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배상기 가톨릭대 교수
배상기 가톨릭대 교수

누구와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나?

이 질문은 필자가 교사로 재직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교육적 고민이다. 교육도 그렇고 수업도 그렇다. 국가의 교육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어떤 교육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될 때, 누구와 무엇을 기준으로 수립되고 시행되는지 궁금하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무엇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지 그 목적과 이유를 생각해 본다. 필자가 볼 때 사회의 요구에 따라 바꿔야 할 것들이 많다.

오늘 필자는 홍삼으로 만든 캡슐 영양제를 먹다가 불편함을 느꼈다. 가만히 살펴보니, 영양제 포장의 기준이 무엇이고 누구를 기준으로 이렇게 포장한 것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시장에 제품을 팔고 있음을 발견했다.

영양제를 먹는 법은 한 번에 3캡슐씩 하루에 2회 먹는 것이다. 그런데 포장은 10캡슐 단위로 돼 있어서, 한 번에 3캡슐씩 먹으면 3회 먹을 수 있다. 그러면 1캡슐이 남는다. 낱개로 남은 1캡슐을 먹으려면 다른 포장을 뜯어서 2캡슐을 함께 먹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먹기 시작한 포장에서도 나중에 2캡슐이 남아 다른 포장을 뜯어 1캡슐과 함께 먹어야 한다. 이렇게 하나의 포장에서 남은 것을 새로운 포장에서 뜯은 것과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소비자가 주의하지 않으면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생긴다.

필자는 이렇게 10캡슐 단위로 포장한 것은 소비자와 소비자의 편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한 번에 3캡슐씩 먹어야 한다면, 포장 단위를 10캡슐이 아니라 3의 배수인 12캡슐로 하는 것이 훨씬 더 소비자가 편리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0캡슐로 포장했다는 것은, 포장할 때의 기준이 소비자와 소비자의 편리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소비자와 소비자의 편리성이 기준이 아닌, 기업이 과거에 일했던 방식대로 포장한 것으로, 회사의 이익을 줄어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는 12개의 캡슐로 포장된 제품과 같은 인재인데, 학교에서 10개의 캡슐로 포장된 제품과 같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업에서는 기업에 맞도록 다시 교육해야 하는 비용을 써야 하므로, 신입사원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학 졸업생들이 기업으로 가야 사회도 살고 졸업생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인재만을 배출하는 프로그램을 고수하는 대학이라면 기업은 그런 대학을 외면할 것이다. 입시 성적이 아무리 좋은 대학이라 하더라도, 그런 대학 졸업생의 갈 길은 더 좁아질 것이다. 학교에서만 좋은 능력의 인재가 아니라,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좋은 능력의 인재를 길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벤 넬슨 미네르바대 총장은 맥락에서 맥락으로 전이되는 교육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과서도 없고 캠퍼스도 없는 대학을 세워 인재를 교육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기업에서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먹는 방법은 3개씩이라고 여러 곳에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으면서 정작 포장은 3의 배수가 아닌 기업에서 이어온 관행으로 제품을 포장해서 팔고 있는 회사와 같지 않을까?

누구를,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회사에 이익을 주는 사람과 그들의 요구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거기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이 돼야 한다. 미네르바대 총장의 말대로, 학교라는 맥락에서 기업이란 맥락으로 전이되는 지식을 갖춘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영양제를 먹는 방법이 3캡슐씩이라면, 과거부터 해왔던 10캡슐씩의 포장방식을 버리고 3의 배수인 12캡슐 단위로 포장해야 한다. 포장방식의 변화는 소비자와 소비자의 편리성이 기준이다. 우리 교육도 그렇게 변해야 한다. 소비자와 소비자의 편리성(요구)이 교육 변화의 기준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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