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 만점자 11명 중 8명 서울대 경제학부 선택, 경영·자전·사회 각 1명
경제학부 선호 이유는? 행시 재경직, 로스쿨 등 진로 고려했나
과탐Ⅱ가 가른 자연계 만점자들의 행보, 2명 서울의대, 2명 연세의대 

(사진=한국대학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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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대학에 지원할 때 수험생들의 마음은 다들 같다. 당락을 장담할 수 없기에 ‘제발 붙기만’을 기원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지원하기도 전부터 ‘합격’을 장담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수능에서 한 문제도 틀리지 않은 ‘만점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수능이라는 기준선에서만큼은 최고의 성취도를 보인 이들은 정시모집에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하더라도 합격증을 일단 거머쥐고 시작한다. 2020학년 수능에서 이처럼 ‘유리한 고지’에 선 만점자는 총 15명이었다. 계열별로는 인문계 11명, 자연계 4명이었으며, 졸업생은 자연계에만 2명 있었다. 

특히, 올해 만점자들의 선택은 흥미를 끄는 부분이 많았다. ‘골라서 대학을 갈 수 있는’ 만점자들이 어떤 대학·학과를 선택했는지는 매년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지만, 올해는 몇몇 특징이 뚜렷이 나타났다. 인문계 만점자들 중에서는 이미 수시에 합격해 정시에는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인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학과는 경영학과지만, 정작 만점자들 사이에서는 경제학과로의 ‘쏠림’ 현상이 극명히 나타났다. 자연계 만점자들은 모두 ‘의대’를 택했지만, 과탐Ⅱ 선택 여부에 따라 진학한 대학이 엇갈렸다.

■인문계 만점자 11명, 전원 서울대 선택…수시 5명, 정시 6명 = 인문계 만점자 11명의 진학 대학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모두 서울대를 선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합격한 학과는 다소 달랐지만, 서울대 이외 대학에 진학한 사례는 없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인문계열 만점자 전원이 서울대를 택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의대 등이 있어 서울대가 절대적인 선호도를 보이지 못하는 자연계열과 달리 인문계열에서는 서울대의 위상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남다른 목표의식을 갖고 경찰대학과 같은 일부 특수대학을 선택하는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인문계열 만점자들에게는 서울대 이외 선택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문계열 만점자 전원이 서울대를 택하는 현상이 매년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현 대입구조를 보면 수시모집의 비중이 정시모집을 압도한다. 때문에 수능에 강점이 있는 수험생도 수시모집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어렵다. 

수시모집에 지원했다 덜컥 합격하면, 정시모집에는 지원할 수 없다. 만약, 수시모집에서 서울대가 아닌 다른 대학에 지원해 합격한 경우에는 만점자도 예외 없이 해당 대학에 진학해야만 한다. 이러한 경우를 수험생들은 ‘수시납치’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사례는 가깝게 보면 2년 전에도 나왔다. 2018학년 대입에서도 인문계열 만점자 한 명이 서울대가 아닌 다른 대학에 진학했다. 수시에 이미 합격해 서울대 정시모집에는 지원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문계 수능 만점자가 32명이나 쏟아졌던 2014학년에는 연세대·고려대로 진학하는 사례가 다수 나오기도 했으며, 2015학년에도 8명의 인문계 만점자 중 절반인 4명이 연세대 등에 진학했다.

올해도 만점자들이 수시모집에서 합격해 정시모집에 지원하지 못하는 일은 되풀이됐다. 11명의 인문계 만점자 중 5명이 수시모집을 통해 진학대학이 정해졌다. 이 중 1명은 지역균형선발전형(지균)을 통해 서울대에 합격했으며, 나머지 4명은 일반전형으로 서울대 수시모집에 도전했다. 이들 5명이 모두 서울대에 합격하면서 당연히 정시모집에서 서울대를 택한 나머지 만점자 6명과 함께 만점자 전원이 서울대에 진학하는 결과가 나오게 됐다. 

■‘만점자 선택은 달랐다?’ 경영 아닌 경제 ‘1픽’ = 인문계열 만점자들의 행보는 다소 의외다. 일반적인 수험생들의 선택과는 결이 다소 달랐다는 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문계에서 수험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집단위는 경영학과다. 고려대·연세대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주요대학에서 경영학과는 인문계열에서 가장 높은 합격선을 자랑한다. 성균관대 글로벌경영·글로벌경제, 한양대 파이낸스경영·정책, 중앙대 글로벌금융·산업보안, 서울시립대 세무·도시행정, 한국외대 LD·LT 등 ‘특성화학과’들이 경영학과보다 높은 점수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대학에나 있는 일반적인 학과를 기준으로 하면 경영학과의 선호도가 가장 높다.

하지만, 만점자들의 선택은 달랐다. 만점자들이 ‘1픽’으로 고른 곳은 서울대 경영대학이 아니었다. 사회과학대학 소속인 경제학부를 선택한 사례가 훨씬 많았다. 11명의 인문계 만점자 중 8명이 경제학부를 선택해 진학했다. 

경제학부를 택하지 않은 나머지 3명의 선택은 각각 달랐다. 경영대학과 사회학과를 선택한 사례가 하나씩 있었으며, 자유전공학부 진학자도 1명 존재했다. 

경제학부의 인기는 전형을 가리지 않았다.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모두에서 경제학부의 선호도는 압도적이었다. 정시모집을 통해 합격한 6명 중에서는 1명을 제외한 5명이 경제학부를 택했고, 수시모집 합격자 5명 중에서는 3명이 경제학부에 지원했다. 

이처럼 다른 대학 진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유독 만점자들에게 나타난 이유는 뭘까. 입시기관들은 경제학부의 인기가 본래부터 높았다고 설명한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법대가 없어진 이후 일반적으로는 경영대학의 선호도가 제일 높다고 본다. 하지만, 실제 점수는 인식과 차이가 있다. 커트라인이나 그 근처 점수들을 기준으로 보면, 경제학부가 더 높게 나타난다. 고득점을 받은 학생들이 경제를 많이 가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경향을 보더라도 인문계열 만점자들은 경영대학 못지않게 경제학부를 상당히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6학년에도 9명의 인문계 만점자 중 3명이 경제학부를 선택했고, 2명이 경영대학으로 진학했다. 2017학년에는 2명의 인문계 만점자가 모두 경제학부에 진학하기도 했다. 올해 다소 많은 학생들이 경제학부를 선택한 것은 맞지만, 이전에도 만점자들이 경제학부를 택하는 경향이 충분히 나타나고 있었다는 얘기다. 

경제학부 선호의 근본적 원인은 ‘진로의 폭’에서 찾아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로스쿨이나 행정고시 등 차후 진학을 염두에 두다 보니 경제학부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일반적으로 경영학보다는 경제학이 더 깊이 있는 학문이라고 여겨진다. 수학과 통계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등 현 학문 트렌드와도 잘 부합한다. 졸업 후 교수·학자의 진로를 택할 때에도 경제학을 배우면 사회과학 전반으로 진출 가능한 반면, 경영학은 해당 분야에 국한된다. 행정고시 재경직이나 로스쿨 진학 등 차후 시험 준비에 있어서도 경제학 전공자가 다소 유리하다고 본다. 이처럼 진로 선택 범위가 더 넓다는 점이 수험생들에게 어필한 것”이라고 했다. 

수학적 역량의 차이가 다른 대학과는 다른 입시지형을 만든 원인이라는 의견도 더해진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수학적 역량이 없으면 경제학을 공부할 수 없다. 서울대에 지원할 정도 학생들이면 문과 수학은 ‘완벽’ 수준에 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학의 어려움으로 인해 경제학과 선택을 주저하는 경우가 없다는 얘기다. 취업난이 극심하다지만, 서울대에 진학할 정도면 취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경제학을 고르는 요인”이라며 “반면, 서울대보다 선호도 낮은 대학에 진학하는 인문계 학생들은 수학에 있어 다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더해 취업에 경영학이 더 유리하다는 인식 때문에 경제보다는 경영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만점자들의 경제학부 선택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은 회계사(CPA) 시험이나 로스쿨보다는 ‘창업’을 권장하는 편이다. 차후 행시·로스쿨 진학 등을 염두에 둬 경제학부를 택한 것이라면, 만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지닌 학생들마저 도전정신을 발휘하지 않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만점자도 예외 없는 ‘의대 열풍’, 과탐Ⅱ 선택이 가른 운명 = 서울대 진학, 그 중에서도 경제학부가 ‘대세’였던 인문계열과 달리 자연계열에서는 ‘의대 열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만점자 4명은 모두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계 입시 전반을 지배하는 ‘의대선호 현상’은 만점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계 만점자들의 진학 풍경은 인문계와 사뭇 달랐다.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으로 행보가 갈린 인문계 만점자들과 달리 자연계 만점자들은 모두 정시모집을 통해 대학에 진학했다.

단, 진학 대학은 엇갈렸다. 전원이 서울대에 진학한 인문계와 달리 자연계 만점자 중에서는 서울대에 가지 않은 사례가 절반이나 됐다. 2명은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반면, 나머지 2명은 연세대 의대를 선택했다.

이처럼 서울대와 연세대로 행보가 엇갈린 것은 ‘선호도’ 차이보다는 ‘지원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라 봐야 한다. 현재 서울대는 자연계열 수험생인 경우 과탐Ⅱ를 무조건 응시해야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과탐 2과목을 모두 Ⅰ과목으로 채운 경우에는 서울대에 지원할 수 없다. 만점자라고 해서 무조건 대학을 마음대로 골라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올해 연세대 의대로 진학한 두 만점자는 과탐 두 과목을 Ⅰ과목으로만 채워 서울대에 지원할 수 없는 경우였다. 두 만점자는 화학Ⅰ과 생명과학Ⅰ을 선택해 수능을 치렀다. 나머지 2명의 만점자는 물리Ⅰ과 지구과학Ⅱ, 화학Ⅰ과 생명과학Ⅱ를 각각 선택해 서울대 의대로 진학하는 데 성공했다.

과탐Ⅱ를 선택하지 않은 2명의 만점자가 모두 연세대 의대 진학을 결정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서울의대 다음으로 높은 연세의대의 선호도를 방증한다. 통상 의대입시에서는 가톨릭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울산대를 묶어 ‘빅5’로 칭하지만, 이는 하나의 용어일 뿐이었다. 실제로는 서울의대의 선호도가 가장 높으며, 다음 자리는 연세의대의 차지라고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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