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실험실 안전사고 증가 추세···법안 미흡, 관리 주체 제각각
해외 대학은 고용노동법 산하 관리···대책 마련 시급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경북대 실험실 폭발 사고로 대학 실험실 안전문제가 재차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장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여전히 부재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12월 경북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폐화학물질을 정리하던 과정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학원생 3명과 학부생 1명이 화상을 입었다. 그 중 대학원생 A씨와 학부생 B씨는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경북대가 지난달 초 예산 문제로 학생들의 치료비 지원을 잠정 중단하자 가족과 학생들이 반발했다. 경북대가 최근까지 A씨에게 치료비 4억9000만원, B씨에게 1억6000만원을 지급했으나 추후 치료비를 더 이상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 6일 대학원생노조, 경북대총학생회,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 등이 경북대 총장실을 항의방문하면서 경북대 총장으로부터 피해자 치료비 전액 지급 약속을 받았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언제, 어디서 대학 실험실 사고로 피해자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원인 진단과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안전관리 취약···해마다 안전사고 증가 = 실험실 사고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2015년 8월에는 서울대 공학관에서 실험 도중 질산이 튀어 학생 한 명이 손목에 화상을 입었다. 2017년 고려대에서는 유독가스 유출사고가 발생해 학생과 교직원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10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과학기술분야 실험·실습실 사고 건수는 225건으로 전년(191건)에 비해 17.8%(34건) 증가했다. 2015년 135건, 2016년 154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18년 과학기술, 예·체능 및 기타 분야 실험·실습실 안전 환경 평가 결과에서도 연구시설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하는 수준의 4·5등급 실습실은 전년(2개)보다 5개 증가한 7곳이었다.

인하대의 ‘대학 실험실 안전관리 체계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2017년)에 따르면 대학 실험실의 안전관리는 정책 집행 기능을 가진 정부부처에서 담당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안전관리 전문성을 가진 기관의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대학의 화학실험실은 적합한 위험물안전 기술 기준이 없어 일반 사업장 기술기준을 적용하거나 허가 부서(소방서장)가 사안별로 판단하고 있다. 대학 연구원들이 대부분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산업안전법이 적용되지 않아 대학 구성원 특성에 따른 안전관리 정책도 미비하다는 분석이다.

‘연구실 안전 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 2005년 제정됐지만 이공계 연구실험실만 적용하고 있으며, 비이공계 실험 실습실의 위험요인 발굴과 관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일부 금액만 지급되는 연구실보험···대학원생 처우 개선 필요 목소리= 보험의 허점도 있다. 사건 이후 경북대는 보험액보다 치료 금액이 많아 재정상 부담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구실안전관리보험과 교육시설재난보험에 각각 가입해 있지만 연구실안전관리보험의 가입 한도액은 50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다 교육시설재난보험은 호프만식 계산법(피해자의 장래 예상 수입액 가운데 생활비나 소득세 등 모든 비용을 공제한 뒤 피해자의 근로가능연수를 곱해 배상액 등을 산출하는 방식)에 따라 산출되는 것으로 무한 지급 방식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대학원생노조도 중대재해사고의 실험실 재해보험의 보장성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결국 대학원생의 연구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치료비 전액 지원과 산재기간 동안의 급여를 지급하는 산재보험과 달리 대학원생에게 적용되는 보험은 거액의 치료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구활동 종사자들의 교육과 건강검진도 필수사항이나 2014년 실태 조사에 의하면 대학은 55% 정도만 건강검진을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실태조사에서도 일반건강검진과 특수건강검진 실시 현황을 살펴보면 대학이 58.3%로 연구기관이 89.8% 정도인 것에 비해 현저히 낮다.

해외 선진국은 연구실안전법 대신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 경상대 법학연구소가 지난 2월 발표한 ‘대학 연구실 안전 강화를 위한 법제 개선방안’에 따르면 국내 대학 연구실에 적용되는 연구실안전법(연안법)은 한국이 유일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산업안전보건법을 바탕으로 연구실 안전 프로그램을 수립, 감독하고 있다.

미국 MIT는 안전과 관련한 미국의 법체계를 따른다. 노동부 장관이 직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연방안전보건기준의 공포, 수정, 폐기 권한을 갖고 주정부는 노동부 장관에게 기준을 상회하는 안전보건기준과 집행계획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MIT는 이런 규정에 따라 대학에서 운영하는 환경, 보건 및 안전 사무소(EHS)를 두고 안전관리를 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는 ‘직장에서의 안전보건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학은 고용주에 해당된다. 따라서 대학의 업무진행과정에서 영향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모두 안전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옥스퍼드대는 이사회 산하에 안전보건 관리위원회를 두고, 별도로 안전보건 자문위원회도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 국립대는 2004년부터 국립대의 법인화로 안전보건 관련 사항은 노동안전위생법에 적용을 받는다. 이 때문에 보다 엄격한 근로감독 체계를 꾸릴 수 있었다.

연구실 안전 확보 위한 제도 관리 시급 = 결국 반복되는 대학 실험실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국대학원생노조는 “이번 사건은 대학원생들의 연구활동이 얼마나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국내 실험실 기관의 8%밖에 되지 않는 대학에서 전국 실험실 사고의 80%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며 “실험실 안전대책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 역시 체계적인 제도 개편을 해결 방안으로 꼽는다. 조상제, 김상희, 이소희 연구원 등은 현행 체제에서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에 의한 관리대상의 일부인 과학기술분야 연구실만 과기정통부에서 별도 관리하면서 안전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일반적인 안전관리와 교육시설재난공제회를 통한 대학 안전사고 시 보험금 지급을, 고용노동부는 일반적인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사항을, 과기정통부는 연안법을 통한 연구실 안전점검만을 담당하면서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어렵다.

연안법의 적용 대상 확대도 점검이 필요하다. 연안법 적용 대상을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에 설치된 과학기술분야 연구실로 한정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크다. 대학 내 안전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범위를 더 확대할 필요도 있다.

제도 개편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 연구실 안전환경 관련 법안은 이미 수차례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에 대학원생노조는 “21대 국회와 교육부, 과기정통부, 고용노동부가 합심해 대학원생의 연구노동환경 안전을 책임질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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