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재은 가천대 교수

한국 대학은 그 어느 때보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상 유례 없는 대학인구절벽이 진행되는 가운데, 산업구조와 인력 수요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는 지난 11년 동안 대학사회를 옥죄고 있는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인해 더욱 가중되고 있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해 대학재정 적자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학교육 혁신을 위한 투자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대학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대학 경쟁력 확보’가 대부분 대학에는 공허한 구호가 되고, ‘대학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종전처럼 대학재정지원사업을 부지런히 수주해야 할까?

그러나 사업 참여 관계자들은 수도권 및 지방대학특성화사업, 학부교육선도대학사업 등이 대학 혁신을 위한 동력이 되기는 했지만 대학재정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개별 사업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실행해야 사업들이 많아서 대학재정 대체비율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신없이 수주한 대학재정지원사업이 대학의 위기를 가져오는 아이러니도 발생하고 있다. 각 사업별 요구에 맞춰 학과와 대학 조직을 빈번히 개편하는 과정에서 구성원 간 갈등과 대학운영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을 고려할 때 이제는 무조건적으로 대학재정지원사업 수주를 위해 전력을 다하기보다는, 해당 사업이 각 대학의 발전계획과 특성화 전략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실제 대학재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재정지원사업 수주가 ‘대학 위상 제고와 신입생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추정하기보다는, 각 대학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실제 기여할 것인지를 면밀히 따져보고 사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정지원사업의 종결과 함께 정부 예산 지원은 중단되지만, 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대학 조직과 채용 인력이 쉽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규 사업으로 인한 재정 수입 대비 지출액만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사업 실행을 위한 학과개편과 그로 인한 갈등, 교수와 사업담당자 충원, 공간 재설계 등의 부대비용을 모두 고려하는 ‘대학재정지원사업 비용효과분석 시스템’을 대학 내에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미국 대학이 1970년대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입한 ‘등록경영(enrollment management)’ 기법을 한국 대학들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등록경영은 각 대학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신입생을 충원하고, 유지하기 위해 학내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기법이다.

미시간대(The University of Michigan)의 경우 등록경영을 총괄하는 ‘등록경영처(The Office of Enrollment Management: OEM)’를 설치하고 교내 4개 부서(입학처, 장학처, 학생처, 학사처)와 협력해 전략적인 학생등록 관리를 실현하고 있다. 즉 학생 선발, 장학금 지원, 학생 역량 개발 지원, 그리고 교육성과 관리를 긴밀히 연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학생 등록관리의 효과성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등록경영 기법은 단순히 신입생 확보와 중도탈락 방지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각 대학이 타 대학과 구분되는 ‘차별성’을 찾고 그에 부합하는 인재를 발굴,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할 때 학생과 대학 모두 성공한다는 데에 핵심이 있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한국 대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정지원사업이나 외부평가 트렌드에 맞춰 대학경영 전략을 수시로 변경하기보다는, 각 대학의 비전과 인재상에 맞춰 내실 있는 경영을 할 때 대학의 지속가능성도 커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은 한국 대학들이 ‘급변하는 시대, 본질에 집중하라’라는 익숙하나 실천하기 어려운 위기 대응 전략의 의미와 구체적인 실행에 대해 곱씹어 볼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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