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프로그램비·학습 도우미 등 지원한다지만 대학 자율에 맡겨
그나마 제공되는 서비스도 불만족…일반 학생에 비해 어려움 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을 포함한 8개 시민단체가 9일 청와대 앞에서 청각장애인 학습권 보장 대책을 촉구했다. (사진=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제공)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을 포함한 8개 시민단체가 9일 청와대 앞에서 청각장애인 학습권 보장 대책을 촉구했다. (사진=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제공)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장애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대학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자 장애 학생들이 수업 참여에 겪는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이에 8개 시민단체는 9일 청와대 앞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많은 대학에서 장애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뿐만이 아니라 향후 다른 이유로 학사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이 같은 어려움은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육부 장애학생 학습 어려움 없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교육부는 지난 3일 장애대학생이 자택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경우에도 원활하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속기, 수어통역 등을 ‘교육활동 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일반 학생들에 비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전국의 장애 대학생 수는 9653명(2019년 기준)이다. 교육부가 2017년 장애 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를 벌인 결과 우수에 해당하는 대학은 23.9%에 그쳤다. 이는 그나마 캠퍼스에서 수업을 받는다는 전제하에서다. 전과목 온라인 수업이라는 유례없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에 장애 대학생을 위한 인프라가 없다고 봐야한다.

교육부는 5일 ‘재택 수업에 따른 장애학생 지원 안내’라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장애학생 지원을 신청하나로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 내용에는 원격 학습 도우미 가능, 자막 프로그램 지원 등이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학교가 교원과 학생 의견을 수렴해서 교육부에 요청하면 지원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대학의 자율에 맡기면서 학생들의 불편함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불안한 유튜브 자막, 현장 서 개인정보 건네야 통역서비스 신청…불편 감수해야= 그러는 사이 학생들의 불안감은 높아졌다. 구윤호 한국농아대학생연합회 사무국장은 “코로나19로 개강이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농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장애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대학조차도 자막이나 수어 통역을 지원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다른 대학 농학생들의 어려움은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사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A대의 경우 특정 사이트에 들어가 출석을 체크한 뒤 유튜브 링크에 들어가 유튜브 자막 설정으로 학습물을 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원격 연결 자체가 너무 불안정한데다 유튜브 자막 변환은 기본적으로 음성 인식을 통해 이뤄지는데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수어통역을 편집하거나 동기화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수어통역이 들어간 영상을 지원받는 것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B대는 원격으로 통역서비스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다.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를 알려줘야 하는데 개인정보의 유출 위험이 있다. 장애학생센터에 방문해 신청할 순 있지만 여전히 일반 학생들이 비해서는 불편한 상황에 노출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지원하는 두 대학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호예원 한국농교육연대 대표에 따르면 한 청각장애 학생은 학교에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자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수업 듣는데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데 왜 (지원이) 필요하느냐”라는 대답을 들었다. 온라인 강의에 필요한 속기나 수어지원이 가능하냐는 학생의 물음에도 “급작스레 진행한 온라인 강의라 준비가 안 돼 있어 시일이 더 걸린다”는 답변이 돌아온 사례도 있다.

교육지원 전문성 보장·지원예산 모니터링도 필요= 학생들은 전문 지원 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수화통역사, 속기사 같은 전문 지원 인력은 주당 15시간미만으로 일하면서 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이나 대학원 같은 전문 영역의 강의 내용을 통역 지원하는 인력을 구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원예산도 학교 별 상황과 신청 내용에 따라 제각각인 상황이다. 교육부는 권고사항으로 대학별 재정지원 상황에 맞춰 자막과 수어지원을 안내했으나 많은 대학들이 교내 근로장학생을 통해 영상 텍스트 정도만 지원하고 있다. 교육부의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보다 확실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호예원 대표는 “대학 측에서 나름대로 장애 학생들에게 강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는 있지만 학생이 강의에 참여하는 것은 대학의 역량에 달려있다는 현실이 슬플 따름”이라며 “청각장애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강의에서의 체계적인 지원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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