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섭 두원공과대학교 총장

조병섭 두원공과대학교 총장
조병섭 두원공과대학교 총장

 인류의 역사에서 세균의 치명성은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정복하고 원주민들을 말살시킨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전염병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1918년 스페인 독감이라 불린 유럽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인플루엔자는 전염성이 높은 급성 호흡기질환으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사자 850만 명보다 3배나 많은 2500만 명 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돼지와 오리를 숙주(宿主)로 발현, 인간에게 잠입한 인플루엔자는 환자의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새 숙주들을 향해 구름처럼 뿜어 나갔다. 병원균 입장에서 보면 제 세상을 만난 것이다.

요사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번져나가며 각 국가는 방역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렇게 문명 진화에 도도했던 선진국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자연이 인간들에게 자연환경 파괴에 대한 징벌로 준 사악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명 진화론적 관점으로 보면 세균이 인간에게 해만 끼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은 균, 즉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을 퇴치하기 위해 항바이러스제를 발명했으니 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동물에서 유래된 이 사악한 질병들은 구세계와 신세계의 충돌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새로운 문명도 생물 진화의 돌연변이와 같이 병원체의 이동처럼 서로 다른 문명 간 접촉으로 인한 문명의 전파에 의해서 일어난다.

온라인수업은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와 있는 학습방식이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그 열풍이 더욱 거세지며 또 다른 형태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교육 문명의 충돌이라고 할까? 코로나19가 기세등등하게 새로운 숙주를 향해 돌진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인간이 착안해낸 묘안은 사회적 거리 두기이며, 이에 가장 적합한 학습전달 방식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불씨를 지핀 인터넷 통신망을 이용한 원격수업이다.

그러나 미래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대학의 종말론을 이야기하며, 새롭게 들고나온 모델이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대학(University of Everywhere)’의 구축이다. 네트워크,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혁신적 발전은 신개념의 고등교육 출현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미국의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 케빈 캐리는 《대학의 미래》에서 저렴한 학비, 혁신적으로 높은 교육 효과,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열린 교육의 탄생을 예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눈 밝은 사업가들은 이 모든 기회를 통합, 전통적인 대학의 개념을 단번에 무너뜨릴 준비를 이미 마쳤다고 한다.

필자는 이따금 미래 우리나라 대학의 모습을 그려본다. 안타깝게도 장밋빛 청사진이 아닌 거친 풍랑으로 침몰 당해 황량한 바다에 서서히 ‘가라앉는 배’의 형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다소 미덥지 못한 경망스러운 몽상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낭만적이며 고즈넉한 정취를 떠올리는 캠퍼스를 그리기엔 오늘의 대학환경은 너무 절박하고, 게다가 교육 전달방식의 진화라는 더 큰 변화의 물결을 맞닥트리고 있다.

그동안 규모화된 교육은 전 세계가 이룬 진전의 주된 동력의 하나였다. 그러나 고등교육 부문에서 규모화된 모델은 지속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교육은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식 교육이 아닌 개별 학생이 자신의 속도에 맞춰 원하는 것을 배우는 개인화된 교육을 통한 탈규모화로 전환되고 있다. 학교는 학년이 아니라 사회적 교류를 나누는 커뮤니티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교육과정 중심의 순차적 교육이 아닌 개인화된 교육으로의 혁신적 변화다. 이 거대한 흐름을 인식하고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 MIT도 완전히 새로운 교육의 틀인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대학’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대학이 바로 미래의 학생들이 가게 될 대학이다. 세계 곳곳에서 ‘나도 하버드, MIT를 갈 수 있다’는 믿음이 가슴속 깊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의 학습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은 상호작용을 갖는 온라인 강좌를 듣는 개별 학생에 대해 맞춤형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수준별 학습도 가능하도록 진화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성적과 진도, 출석률 등을 관리하는 학습관리시스템(LMS; learning management system) 역시 개방형 학습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즉 온라인을 통한 자기주도형 학습환경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개방형 혁신 학습플랫폼은 기존의 LMS 방식과는 철학과 활용기술 측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는 모바일 기반의 새로운 사회적 학습환경이다. 학습 내용에 순차성이 없고, 학습자 스스로 선택·통합하는 학습형태이며, 교수자뿐만 아니라 학습자도 콘텐츠를 탑재할 수 있는 사회적 LMS를 기본으로 한다. 궁극적으로 지식을 공유하고 창출하는 사회적 학습 커뮤니티 역할을 하게 된다.

개방형 학습플랫폼의 대표 사례가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다. 그중에 전 세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로 MIT와 하버드의 협업으로 확장한 에드엑스(http://discover.edx.org)가 있다. 전 세계 140개 주요 대학의 참여로 2000여 개 무료 온라인 과정을 액세스할 수 있다.

코세라(http://www.coursera.org) 역시 MOOC를 부흥시킨 선두주자다. 코세라는 2012년 스탠퍼드대에서 강의를 제공하던 앤드류 응와 다프네 콜러 교수가 만든 서비스다. 현재는 스탠퍼드대, 예일대, 미시간대 등 전 세계 51개 국가, 207여 개 대학과 기업에서 4188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KAIST, 포항공대, 연세대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는 113여 개 대학과 기관이 참여하는 한국형 무크(K-MOOC)가 있는데, 현재 800여 개의 강좌만 공개될 정도로 발전 속도가 더딘 편이다.

다프네 콜러 교수는 저개발 국가의 교육 환경과 미국의 높은 대학 등록금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결과 코세라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MOOC는 21세기 교육 혁신의 아이콘임이 틀림없다. 시간과 장소, 국경, 비용에 구애 없이 질 높은 세계 유명대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미국 대학 등록금이 1985년과 비교해 600% 가까이 올랐다고 하니 온라인 강의의 선호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MOOC의 등장에 기존 대학들은 긴장하며, 어쩌면 대체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아직 MOOC는 대체제가 아닌 보조도구로 활용되는 현상이 더 뚜렷하다. 즉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강의를 수강하고 나서 오프라인 수업에서 토론, 발표, 실습하는 방식 등으로 수업의 다양성을 꾀하는 데 더 많이 이용한다. 이른바 플립트 러닝 형태의 수업설계 등에 MOOC를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MOOC는 학부생뿐만 아니라 졸업생들의 평생학습 도구로도 활성화돼 있다. 그러나 MOOC가 향후 보조수단으로만 머물러 있을까 에는 의문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육계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며 교육 전달방식에 큰 변화가 왔다. 그 변화의 핵심은 대면수업의 온라인수업으로의 대체다. 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모두가 허둥대고 있다. 학생들은 특히 콘텐츠의 품질, 온라인 교수법 등 학습전달 방식에 많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왜?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이론, 기술 및 선진화된 시스템은 이미 목전에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세균들은 원래의 숙주가 죽어서 잡아먹힐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다. 곤충들이 감염된 숙주를 물고 새로운 숙주에게 날아갈 때, 세균은 곤충의 침 속에 편승하며 옮겨 간다. 죽지 않고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병원균의 영리함에 탄복할 뿐이다. 그 영리함에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할까? 코로나19는 사악한 선물만 가지고 왔을까?

조병섭 총장은…
한양대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두원공과대학교 정보통신과 교수 부임 이래 학사운영처장, 대학발전처장, 파주캠퍼스추진단장, 수석부총장, 총장직무대행 등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고등직업교육연구소 초대소장, 한국직업교육학회 편집이사,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이사,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평생직업교육분과 위원, 교육부 특성화전문대학육성사업 사업관리위원회 위원, 파주시 기획발전위원회 위원, 경기산업기술교육위원회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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