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대학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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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하면서 등교일을 늦추는 전문대가 늘고 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이지만, 직업교육 기관인 전문대에서는 원격수업이 길어질수록 난색을 표하고 있다. 비대면 수업으로는 한계가 있는 실기 수업 때문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와 실기 교육 사이에서 전문대들은 해법을 찾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회장 남성희, 대구보건대학교 총장)는 학생 등교일을 4월 13일로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 비대면 수업기간을 연장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과, 초‧중‧고등학교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4월 6일로 개학을 추가 연기한 점을 고려해 전문대 역시 대면 수업을 연기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 판단한 것이다.

전문대교협의 권고 이후, 전문대들 역시 등교일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3월 25일 서울지역 전문대 9곳이 권고에 따라 등교일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3월 30일, 대구 경북지역 전문대 22곳 역시 같은 결정을 내렸다. 교육부 전문대학지원과가 3월 30일까지 전국 135개 전문대의 대면수업 일정 연기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11개교가 4월 13일 이후 대면수업을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과 교육의 질 사이에 높인 전문대…‘무기한 원격 수업 단행’ 사례도 = 그러나 연기를 결정하는 전문대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 대면 수업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비대면 원격수업만으로는 전문대 직업교육의 실기 수업들을 하기에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수도권 A 전문대 관계자는 “도예과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을 하느라 물레를 못 돌리고 있다”며 “물레성형을 배우는 수업처럼 학교에 나와 실습 기자재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는 비대면으로 불가능한 수업들”이라고 전했다.

예술계열 대학도 대면이 필요한 수업들이 많아 걱정이 크다. 한수연 서울예술대학교 교무처장은 “극을 연출하거나 세트를 제작하고, 합주 공연을 하는 등 결과물을 제작하거나 발표를 하는 것이 목표인 수업들이 있다. 이 수업들은 교수와 학생 간 대면은 물론, 학생끼리 만나야 한다.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 가장 난감하다”고 이야기했다.

이현대 한국전문대학교무입학처장협의회 회장은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비대면 수업이 길어지면서 대면수업을 해야 하는 예체능 과목, 간호보건계열 실습과목, 기술 직업군의 실습과목들은 어려움이 큰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는 몇몇 일반대가 1학기 전면 원격 수업을 결정하고 있음에도, 전문대 가운데선 단 한곳도 이같은 조치를 내린 대학이 나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고민을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제주한라대학교다. 제주한라대학교는 대면 수업 개시일을 정하지 않고, 무기한 원격 수업을 실시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비대면 수업을 한 학기 전체라도 실시할 수 있지만, 코로나19가 종료되는 즉시 대면 수업에 복귀하겠다는 전제를 깔아놓은 것이다.

고석용 제주한라대학교 교무처장은 “학생들을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학사운영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 대면 수업 일정을 거듭 연장하기보다는 이 방법(무기한 비대면 수업 방침)이 낫다고 판단했다”면서도 “학생 안전만 보장된다면, 언제라도 실습 수업을 위해 오프라인 강의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대는 교육부의 방침을 보며 비대면 수업 일정을 거듭 연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직업교육 특성상 대면 수업을 전혀 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학생과 지역 주민의 안전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는 대면 수업을 시작하기에는 부담이 따르는 것이다.

등교일 권고 결정을 내린 전문대교협의 한 관계자는 “지금 가장 대면 수업을 원하는 것은 전문대 교수와 총장”이라며 “학생들을 옆에 앉혀놓고 가르쳐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몸이 달아있다”고 말했다.

박주희 한국전문대학기획실처장협의회 회장은 “초‧중‧고등학교에 대한 추가 휴업 연기 이후 나온 전문대교협의 대면수업 연장 권고에 상당수 전문대가 따르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개별 대학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대학이 책임지고 자체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교육부가 내리는 대학 관련 지침이나 초‧중‧고에 대한 입장을 대학들은 예의주시하며 따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기 수업 휴강, 종강 연기로 가닥 잡았지만… = 이런 상황에서 전문대들은 가능한 이론 위주로 원격 강의를 실시하고, 실기 수업은 종강을 늦추더라도 대면 수업이 가능할 때까지 휴강을 하는 모양새다. 김수연 한국전문대학교수학습발전협의회 회장은 “실기‧실습 수업의 경우 비대면 수업이 어려워, 많은 대학들이 휴강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평상시보다 더 많은 수업의 보강이 몰리기 때문에 보강 일정을 잡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예술대학교는 최대한 개강일정과 대면수업을 미뤄 3월 30일에 개강하고 3주간 재택수업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더 이어질 경우 일부 수업에 대한 휴강도 고려하고 있다. 한수연 교무처장은 “우선은 각 학과에 최대한 휴강을 하지 말고, 이론수업으로 비대면 수업을 해 달라고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정말 대면이 필요한 수업도 있어, 우선 몇 개의 강의가 온라인으로는 수업이 불가능한지부터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회의를 통해 휴강과 종강 연기 등 학사일정 변경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A 전문대 역시 도예과 실기 수업을 휴강하기로 했다.

그러나 종강 연기도 뾰족한 해답은 아니다. 현장실습 교과목들의 경우 여름방학 중 현장실습을 실시하고 있는데, 종강이 연기돼 여름방학이 줄어들 경우, 현장실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서다. (관련기사 : ‘현장실습 필수’ 자격 관련 학과들 “코로나19 이후 ‘실습 대란’ 온다” 우려) 결국 학과, 과목마다 적절한 학사운영 방법이 달라 종강 연기 역시 고려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워낙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보니 일각에서는 9월 신학기제가 차라리 가장 나은 방안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남 지역 B 전문대 관계자는 “사실상 1학기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운데, 차라리 9월 신학기제를 실시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9월 신학기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직까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 추진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로 인해 전문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학사일정 부담을 대학의 판단에 맡기기보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사상 초유의 국가 재난 상황에서, 정부의 대학 학사 운영에 대한 정책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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