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화에 따라 한국도 AI 분야 정원 대폭 확대 필요
교육부 ‘경쟁력 있는 대학’ 만들기 위해 자율권 보장해야
세계 명문대 경험… 대학은 취업기관 아니야
국제사회에서 경쟁하려면 깊고 넓은 지식 필요
후학들에게 국적 있는 학문으로 국가에 공헌 부탁

[한국대학신문 정성민 기자] 대한민국의 대학은 위기와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규제, 재정난, 학령인구 감소는 위기의 표상이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은 변혁의 신호탄이다. 현재 위기와 변혁의 시대를 현명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이 대한민국 대학의 최대 과제다. 그렇다면 과제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를 위해 본지는 민준기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와 특별대담 시간을 가졌다. 민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정치학계의 거목이자 대학가의 원로다. 특히 민 명예교수는 대학 재직 시절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를 두루 탐방하며, 대학교육의 본질과 이념을 통찰했다. 따라서 민  명예교수의 경험과 식견은 대한민국 대학가와 교육당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선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다. 민 명예교수는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격적으로 규제를 풀고 혁신을 장려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들을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만들어 우수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대학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이라고 강조했다.

-노령에도 정정하시다. 지금 대한민국 대학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원로의 혜안이 필요할 것 같다. 먼저 대학가 원로로서 대한민국 대학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대학은 미래사회에 밝은 희망을 줘야 한다. 그러나 정부 당국이나 대학을 운영하는 총장, 가르치는 교수, 배우는 학생들이 얼마나 대학의 이념을 이해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특히 교육부는 대학이념과 사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은 10여 년간 등록금을 동결해 재정 상태가 파탄 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교수 월급도 동결, 연구 능력이 감소되고 있으며 우수 인재들이 귀국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등록금 인상을 결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사립대학의 적자가 3800억원(2018년 기준)이 넘는데도 올해 등록금을 동결했다. 대학의 재정 상태가 심각하다. 이에 대학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정책이 나와야 한다. 정책의 적응성이 필요하다. 대학이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사회나 국가는 항상 침체 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정부는 언제까지 대학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왔다. 인재양성을 위해 재정 확보가 시급하다. 인공지능시대를 맞이한 시기에 대학을 돕지 않으면, 한국은 절벽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AI 전공분야는 정원을 늘리고 기초학문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육정책은 정권마다 요동친다. 오죽하면 ‘오년지대계’라는 비판도 있겠는가. 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한다면.
“1960년대 대학 졸업생이 많이 배출, 인적자원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었다. 때문에 산업화에 성공했고 한국의 근대화가 급진적으로 발전했다. 한국은 자원도 없고 단지 인적자원뿐이다. 대학에 투자를 많이 해 우수 인재를 길러야 한다. 1986년 하버드대에 있을 때 복크 총장이 하버드대의 1년 예산을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 소재 주요대학들의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미국이 세계 최고 강대국이 된 것은 우수 인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인간의 심장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재정상태가 어려워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대학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대학의 활성화를 위해 대학에 자율권을 줘야 한다. 재정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 기업들이나 일반인들이 대학에 기부하면 대폭적으로 세금을 감면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즉 기부 문화가 활성화가 필요하다.”

- 대학 교수 시절 세계의 명문대를 두루 방문하며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방문 대학이 미국과 유럽에만 30여개가 넘는다. 세계 최초로 설립된 이태리 보르니아대를 방문했을 때는 정말 감개무량했다. 평소 책을 읽으면서 ‘꼭 한번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다. 역시 고색창연했다. 아직도 신학과 법학은 유명하다.

경희대 고 조영식 총장님 덕택에 대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1958년 총장께서 처음으로 세계 유명 대학을 탐방하셨다. 원래 관철력이 뛰어난 분이다. 방문 대학의 관련 서적 등을 60여권 구입해 오셔서 읽으셨는데, 시간이 없어 나를 부르셨다. 책을 읽고 일주일에 한 번씩 댁에서 말씀을 나누자고 하셨다. 총장께서 말씀 도중 대학 교수가 되려면 대학의 이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당시 나는 유급조교이자 시간강사였다. 따라서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대학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칼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이 재미있어서 번역을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미국 뉴욕 근교 소재 롱아이랜드대에 Fellowship을 받고 유학을 갔다. 당시 한 달에 100$씩 용돈도 받는 장학금이었다. 이에 날개 단 기분으로 대학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를 비롯해 아이비리그와 그 외에 대학들이다.”

- 세계 명문대 방문기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대학을 방문하면 대학의 건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교육목적과 교육내용을 살펴봤다. 하버드대는 1학년에 입학하면 전교생들이 하버드 가든(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집이 근처여도 필수다. 2학년이 되면 전공과 연계된 기숙사(house, 예일대 출신 재벌가가 하버드대 기숙사 8개 설립)로 들어가서 생활한다. 예를 들어 법대나 경제학 전공 학생들은 엘리오트 기숙사로 들어간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상급생들과 친해지고, 연대의식을 갖는다. 졸업생들과의 네트워크도 생긴다. 졸업생들은 여름방학 때 후배들을 자신의 직장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데려 갈 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는 스카우트를 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초봉도 다른 대학 출신보다 더 많이 준다고 한다. 이렇게 앞길이 확 트이니까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 하버드에 갈려고 한다.

시카고대에도 관심이 많았다. 2차 대전 후에 시카고학파는 정치행태론을 전개했다. 당시 정치체계론 대가 데이비드 이스턴을 찾아 갔다. 한국에서 정치행태론 분야를 가르쳤기 때문에 만나고 싶었다. 이야기 도중 자신은 캐나다 사람이라고 밝혔다. ‘왜 미국 국적을 갖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학자는 국경은 없어도 국적은 있어야 한다. 국적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해서 더욱 존경심이 생겼다. 시카고대를 처음 설립했을 때 100권의 고전을 읽어야 졸업을 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으로 오늘날 유명 대학이 될 수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 여러 유명 대학을 방문하면서 얻은 것이 많았다. 특히 Samuel P. Huntington이 집필한 <<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ies>>를 구입한 것이다. 귀국하면 책을 번역하려고 헌팅턴 교수한테 허락을 받았다. 헌팅턴 교수는 그 책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번역본을 <<정치발전론>>이란 이름으로 출판, 5만부나 팔렸다. 헌텅턴 교수와는 그 후부터 서신으로 교류했다.”

- 미국의 유명 대학뿐 아니라 유럽의 유명 대학들도 방문하지 않았나.
“귀국한 지 4년 만에 고 조영식 총장께서 벨기에 루뱅대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라고 제안하셨다. 더없는 영광이었다. 당시 지인들은 38세의 늦은 나이에 고생하러 가느냐고 충고했다. 사실 그렇다. 그러나 루뱅대에서 공부하며 유럽의 명문대 방문 기회도 가질 수 있으니 좋았다. 루뱅대는 14세기에 로마교황청에서 설립했다. 18세기 이성주의 철학자 에라스무스를 배출했으며 이효상 전 국회의장도 공부했다.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파리대, 비엔나대 등이 교황청에서 세웠다. 하지만 모두 탈퇴했고, 루벵대는 지금도 교황청에 속한다. 루뱅대에서는 3년 후에 논문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면 그 대학의 지도교수가 선정, 논문을 지도받는 제도가 있다. 지도교수 추천으로 옥스퍼드 크라이스 처치 칼리지(College·기숙사)의 Dr. pulzer(풀저) 교수가 수락, 가게 됐다. 풀저 교수의 강의도 듣고, 논문을 지도받으면서 다른 유명 교수들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옥스퍼드에 있을 때 버틀러 교수도 찾아갔다. 1960년대 그의 책 <<The Study of Political Behaviour(정치행태론)>>을 번역했다. 책의 핵심은 ‘정치행태의 가능성과 그 한계’다.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3년간 행태론을 연구하고 문제점을 책에서 지적했다. 그의 생각은 나와 같다. 1960년대 한국인 학자들이 미국에서 공부한 뒤 강의실에서 정치체계론의 이론인 ‘Input’과 ‘Output’만 이야기하다 나간다고 학생들한테 조롱거리가 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의 정치이론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시대였다. 대학원 시절 한국 최고 정치학 권위자 민병태 교수의 집에서 5년간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다. 그분의 전공은 정치사상이며 미국 행태론의 한계를 주장했다. 그분 밑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옥스퍼드는 대학원 중심대학이다. 학부학생들은 많지 않다. 옥스퍼드는 각 칼리지마다 학생들을 선발한다. 당시 34개의 칼리지가 있었다. 칼리지의 우월 차이가 크다. 재단도 달라서 부자학교와 가난한 칼리지도 있다. 칼리지 학생들은 각 곳에 다니면서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면 학점이 각 칼리지로 간다. 칼리지 생활은 재미있다. 젊은 강사(Tutor, 튜터)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다. 학생들이 튜터한테 배운 과제를 일주일에 한 번씩 교수한테 가서 지도를 받는다. 개인지도와 비슷한 교육이다. 주말이면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클래식 음반을 틀어놓고,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학위 논문을 쓸 때 통계와 계량적 방법이 필요했다. 지도교수가 에식스대에서 계량화를 배우라고 권해 Diploma 코스를 이수했다. 다행히 유네스코 장학금을 받았다. 1950년대 영국은 10개의 대학을 설립했다. 하나가 에식스대인데 모든 학과가 계량화 교육이다. 유사 대학이 독일의 베를린대나 벨기에의 브뤼셀 자유대 등이다. 일본은 유럽 모델로 수꾸바대를 설립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한국도 대학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4차 혁명시대를 맞이해 AI 분야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하며 AI 분야 대학 설치도 생각할 문제다. 현재 캠퍼스 없는 미네르바대가 들어오고 있지 않나.”

- 주요 선진국들은 대학에 자율권을 보장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학가에서 한국 정부가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통제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데.
“대학은 어디까지나 자체적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은 정치논리로 우후죽순같이 생겨서 시작부터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하는 대학들이 많았다. 등록금 동결로 극소수 대학은 그런대로 견디지만 재정이 열악한 대학은 파탄 직전에 있다. 이대로 가면 지방의 사립대학은 붕괴되며 학령인구 감소도 가속될 것이다. 이것은 경제문제와 직결된다.

대학이 정부 지원금을 목적대로 쓰지 않고, 부당하게 사용하면 통제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모범적인 대학까지 일일이 규제하면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대학이 도저히 발전할 수 없다. 특히 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청년고용을 해결해야 한다. 5000만 인구에 종합대학이 약 170개이며 전문대학이 136개다. 대학 진학률이 68% 정도면 미국이나 유럽보다 많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깊이 생각할 문제다. 교육열이 높은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취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상이다.

교육부는 대학을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정책을 수립, 대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육부의 정책입안자들은 선진 국가의 대학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격적으로 규제를 풀고 혁신을 장려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들을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만들어 우수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대학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 대학가 원로로서 바라보는 대학의 변천사가 궁금한데.
“젊은 시절을 회상하니 재미도 있고 복잡한 생각이 든다. 1950년 중반부터 대학을 다녔다. 당시 한국은 GNP가 70$ 정도여서 아프리카 같은 환경이었다. 시골에는 도로가 포장되지 않았고 전기불이 없었다. 서울에는 전기불이 있었다. 하지만 밤 12시에 전기가 나가 아침에 들어왔다. 지금 젊은 학생들한테 이야기하면 상상할 수 없다.

무엇보다 6·25 동란으로 서울이 폐허가 됐다.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찌들고 가난했다. 북한군한테 점령당한 서울에는 시체가 여기저기 있었으며 지금 서울대 영안실 자리에 석탄 잿더미가 있었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국군들을 전부 데려다 총살해 그곳에 쌓아 놓았다. 생과 죽음에 대해 일찍 느껴서 그런지 철학책을 일찍 읽기 시작했다. 다른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당시 학생들은 쓴맛을 알고 자라서 그런지 어른스러웠다.

석좌교수로서 2016년까지 강의했다. 만학한 보람을 새삼 느낀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 비하면 교수들도 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석학이 많고, 학생들이나 건물도 많이 발전했다. 학생들은 영양 상태가 좋아져 서양 학생들에 비해 체력도 떨어지지 않는다. 영어실력은 과거 학생들에 비해 뛰어나다. 그러나 청년다운 기세는 부족하다. 서양 학생들은 무서운 기세로 공부하고 운동과 독서를 많이 한다. 우리 학생들은 그런 면이 부족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다. 국제사회에서 그들과 경쟁하려면 깊고 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취업난으로 대학의 취업역량이 강조되고 있다. 한편으로 대학이 취업 기관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아무리 시대와 상황이 변해도 대학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학은 취업기관이 아니다. 보다 폭넓은 인생관, 사회관, 세계관을 갖고 장기적인 비전으로 미래를 위한 인재를 기르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며 가치다. 영국의 에식스대, 독일의 베를린 자유대, 일본의 쓰구바대는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설립됐다. 한국 대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재양성을 위해 혁신해야 한다. 하지만 AI에 대한 준비는 미국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분발해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경제 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OECD 국가에서 16위(5.5%)였다. 이어 2018년 29위(3.1%), 2019년 34위까지 하락했다. 소득 주도 경제정책이나 주당 52시간 단축을 계속하면 실업자들이 늘어난다. 대학 교문을 나오면 희망찬 삶과 꿈을 가져야 하는데 가슴 아픈 현실이다. 또한 세계는 넓다. 그리고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좁은 한국만 바라보지 말고 외국에서 취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젊은이들은 꿈과 용기를 갖고 추진하면 앞길이 열린다. 정부 당국은 실업자 수당으로 입을 막지 말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 교육부는 대학을 규제만 하지 말고 이런 상황일수록 적극적으로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

- 대학의 자율을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독일 대학의 역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사다. 정부 당국은 대학의 자유에 대한 가치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대학이 정당 정치 또는 정치적, 철학적,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강요에 의해 구속받지 않는 것이다. 대학의 연구와 수업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학원의 자유는 연구와 사고뿐만 아니라 수업에까지 미친다. 왜냐하면 사고력과 연구는 도전과 의사전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업(가르침)을 제공하며 반대로 수업은 세상의 학자들, 과학자들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또 쓸 수 있는 자유에 의존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후학과 후배 교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평생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학문했는가를 말하고 싶다. 30년 전 일이다. 한국정치학회 회장(1988)을 할 때 일본 학자가 방문했다. 학회원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약 2000(박사학위 소지자)명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의 학회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다. 일본정치학회는 한국보다 적다고 하면서 한국 학자들은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했다. 한국에서 정치학 분야는 대부분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해야 교수가 될 수 있다. 일본은 자기나라에서 학위를 받고 1~2년 외국대학에서 연구하고 오기 때문에 영어가 서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은 유럽권의 학풍을 받아서 좁고 깊게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미국 학문의 영향을 받아서 넓게 한다. 세계적 학자인 Huntington 교수도 자신은 일반론(Generalist)자라고 한다. 유럽에 있을 때 미국 학자들이 유럽 교수들한테 머리를 숙인다. 유럽 교수들은 18세기 역사를 평생 깊이 공부하기 때문에 많이 안다. 반면 ‘넓게는 모른다’는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현대사 세미나를 열면 18세기, 19세기, 20세기를 공부한 교수들이 함께 역사 문제부터 현대까지 깊이 설명한다. 그들은 각자가 자기이론이 있다. 루벵대에 갔을 때 박사 논문 주제를 지도교수한테 줬더니 거절당했다. 지도교수가 ‘미국의 이론으로 한국 정치 현상을 분석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미국의 안경을 쓰고 한국 정치 현상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너는 한국의 안경을 쓰고 한국 정치현상을 분석 해야 된다고 했다. 한국정치이론의 틀을 만들어서 분석 하라고했다.

국제 정치 분야하면 미국 교수들은 자기나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을 분석, 자기나라의 이해관계 이론을 만든다. 대부분 미국의 이익을 위한 이론들이다. 그렇다. 한국 학자들은 국적 있는 학문을 해서 자기나라에 공헌해야 한다. 지도교수가 말한 대로 한국에 맞는 정치이론을 개발했다. 그것은 ‘정당발전의 이론’이다. 간단히 소개하면 정당 발전을 위해 정당이 제도화돼야 한다. 한국의 정당들은 제도화가 돼야 정당 정치가 안정되고, 정치발전이 되는 데 아직 멀었다. 한심스러운 정치인들이다.

후배 교수들한테 국적 있는 학문을 해서 자기 이론이 국가에 공헌하기를 부탁하고 싶다.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래도 교수는 자기 저서가 몇 권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평생 30권의 책(번역 포함)을 쓰려고 계획하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해서 역시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쓰기 시작한 책이 있다. 학자는 정년 후에도 건강하면 계속 집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각 분야의 학문이 발전해야 문화도 발전할 수 있다. 한국에서 노벨상이 여러 분야에서 나올 때 선진 국가로 대접받을 수 있다. 후학들에게는 열심히 연구할 것을, 정부에는 대학 발전에 기여할 것을 당부한다.”

최용섭 본지 발행인(왼쪽)이 민준기 경희대 명예교수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최용섭 본지 발행인(왼쪽)이 민준기 경희대 명예교수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민준기 명예교수는...

경희대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에식스대에서 연구교수,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한국정치발전론》, 《한국민주화와 정치발전》, 《한국의 정치발전, 무엇이 문제인가》 등이 있다.

<대담=최용섭 발행인 / 사진 =한명섭 기자 / 정리= 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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