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은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도 한국어능력시험(토픽) 일정을 연기했다.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은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도 한국어능력시험(토픽) 일정을 연기했다.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유학생들이 한국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험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이하 토픽)’이 연기되면서, 2학기 유학생 모집에도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성적 발표일이 2학기 모집 일정 종료 시점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또한 연기된 토픽 일정이 교육부의 교육국제화역량인증의 지표값 마감 일정과도 겹쳐, 주요 지표 중 하나인 학생의 토픽 점수 취득률도 다소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학가에서는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제의 입학생 선발 기준을 일시적으로 조정하고, 재학생 토픽 취득률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3월 토픽 시험을 주관하는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은 코로나19 사태를 우려하며 시험 일정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월에 치러진 68회 시험 이후 가장 먼저 치러질 69회 시험은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5월 23일부터 24일까지 시행되는 것으로 연기됐다. 70회 시험은 20일 가량 연기됐다. 성적 발표일도 미뤄졌다. 69회 시험은 원래대로라면 5월 21일 발표가 이뤄져야 하지만, 연기돼 6월 30일에 성적이 발표된다. 70회 시험은 8월 20일에야 성적이 발표된다.

이처럼 시험 일정이 연기되면서 2학기 유학생 모집과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69회 성적 발표일이 문제가 됐다. 2학기 입학할 유학생의 서류제출 일정, 그리고 교육국제화역량 인증 평가 기준 날짜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유학생 수능’ 토픽 연기…2학기 신입생 모집에도 영향 = 토픽 시험이 미뤄지면서 9월 입학을 희망하는 유학생들은 당장 69회 시험 성적부터 입학 서류로 제출하기 어렵게 돼,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토픽 시험이 유학생의 서류 제출 일정과 관련이 있는 것은 한국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에게 사실상 유일하게 요구하는 자격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학생들에게 토픽은 ‘수능’과 같은 중요한 입학 자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시험 일정이 연기되면서 69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오는 9월 입학에는 이를 활용할 수 없게 됐다.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의 설명에 따르면, 대학별로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9월 가을학기에 입학하는 외국인 유학생의 입시 전형의 경우 5~6월경 서류를 마감한다. 이때 한국 대학에 입학하려는 외국인은 토픽 3급 이상을 취해 성적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69회 시험의 성적발표일은 6월 30일로, 2학기 유학생 모집 일정보다 늦다. 69회 시험 성적을 제출하기가 불가능해, 유학생들이 한국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도 코로나19로 입학자격을 갖출 기회를 잃게 된 상황인 셈이다.

심지어 대학가에서는 실제 모집 시기가 국립국제교육원이 밝힌 것보다 빠르다고 말한다. 김동욱 한국전문대학국제교류관리자협의회 수석부회장(경인여자대학교 글로벌인재처 팀장)은 “보통 전문대보다 일반대의 모집은 더 빨리 이뤄진다. 전문대는 6~7월경, 일반대는 5월경에 2학기 유학생을 뽑는다”며 “69회와 70회 토픽 성적으로 한국 대학에 입학하려던 유학생들은 사실상 성적 활용이 불가능하다. 특히 일반대에 입학할 때는 (활용이) 전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토픽 성적이 없더라도 유학생이 한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유학생들은 대학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교육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즉 입학 후에 요구된 토픽 성적을 충족했더라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행정 낭비를 감수해야 한다.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에서 과거 하위대학에 포함됐던 곳들은 토픽 성적이 없는 학생을 받을 수 없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동욱 수석부회장은 “토픽 성적이 아직 없는 학생들이 오는 69회부터 시험을 보고 가을 학기에 대학을 지원하려는 계획에 분명 차질이 발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국제화역량 인증도 걱정 = 토픽 연기로 교육국제화역량 인증 평가를 준비하던 대학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교육국제화역량 인증 평가 기준일과 69회 토픽 시험 성적 발표일이 같은 날로, 당일 나온 성적을 평가 보고서에 반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입생은 물론 재학생이 일정 기준의 토픽 점수를 보유하고 있는가는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에서 중요한 평가지표 중 하나다.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은 평가가 이뤄지는 해의 6월 30일까지의 결과를 기준으로 각 지표값을 매긴다. 특히 인증을 받으려면 대학 신입생의 30% 이상, 재학생 40% 이상이 일정 기준의 토픽 성적을 가져야 한다.

만약 이번 인증에 69회 시험에서 성적을 받은 학생들의 숫자를 반영하려면, 당일 나온 성적을 평가 보고서에 포함시켜 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평가에 앞서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 평가 보고서를 준비하는 대학의 상황을 상기한다면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결국 정상적으로 시험이 이뤄졌을 경우 평가에 반영이 가능했을 69회 토픽 점수 취득자들의 숫자가 이번 인증에서는 제외될 상황이 된 것이다.

또한 이는 토픽 ‘응시’ 경쟁이 치열한 상황과 겹쳐 더욱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홍길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국제교류부장은 “평소에도 재학생들이 토픽 응시 자체에 어려움이 있어 문제가 됐는데, 코로나19로 일부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에 반영하지 못한 것은 불합리 한 상황”이라며 “토픽 시험은 응시자가 워낙 많아 신청이 시작되자마자 마감이 될 정도로 응시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3주기 인증 기준 일시 완화 필요” 주장 = 대학 국제교류 전문가들은 코로나19라는 국가 재난 상황으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상황인 만큼, 교육부의 교육국제화역량 인증 지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홍길 국제교류부장은 “이번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에서 신입생의 토픽 성적 취득률은 평가하지 말고, 재학생의 토픽 성적 취득률에 대해서도 예외적으로 71회 시험 성적까지 이번 인증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현재 교육부의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전국 대학의 유학생 현황을 조사 중인 윤명숙 전북대 교수(전 전국대학교국제처장협의회 회장)는 “코로나19로 이미 대학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로 인해 파생된 문제까지 이중고를 짊어지게 된 상황이다. 재학생의 토픽 성적 취득률을 일시적으로 하향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역시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안주란 교육부 교육국제화담당관은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의 지표에 대해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보완책이 나올지는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 구체적인 방안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인증 기준을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전해진다. 이동은 한국어교육기관대표자협의회 회장(국민대 국제교류처장)은 “연기한 토픽 일정이 공지되기는 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해 언제 치를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토픽 시험이 연기된 사실 자체도 유학생들의 마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한 상황”이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 자체가 보이지 않는 상황인 만큼, 교육부가 인증 평가 기준을 재고할 것이라 여겨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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