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 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생명과학과 교수

3월 19일 현재 국내 신규 확진자 수는 152명으로 기복이 있지만 다소 소강상태인데, 오히려 해외의 팬데믹은 매우 위협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대학들은 금주부터 개강을 해 필자도 인터넷을 이용, 화상수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학생들은 집중도와 만족도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고, 몇 학생들과는 비디오와 오디오를 써서 대화도 가능해 외롭지 않은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증이 대학에 우려로 다가온 것은 한달 전이었는데, 이 한달간 대학들은 헉헉 거리면서 상황에 대처해왔다. 처음에는 3월 개강 시 중국 유학생들을 어떻게 격리수용할 것인가로 고민했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그 걱정은 대구경북지역 출신의 학생들을 포함한 것으로 확대됐다.

이어서 늦춰진 개강 때문에 부족해진 수업시수를 어떻게 매울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잠시, 이는 곧 온라인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바뀌었다. 또한 캠퍼스에 외부자의 출입을 제한하고 구성원들의 안전을 도모하느라 머리를 싸매야 했는데, 확진된 학생이라도 생긴 대학에서는 접촉 의심 시설물의 폐쇄로 한동안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일부 대학에서는 줄어든 수업시간에 맞춰 등록금을 환불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까지 있어 대학행정부의 고민은 더 컸을 것이다. 이렇듯, 대학들은 자신의 안전에 대한 대책과 준비만으로도 모든 에너지를 빼앗겼고 이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 팬데믹은 대학에 지식인 집단으로서 모범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사회에서 드러난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책을 만들라는 숙제를 주고 있다.

초기 사례에서 느껴졌던 것은 위기상황에서 대학의 자세는 일반 국민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한 교민들이 전세기를 타고 와서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수용되기로 정해 졌을 초기에 진천 주민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내 지역의 안전만을 생각한 님비의식이 본능적으로 작용한 것인데, 다행히도 주민들은 현명하게 사고의 전환을 해 교민들을 오히려 환영해주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초기 반대 분위기는 꽤 우려스러웠는데, 만일 이 지역에 대학이 있었다면 과연 대학은 어떠한 자세를 취했을까? 과연 지식인 집단답게 애초부터 신중하고 논리적으로 판단, 교육기관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반대하는 모습 없이 지역주민들을 설득해내는 자세를 취할 수 있었을까? 예측불허의 이번 사태에서 전문가들이 가진 지식이 이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진 경우도 없지만, 또한 현명한 분별력을 발휘해 사회의 불필요한 불안감과 경기침제를 줄이는 일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터다.

이보다 더 어려운 숙제가 있다. 지금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어서 불안감을 훨씬 증폭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이번만의 문제는 아니겠다. 가짜뉴스만큼 많이 퍼지고 있는 것이 정확치 않은 정보다. 매스컴에서는 이를 인포데믹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정확치 않은 정보라기보다는 ‘부분적만으로 옳은 정보’들이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옳으냐, 쓰지 않는 것이 옳으냐, 마스크는 재사용하는 것이 옳으냐, 재사용은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느냐. 기온이 오르면 팬데믹이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다, 이란을 봐라 등등 해서 지나치게 많은 전문가 의견들이 나돌고 있다.

전문가들 얘기가 서로 달라서 문제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상황을 전제해 얘기하고 있다. 한 전문가의 얘기를 듣고서 전달하는 사람은 (기자가 되겠다) 다른 전문가에게도 2차 의견을 듣고서 종합적인 판단을 해, 다른 견해가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 다르게 적용될 것인지를 알려줘야 하는데, 얘기를 전하는 데만 급급해 하면서 이 인포데믹이 일어나는 것이다.

15년 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연구부정 사태에서도 비슷했다.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전문가라고 나서서 대중을 호도했던 일들이다. 기자들의 무지와 부주의함이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지식인의 분별력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사회의 이런 모습은 대학에서 여러 사람의 주장과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확한 지식을 만들고 전달하는 일에 대한 교육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또 느껴지는 문제는, 국민들이 과거에는 두려워하지 않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던 수준의 위협을 근래에는 지나치게 크게 느끼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시스템이나 정부에게 해결해 달라고 하는 일이 매우 잦아졌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선 조나단 하이트와 그렉 루키아노프가 <<나쁜 교육(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이라는 책에서 원인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에는 부모들이 자녀를 지나치게 감싸고도는 세태에 큰 원인이 있겠다. 또한 대학에 들어와서도 학생들이 전공 공부만을 하면서 4년을 보내고 다른 경험을 쌓는 일은 회피하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겠다. 이제 더 이상 대학들이 이를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 팬데믹이 하루빨리 진정돼 대학이 이들 숙제를 깊이 고민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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