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 본지 논설위원/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김중백 본지 논설위원/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김중백 본지 논설위원/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코로나19로 인해 당연하게 여기던 대학의 일상이 달라졌다. 입시의 굴레를 벗고 밝은 목소리로 교정을 누비는 신입생의 재기발랄한 모습이 사라졌다. 방학 동안 다녀온 학회 이야기와 새롭게 부임한 교수의 프로필 이야기를 나누며 강의실로 향하는 교수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직원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사내 메신저를 통해 재택근무 시작과 끝을 알리고 학생과 교수 대상 프로그램을 취소, 연기하기에 여념이 없다. 2020년 봄의 대학 풍경이다. 그 누가 이런 대학 캠퍼스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대학은 여전히 본연의 책임인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익숙한 기존 방식과 조금 다를 뿐이다. 시스코나 줌을 통해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며, 혁신의 전사라고 전해 들었던 미네르바 스쿨을 흉내 내고 있다. 파워포인트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히면서 나의 강의가 이렇게 지루했었던지 많은 교수들은 새삼 깨닫게 됐다. 학생들은 느지막이 일어나 여유를 즐기는 듯하지만 시험 대신 쏟아지는 과제의 홍수 속에 각자도생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실습 비중이 큰 예체능과 자연계열 학생들은 대면수업이 재개되는 날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교수와 조교를 따라 눈으로 배우고 홀로 실습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변화이긴 하지만 사실 인간은 언제나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행동 양식과 사고 규범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대학은 조금은 예외적인 위치를 보여 왔다. 필자가 19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닐 때의 모습과 2020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비교할 때 일면 다른 듯하다. 가령 학생들이 당당히 자신의 과제가 왜 이 점수인지 교수에게 질의한다. 모둠 활동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진행하는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근본적인 교육 체계 측면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고착화된 학과 체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캡스톤 디자인과 같이 새로운 형태의 수업도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수업은 교수의 지식전달 중심으로 진행된다. 평가 체계도 다양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기 어려운 A-F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대학이 학과 기반의 조직구조와 교수의 전공지식 중심 교육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대중 교육 차원의 대학이 확장되던 근대화 시대에 학과 기반 교육방식은 대량생산 기반의 산업구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 지식의 교육과 전달에 매우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로 상징되는 지식체계의 대중화, 높아진 밀집도로 인한 복합적 사회구조와 인간관계의 형성 그리고 계산적 합리성을 뛰어넘어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중시하는 융합적 역량의 대두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의 교육 지형 변화는 획일적 방식의 대학교육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이러한 위기 과정에서 재정지원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교육 혁신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으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기존의 ACE 사업, PRIME 사업 등의 교육 사업에 수천억 원이 투입됐지만 근원적 변화가 있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2년차에 접어든 교육혁신지원사업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지만 연차별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프로그램 기반 사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방식의 강의는 준비 부족으로 인한 문제도 나타나지만 교수가 앞에서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 적는 기존의 교육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 예상한다. 2016년 <Harvard Business Review>에 게재된 논문(‘Hybrid Jobs Call for Hybrid Education’ by Joseph E. Aoun)에 따르면 미래는 다양한 분야와 역량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직업이 중심이 될 것이기에 대학의 교육 역시 하이브리드 교육이 돼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교육은 학문분야를 아우르는 주제 중심 교육, 프로젝트 기반 교육, 실습 기반의 실험적 교육으로 구성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교수는 일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학생들이 주제 중심의 사고를 실제 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함을 뜻한다.

기존 교실 중심의 수업을 생각해보자. 1주일에 15~21시간씩 강의실에 학생들을 억지로 앉혀놓고 교수가 대학원 때 배웠던 지식을 중심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소모한다. 등록금은 동결되고 있지만 날로 치솟는 생활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유지해야 하는 학생은 매번 학교에 나와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기에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학생의 학습공간이 부족한 학교에서는 강의 이외 시간에 프로젝트 중심 과제나 모둠활동을 진행할 공간을 찾기 어려워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학교 주위 커피숍을 전전하며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비대면수업의 경험은 교수·학습방식의 성찰적 재구성과 연계, 의미 있는 교육개혁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가령 물리적 수업시간에는 프로젝트형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방향 설정과 컨설팅에 집중하고, 기존의 지식 전달은 비대면 수업을 통해 압축적으로 진행하면 하이브리드형 교육의 구현에 더욱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수업시간에 전달되는 지식의 양이 대학교육의 질을 가늠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된다. 주제 중심의 실천적 협력학습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기에 의도하지 않은 계기로 시작됐지만 비대면 강의는 새로운 교육체계 시행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대학이 앞으로 직면할 수많은 사회환경 변화의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성장의 정체에 따른 고등교육 수요 감소,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미디어 발달에 따른 지식의 대중화 등 더 많은 과제가 대학 앞에 놓일 것이다. 대학은 자유로운 학문의 탐구에서 출발했지만 대중교육의 일환이 된 시점에서 본다면 지속가능한 인류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의 양성은 대학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됐다. 이러한 대학의 사명을 항상 명심하고 대학교육의 개혁을 위해 교수와 직원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면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새로운 교육혁명이 우리 앞에 곧 펼쳐지리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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