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

중국 우한(武漢)발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이 점입가경이다. 한국을 강타하더니 일본과 미국 상황도 심상치 않다. 이탈리아는 이란과 더불어 이미 심각한 상태였는데 급기야 전국을 봉쇄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주장과 달리 전염병의 세계적 만연상태인 팬데믹(pandemic) 상황으로 보인다. 이 미지(未知)의 변종 바이러스는 의학적 공포는 물론 23년 만에 뉴욕 증시를 스톱시키고, 유가를 폭락시키는 등 세계를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한·중 관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 이후의 경색 국면을 타개하려는 시도도 어려움을 맞고 있다. 한국은 한류 금지령(限韓令) 해제 및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역할론’을 기대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상반기 방한에 공을 들였다. 중국은 한국이 북·미 핵협상 교착과 남·북 불통국면에서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시달리고, 일본과는 지소미아를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는 이 시점이 한반도 남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와 '미국 견제'라는 전략적 의도 달성의 호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안보적으로도 한국의 대미 경사 제어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견제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갑작스런 ‘코로나19’의 창궐과 초기대응 실패로 국내적으로 어려움에 빠졌다. 변종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제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중국적 현실에서 변종 바이러스의 전염경로 및 확산 속도, 치사율 등에 대해 정보 확보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사스(SARS/급성 호흡기 증후군)를 겪은 중국의 불투명한 방역처리 태도는 ‘세계적 국가 중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국가주도형 외형적 발전전략을 따라가지 못하는 민생부문의 극명한 부조화를 노출했다. 최근에는 세계적 확산 현상에 편승해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도 있다면서 ‘중국 책임론’을 벗어나려는 성숙하지 못한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한국 역시 냉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우선 고려해 중국인 입국을 제한하지 않았다. 물론 중국인 입국 전면 차단이 바이러스 확산을 확실히 제어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 방한에 공을 들이고 있던 한국 정부가 중국공산당의 의중을 보도하는 <환구시보(環球時報)·중국 매체>의 ‘외교보다는 방역이 우선’이라는 논지와 달리 ‘외교적 관계’를 우선 고려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정부와 청와대가 중국 입장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발언을 계속함으로써 대중 저자세 외교와 더불어 국내적인 정치적 오해를 낳기에도 충분했다.

더욱 큰 문제는 중국의 태도다. 1월 말 부임한 신임 주한 중국대사는 신임장도 받기 전에 한국의 과도한 대중 제한조치 불가를 주문했다. 한국에서 급속하게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중국 지방정부들이 어떠한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했다. 당과 국가가 일체인 당국체제(黨國體制) 국가에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나 당 중앙의 입장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은 중앙정부와 관계없는 지방정부 차원의 결정임을 강조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중국 입장을 옹호했으니 무지(無知)인지 굴종(屈從)인지 서글프기까지 하다.

중국의 이러한 논리는 자연스럽게 ‘사드의 기억’을 소환했다. 사드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한한령이나 특정기업 제품 불매운동이 순수 민간차원의 활동이라는 중국적 주장의 재판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사드사태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상처가 여전한데 중국이 이런 군색한 논리로 감정을 악화시키면 한·중 관계는 다시 ‘정서적 위기’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최근 중국이 마스크를 무상지원하고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에 협조하겠다는 것은 우호적인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중국이 다른 국가를 지원할 만큼 코로나 통제에 성공했음을 국내외적으로 과시하는 이중성도 있음을 읽어야 한다.

북한이 중국 국경을 봉쇄하고 베트남이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것은 경제적 중요성 여부나 친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어려움이 한국의 어려움일수는 있지만, 국가이익과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 만큼 ‘공동운명체’를 계속 강조할 일은 결코 아니다. 중국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계속 주면 한국의 외교공간은 그만큼 협소해질 수밖에 없고 한반도 균형외교 전개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형상화해 중국의 이익과 의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팬데믹은 상호방역의 중요성 증대에 따른 새로운 전략적 결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코로나의 정치화’는 절대 지양돼야 하며 ‘국가이익 최우선’이 출발점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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