율일 뿐이다. 등록금 인상 시 각종 재정지원사업과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 대상 제외 등 불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립대 총장들이 반기를 든 것은 대학 재정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방증이다. 재정 자율이 분배되고 분배된 자율조차 평가와 재정 지원을 연계, 강요하는 현실이 대학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호소다.

재정 지원이라는 인공호흡기에만 매달려서는 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기대할 수 없다. 대학 고유의 특성을 발전시키거나,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응하는 인재 양성도 요원하다. 충분하고 안정적인 대학 재정 확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고등교육 예산을 GDP 대비 1% 이상으로 확대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재정 지원과 연계한 규제와 통제를 거두고, 등록금 동결정책을 일정 부분 완화하는 등 대학의 재정 자율성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자율 가장한 ‘관 주도’ 구조조정 ‘2021 진단’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 시안’도 자율을 가장한 ‘관 주도’ 구조조정이라는 비판이 높다. 교육부는 8월 발표에서 진단과 정원 감축을 연계하지 않겠다며 대학의 ‘자율혁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배점을 높임으로써 사실상 무늬만 자율일 뿐, 기존의 교육부 주도 정원감축 구조조정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대학들은 2021 진단에서 일반재정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려면 반영비율이 대폭 확대된 신입생‧재학생 충원율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학생 모집이 어려운 대학들은 미리 정원을 줄여 충원율을 100%에 맞춰야 한다. 결국 정원 자율권을 분배했지만 역시 강요된 자율일 뿐이다. 재정을 무기로 획일적 평가와 연계해 정원 운용의 자율을 강제하는 식은 더 이상 말아야 한다.

충원율로 대학을 낙인찍는 것은 학령인구 감소 책임을 대학에만 돌리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저출산 시대를 맞아 이제는 성인 학습자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평생학습이 중요한 만큼 대학의 인적‧물적 자원을 평생교육과 재교육에 더욱 활용하고, 이를 위해 정부의 행‧재정적 뒷받침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10월 25일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대학이 자율 혁신, 특성화와 구조조정을 주도하도록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대학의 자생적 경쟁력 강화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재정 자율성을 확대, 등록금 인상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는 결코 이를 권고로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우리 헌법에 명시된 ‘대학의 자율성 보장’은 대학입시 문제도 대학에서 책임지고 할 일이고, 등록금도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책정할 일이며, 대학경영과 존폐 문제 역시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임을 뜻한다. 요컨대 정권이나 정치가 대학의 자율을 분배하고 통제하는 국가는 대학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암울할 뿐임을 거듭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정기총회 모습(한국대학신문 DB)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정기총회 모습(한국대학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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