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학습센터장

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학습센터장
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학습센터장

20년 전 2000년의 출발을 뉴 밀레니엄이라 부르며 우리사회는 상당히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1999년 12월 31일, 2개월 후면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종로 보신각 근처에서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새해를 알리는 타종이 울리는 순간, 새로운 천년과 앞으로의 나의 미래를 위한 기도를 드리다 문득 Y2K로 인한 전산시스템 마비로 혹시 대형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 대중들에게는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Y2K로 세상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상당했다.

나에게는 이렇게 선명하고 흥미로웠던 2000년 새해 맞이 이야기를 요즘 대학생들에게 들려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라떼는 말이야(기성세대가 종종 쓰는 `나 때는 말이야` 를 풍자하는 말)” 소리를 듣지 딱 좋지 않을까 싶다.

2020년 지금 우리 사회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가 과거 진리로 규정했던 기존 관념들이 허물어지고, 상식이라 여겼던 지식이 새롭게 재구성되는 시대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 사회에 가장 관심을 받았던 이슈들을 한번 살펴보자. 휴가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의 군복무 연장을 둘러싼 논쟁이나 AI 개발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윤리규정 제정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크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술발달과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 그리고 문화가치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기성세대는 '라떼는 말이야'는 일종의 주문처럼 외우게 된다. 어쩌면 이 표현은 새로운 지금 시대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현 기준에 부합되지 못하는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심리적 기제일지 모른다.

IBM에 의하면, 1900년대 인류 지식이 두 배로 증가하는 데 100년 소요됐다면, 이제는 약 12시간 만에 지식이 두 배로 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만약 IBM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폭발적인 지식 증가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들 역시 기성세대와 다를 바 없이 곧 “라떼는 말이야”를 남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현 사회가 겪고 있는 급속한 변화는 선진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교육기관에서 핵심역량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요인의 하나일 것이다. 국내의 경우 혁신지원사업의 시작과 함께 전문대학가에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크게 주목받는 분위기다. 이를 반증하듯 올 겨울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전문대학교수학습발전협의회가 주최하는 역량 관련 세미나와 강연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또한 핵심역량 교육과정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전문대학에서 그간 소외됐던 교양교육에 대한 관심 역시 고조되고 있다. 전문대학은 직업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전공교육과 직무교육에 충실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또한 일반대학과는 달리 인문학 또는 문사철 관련 학과가 적기 때문에 교양에 대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특징을 갖고 있다. 더욱이 2-3년제 짧은 학제 연한의 학과들이 대부분이라 제한된 졸업이수학점 속 교양학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렇듯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교양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전문대학이 점차 늘고 있다. 2019년 실시된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주관 교양교육 현황조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조사된 86개 전문대학 중 교양교육 전담기구 설치 비율은 60%에 달한다. 이는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모든 전문대학이 엄연히 교양교육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역량증진을 위해서는 결국 교양교육의 질 관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되는 일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전문대학 교양교육이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논의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교양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직업기초능력의 틀을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이제부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되는 전문대학 교양교육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둘째, 정부는 전문대학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교양교육에 투입할 인프라 구축과 재원 마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대학혁신지원사업만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는 역부족이다. 결국 모든 전문대학을 대상으로 교양교육 운영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별도의 정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 전문대학 구성원들은 “라떼는 말이야” 다음에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라떼는 말이야 핵심역량과 교양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전문대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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