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인권센터 설립 본격화로 양적 팽창은 이뤄
다수 대학 서 인권침해 사례 多
전문가들, 인권센터 기능 강화 및 학내 규정 강화해야
외부기제 통해 행정적 조치 강화할 필요도 있어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대학 인권센터가 협의회와 워크숍 등을 통해 전문성 강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인권센터의 역할이 여전히 부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대에서 열린 '대학 인권센터의 전문성 향상과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전국 규모의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부산대에서 열린 '대학 인권센터의 전문성 향상과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전국 규모의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9일과 10일 부산대에서 대학 인권센터의 전문성 향상과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전국 규모의 워크숍을 공동 개최했다. 전국 43개 대학 인권센터와 인권위 참석자들이 △사례 연구 △인권·성평등 사건 처리 절차에 대한 이해 △대학 인권센터 현안 논의와 인권센터의 나아갈 방향 등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62개 대학이 참여하는 ‘대학 인권센터 협의회’가 발족됐다.

이기춘 부산대 인권센터장은 “워크숍을 통해 대학은 물론 지역사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보장과 성평등 문화 조성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길 기대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나 대학 내 벌어지는 권력형 성문제에 대해 학교 및 인권센터의 태도와 대책 마련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인권침해 사례 빈번…인권센터 역할에는 비판 =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은 2018년 인권센터를 개소했다. 학교는 인권센터 설립으로 각종 인권침해 행위가 줄어들고, 양성 평등과 피해자 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H교수 성비위 사건에서 한예종 학생들은 인권센터가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징계 절차상의 문제부터 징계의 수위까지 깜깜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학생들은 교수에 대한 재징계는 물론 인권센터의 내실화와 분리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도 인권센터의 규모가 크지만 역할을 두고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서울대 한 학생은 A교수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며 인권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성추행으로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센터가 교수에게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리면서 이 학생은 실명 대자보를 붙여 A교수를 고발했다. 서울대에서는 ‘A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특위)’가 꾸려졌고, 특위는 인권센터의 징계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전남대에서도 대학원생이 같은 과 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했지만 인권센터의 후속 조처는 미흡하게 진행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과 분리를 요구하는 피해자의 요구에 학교 측은 경고를 주거나 자리 배치를 멀리하는 정도의 조치에 그쳤다고 학생들은 주장했다.

지난해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는 신입생 대상 인권교육 도중 인권센터 소속 강사가 성추행 교수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교수 성추행 사례를 보여주며 “교수가 술을 마시고 한 실수이며 학생들은 자리를 피하라”고 했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나왔다. 향후 인권센터 측은 “강의 내용과 표현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해명했다.

노웅래 의원이 2017년 대학원생들과 '학생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법안'을 제출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DB)
노웅래 의원이 2017년 대학원생들과 '학생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법안'을 제출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DB)

양적 개선은 이뤘지만 내실화 필요 목소리 높아= 인권센터는 2012년 이후 대학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인권위가 대학원생 인권센터 설립을 권고하면서부터다. 2016년에는 인권위가 대학원을 보유한 180여개 대학 총장과 교육부 장관에게 대학원생 인권장전 마련과 인권전담기구 설치 등을 권고하면서 인권센터 설립이 본격화됐다. 이후 당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 대학에 인권센터를 설치하도록 했다.

지난해 기준 전국 50여개 대학에 인권센터가 설립, 운영되면서 인권센터의 양적 개선은 이뤄졌지만, 질적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은 꾸준히 있어 왔다. 2015년 인권위가 전국 189개 대학의 대학원생 19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학원생들의 인권침해 상황은 심각했다. 공동수행 연구로 학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응답이 34.5%,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고도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25.%였다.

특정 학과에 해당되기는 하나, 가장 최근 인권위와 인권의학연구소가 공동 발표한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 상황 실태 조사’에서도 의대생들의 인권침해는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여학생의 70% 이상이 실습 병원의 교수나 레지던트, 인턴 등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학생의 37.4%는 성희롱을 경험한 적 있다고 밝혔다.

학내 규정 명문화·평가 등 외부요인 적용도 검토해야= 대학 인권센터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사항의 하나다.

전북대의 경우 지난해 교수들의 갑질과 성추행 등이 학내 문제로 떠오르면서 자구책으로 인권센터를 독립기구화했다. 기존 학생처 소속이던 인권센터를 별도 기구로 독립시키고, 별도 센터장 임명과 전문상담사, 행정인력도 충원했다고 밝혔다. 전북대 측은 “학내 다양한 인권 문제 발생으로 인권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할 필요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인권센터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정작용도 필요하지만 보다 세부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구가 독립되더라도 재정적·행정적으로 완전한 독립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서울대 인권 개선 과제와 발전 방향’이라는 제목의 연구에서 권리장전을 만들어 실효성을 보장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방법을 제언했다. 권리장전과 인권센터규정 및 징계규정 등 관련 규정들의 유기적 관계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리와 책임 이행을 위해 세부 영역에서 ‘인권지침’이나 ‘실무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면 코넬대는 ‘캠퍼스 행위규칙’에 △원칙과 정책 △학내 사법기구의 구성 △교육환경 유지를 위한 규율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규율 등으로 구성해 대학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학내 △행위규칙 △위반사항 △심의절차 및 징계절차 등의 세부 규율을 한데 모으고 있다.

강제된 자율 규제를 통해 외부기제가 작동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 대학의 인권전문 교수는 “학내 규정으로 해임과 파면 등 강력한 자체 징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시행하면 된다”며, 동시에 “대학 평가와 재정지원 연계 등의 방법”을 주문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대학 인권센터의 의의와 과제’라는 연구에서 외부기제로 자율규제가 촉발될 수 있다고 보고 정부와 인권위 등 관계기관의 개입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침해가 발생한 대학에 대해 국고 지원을 줄이거나 신입생 숫자를 감축하는 조치는 대학에서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조치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권센터의 설립·운영을 유도할 수도 있다. 더불어 인권센터 설립을 의무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홍 교수는 “대학에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인권센터 설립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면서도 “인권센터를 통해 인적·물적 자원 투입은 얼마나 필요한지 등에 대한 검토가 세심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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