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흠 영남신학대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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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이 규율하고 있는 업무상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 그 재물을 횡령하는 경우 등을 지칭한다. 예컨대 회사의 재무담당자가 회사 자본금의 일부액을 자신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업무상횡령죄를 범한 것이다. 사립학교의 건설관리연구소 회계직원이 부친의 사업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동 연구소의 예산 3억원을 소비하면 동죄의 처벌 대상이 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업무상횡령죄는 담당직원이 소속 기관의 보관금을 공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해당 직원의 사적인 용도로 불법 영득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동죄의 적용 대상은 여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속기관의 예산회계처리기준상 특정 회계의 경우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지정돼 있는 경우에는 이를 전용하는 것이 금지된다. 예컨대 같은 학교법인 소속  대학 1의 교비회계로 대학 2의 공사비로 전출해 사용하는 것은 횡령에 해당한다고 본다. 사립학교법 제29조 및 동법 시행령의 규정상 학교법인의 회계와 학교회계와 법인회계로 구분되고, 학교회계 중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은 다른 회계에 전출하거나 대여할 수 없는 등 용도가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그 논거로 하고 있다.

특별히 교비회계는 그 재원이 학생들의 등록금과 발전기금, 자체 수익 등으로 편성되는 바 학교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물건비,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시설·설비를 위한 경비, 교원의 연구비, 학생의 장학금, 교육지도비와 보건체육비 등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에만 사용돼야 한다는 제약이 뒤따르고 있다. 따라서 주의할 점은 법이 학교법인과 대학 두 기관을 독립된 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사립학교법은 위 두 기관이 각 할당된 예산을 전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학 교비로 법인예산을 충당하거나 법인예산회계를 대학의 예산으로 전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대학당국이 고민하게 되는 영역은 대학업무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소송비용을 사용할 예산의 확보방안이다. 매년 시행되고 있는 교육부의 감사과정에서 감사관은 반드시 소송비용 관련자료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대학 총장이 업무상 횡령 혹은 배임수재죄 등 개인적인 비위사실로 형사재판을 진행하게 됐는데 이와 관련한 소송비용을 교비로 집행하는 것은 명백한 횡령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노조와 대학 당국 간 단체협약의 교섭과정에서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거나 극한 대립으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양 당사자가 고소·고발을 진행했고 총장이 피고소인이 돼 이에 대한 소송비용을 교비로 집행하는 것은 어떨까.

대법원은 총장이 대학경영과정에서 발생한 송사에 대응하기 위해서 일견 공적인 용도로 소송비용을 교비로 집행하는 것조차도 불허하고 있다. 사립학교 제29조가 정하고 있는 교비회계는 학교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그 용도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으므로 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전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다는 취지다.(대법원 2002도 235판결) 해당 판결은 업무담당자가 관계 법령을 위반해 형사재판을 받게 됐고 이를 대응하기 위해 소송비용을 학교교비로 집행한 것이다.

그런데 대학 당국의 업무담당자가 업무수행을 적법한 방법으로 수행했음에도 일부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형사재판에 회부돼 소송대응을 위해 소송비용을 교비에서 집행하는 것도 횡령의 범의가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위 판결문의 다음과 같은 판결요지를 읽어보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타인으로부터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자금을 위탁받아 집행하면서 그 제한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그 사용이 개인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경우는 물론 결과적으로 자금을 위탁한 본인을 위하는 면이 있더라도 그 사용행위 자체로서 불법 영득의 의사를 실현하는 것이 돼 횡령죄가 성립한다.”

이 같은 법적논리가 바뀌기 어려운 이유는 법문언상 사립학교 제29조가 정하고 있는 교비회계는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교육이 학교경영과 행정업무 등의 보조가 없이 수행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교비의 용도를 학교교육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현장성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의 구조에서는 대학 경영진이 소송대응과정에서 사용할 예산의 항목이 누락돼 있기에 개인의 금전으로 소송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형편이다. 대학경영과정에서 소송응소는 피할 수 없는 업무이기에 적법한 행정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송비용은 사립학교법이 정하고 있는 현행 교비항목 외에 별도의 예산항목을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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