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장학금 문제없다’는 지자체들…명문대학 기준은 ‘중구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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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개 재단 중 19개 ‘마이웨이’…SKY·의치한 등 장학금 ‘개선 안해’
제3자 진정에 각하 결정, 의견 표명 그친 인권위…무시해도 불이익 없어
동일한 대학이어도 취급은 천차만별, 지정 기준 관련 지자체 해명 ‘전무’
인권위, “지자체 장학제도 학벌주의 만든 부적절 관념” 지적
(사진=한국대학신문DB)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방자치단체들의 근거 없는 ‘명문대 장학금 몰아주기’에 차별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제도개선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적을 받은 38개 지자체 장학재단 가운데 19개 기관이 앞으로도 출신학교에 따른 장학금 지급 차별제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은 인재양성과 경쟁력 향상 등의 필요성이 존재하며, 다른 장학제도를 통해 평등권도 침해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지만, 궁색한 변명에 불과해 보인다. 일단 지자체들이 말하는 ‘명문대’ 관련 기준부터가 ‘중구난방’이며, 해당 대학들을 선정한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권위 의견 무시하는 지자체들, 지적대상 절반은 ‘마이웨이’ = 인권위는 11일 지자체 장학재단이 소위 ‘SKY’ 등의 명문대학이나 ‘의대·치대·한의대’ 등 특정 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별도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학벌 차별’이라는 의견을 발표했다. 학벌주의는 대학 서열화와 지방대학 붕괴를 가져오고, 사회계층 단절·양극화를 가져온다며 이러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하지만, 인권위의 의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지자체가 많아서 문제다. 지적을 받은 지자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인권위의 의견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양상마저 띤다. 

이번 인권위 의견 표명은 ‘진정’으로부터 비롯됐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은 2년 전인 2018년 전국 지자체 장학재단 현황을 조사해 이 중 ‘명문대 장학금’을 시행 중인 장학재단 38개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이 중 19개 장학재단은 이미 관련 제도를 개선했거나 향후 개선 의사를 밝혔다. △평창장학회 △구례군인재육성기금 △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무주군교육발전장학재단까지 4개 장학재단은 앞서 인권위가 해당 제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명문대 장학금 폐지 의사를 밝혔다. 

나머지 15개 장학재단은 지역 의견 수렴을 거쳐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등 제도개선을 검토한다고 했다. 개선에 나설 예정인 15개 장학재단은 △양양군인재육성장학회 △인제군장학회 △남해군향토장학회 △산청군향토장학회 △의령군장학회 △창녕군인재육성장학재단 △하동군장학재단 △합천군교육발전위원회 △청도군인재육성장학회 △청송군인재육성장학회 △신안군장학재단 △해남군장학기금 △부안군나누미근농장재단 △괴산군민장학회 △예천군민장학회다. 

문제는 개선의사를 밝히지 않는 19개 장학재단이다. △양구군 양록장학회 △영월장학회 △증평군민장학회 △홍천군무궁화장학회 △화천군인재육성재단 △철원장학회 △고령군 교육발전위원회 △군위군교육발전위원회 △봉화군교육발전위원회 △영덕군교육발전위원회 △울진군장학재단 △무안군 승달장학회 △영암군민장학회 △순창군 옥천장학회 △완주군 애향장학회 △서천사랑장학회 △청양군 청양사랑인재육성장학회 △음성장학회 △보은군민장학회 등 전체의 절반이나 되는 19개 장학재단은 특정 대학·학과 진학에 따른 장학금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이들 장학재단이 인권위 의견도 불구하고 ‘마이웨이’를 외칠 수 있는 것은 인권위의 의견에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인권 침해나 차별 관련 진정이 들어오면 이를 조사해 권고·기각·각하 등의 결정을 내린다. 인권침해나 차별이 일어난 경우 행하는 권고 결정마저도 법적인 구속력은 전무하다. 개선 권고를 받은 기관이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 이를 강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이번 인권위의 ‘명문대 장학금’ 관련 지적은 ‘권고’가 아닌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 장학제도 관련 인권위에 진정을 낸 사교육걱정 소속 진정인은 직접 피해자가 아닌 제3자에 불과해 인권위법에 따라 ‘각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의견을 외부에 공표해 여론 등을 통한 사회적 압박을 가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지자체들이 ‘명문대 장학금’을 유지하더라도 받을 불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지자체들 ‘변명’ 적절한가…명문대 기준조차 제시 못 하는 지자체들 =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 보니 지자체에 명문대 장학금 폐지를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이들 지자체가 일체의 비판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자체들의 변명부터가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사교육걱정에 따르면, ‘명문대 장학금’ 유지 의사를 밝힌 지자체들은 여러 이유를 장학금을 유지해야 할 근거로 제시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 노력해 진학한 것에 대한 보상, 지역인재 양성, 지역 고교 경쟁력 향상 등이 장학금 유지 근거였다.

인권위는 학력 등을 이유로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한 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지자체들의 장학제도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고 지적했지만, 지자체들의 의견은 이와 달랐다. 다른 장학제도들이 있기에 차별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명문대 진학 시에만 주는 장학금이 있지만, 여타 장학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평등권을 침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지자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지자체들의 해명은 충분치 못하다고 봐야 한다. 일단 지자체들이 내세우는 ‘명문대’에 대한 기준부터 불명확한 상황이다. 장학제도 개선을 거부한 19개 지자체 장학재단의 가장 최근 장학생 모집 공고를 확인한 결과 제시된 소위 ‘우수대학’이나 ‘명문대학’들의 범위는 지자체마다 제각각이었다. 

조사 결과 모든 지자체는 ‘명문대학’으로 서울대·고려대·연세대·KAIST·포스텍의 5개 대학을 공통으로 제시했다. 음성장학회와 보은군민장학회, 봉화군교육발전위, 울진군장학재단 등은 이들 5개 대학만 대상으로 하는 장학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지자체들의 기준은 말 그대로 ‘중구난방’이었다. 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를 포함한 홍천군무궁화장학회가 있는가 하면, 경찰대학과 교대, 의치한약을 추가로 제시한 영암군민장학회도 존재했다. 서천사랑장학회는 경희대·서강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이화여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에 더해 교대·한국교원대와 경찰대학·사관학교 등을 전부 아우르는 넓은 범위를 자랑하기도 했다. 

특정 학과에 대한 지자체들의 생각도 사뭇 달랐다. 철원장학회, 영덕군교육발전위, 서천사랑장학회 등은 의대·치대·한의대를 장학금 지급 대상으로 제시한 반면, 영월장학회는 의치한에 더해 약대·수의대도 장학금을 줄 만한 학과라고 봤다. 영암군민장학회는 수의대를 제외하고, 의치한에 약대까지만 장학금을 줘야 한다고 규정했다. 

과기특성화대를 포함하는 기준도 지자체 마음대로였다. 영월장학회는 KAIST와 GIST, UNIST를 장학금 지급 대상에 넣으면서 DGIST는 언급하지 않았다. 무안군 승달장학회는 KAIST와 GIST만 언급하고, UNIST와 DGIST는 제외했다. 동일하게 국가 주도로 세워진 과학기술원들을 이처럼 다르게 취급하는 것에 대해 지자체들은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못했다. 

인권위는 이 부분을 의견을 표명하면서 함께 지적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을 통해 “지역 인재와 지역 위상을 드높인 자를 판단함에 있어 특정 학교와 학과 진학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특정학교나 학과를 지정한 기준은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용어 사용과 대학교명·학과명만 보더라도 과거 대학과 학과 순위를 매기고, 대입시험점수에 따라 진학하도록 해 학벌주의를 만든 부적절한 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꼬집었다. 

명문대의 기준을 내놓지 못하다 보니 지자체들이 내놓은 이유가 설득력을 얻기도 요원하다. 왜 특정 대학·학과에 입학하는 것이 고교 경쟁력 강화에 이어지는지,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력을 의미하는지도 불분명할뿐더러 동일한 의치한 진학이 A지역에서는 인정받는 반면, B지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설명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려움은 물론이다. 인권위의 지적처럼 지자체들이 내놓은 대학명단은 과거 만들어진 대학순위에 매몰돼있는 경향이 짙다. 입시결과나 통상적인 수험생 선호도 등도 일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정을 제기한 사교육걱정 역시 지자체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은 “지자체는 공공기관으로 차별을 완화하고 평등 사회를 구축해야 할 책임이 있다. 상당한 금액을 출연해 유지하는 장학재단이 평등권 침해 차별 요소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유감이다. 공공성을 해치는 학벌주의를 양산하고 있음에 대해 자성하고, 해당 제도를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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