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컴(윌리엄 오브 오컴)의 면도날을 아는가. 윌리엄 오브 오컴은 14세기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다. 오컴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의 면도날 이론을 주장했다. 즉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면도날로 잘라내고, 단순하게 사고하는 것이다. 경제성의 원리, 사고절약의 원리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 논쟁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공공성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대학은 정부의 관리와 통제 대상이다. 따라서 자율보다 책무가 강조된다. 이에 비해 교육시장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대학은 자율집단이다.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무엇이 정답인가. 오컴의 면도날을 빌리자. 불필요한 가정을 도려내면 ‘대학은 교육기관’이란 단순 명제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교육기관의 핵심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인재 양성이다. 또한 인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회, 나아가 국가다. 다시 말해 대학은 사회와 국가를 위해 기여·봉사하는 인재를 양성한다.

명제가 단순하니 결론도 단순하다. 대학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봉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공공성의 시선이든, 교육시장의 시선이든 대학의 경쟁력 강화가 정부의 책임이자 의무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면 아끼지 말아야 하며,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는 규제가 있다면 철폐해야 한다. 만일 대학이 지원과 자율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책무를 다하지 않고, 교육기관으로서 부정과 비리를 일삼는다면 엄벌이 마땅하다.

지금 교육부는 대학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다. 관리와 감시 대상이라는 의미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강조하며 대학 지원에서 성과를 강조한다. 교육부의 인식대로 대학이 공공재라면 정부가 대학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70%는 사립대가 책임지고 있다. 정부의 직무유기다. 기재부의 시각대로 성과를 강조한다면 대학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기업이다. 그런데 기업의 속성은 이윤 추구다. 관리, 통제보다 자율이 보장된다. 대학이 기업처럼 성과를 창출하려면 자율 보장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찌 보면 부끄럽다. 정부 부처의 시선이 다르다. 교육철학 부재로도 해석 가능하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대학을 공공재로 인식한다면 전적으로 정부가 지원을 책임지라. 반면 대학의 성과를 주문하고 싶다면 자율을 보장하라. 이것이 오컴의 면도날 원리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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