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정성민 기자] 대학가가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란 말이 있다. 대학가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미래교육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 그렇다면 미래교육을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규제 철폐, 재정 건전성(자율화) 실현, 대학기본역량진단 재설계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이에 본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공동기획을 통해 대학가의 미래교육 준비를 위한 과제와 대안을 모색한다.

<글 싣는 순서>
⓵“규제 공화국 오명, 규제 철폐 없이 미래교육은 ‘그림의 떡’”
⓶“대학 재정 건전성(자율화) 실현이 미래교육 혁신의 원동력”
⓷“대학기본역량진단, 구시대 프레임 벗어나 미래교육 기반으로 재설계”

‘19세기의 건물에서 20세기의 교수가 21세기의 학생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X세대와 Y세대를 이어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특징도 보유)가 등장했지만, 대학과 교수가 학생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않게 변화를 실감하고, 변화에 신속히 대처할 당위성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원격교육이 급부상하면서 원격교육 시대, 즉 미래교육 시대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이는 대학의 대혁신을 요구한다. 미래교육 시대를 준비하려면, 대학이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래의 프레임으로 새롭게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대학기본역량진단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의 충원율 지표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대학기본역량진단(2021년 시행 예정) 평가지표는 코로나19 이전 BC(Before Corona) 시대 관점에서 설계됐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 AC(After Corona) 시대의 수요와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19세기, 20세기의 지표로 21세기, 22세기 나아가 23세기의 대학을 평가하는 격’이다.

미네르바스쿨, 온라인 플랫폼 기반 미래대학 실현 = 대학의 미래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미래대학의 모델’, 미네르바스쿨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다. 미네르바스쿨은 별도의 대학 건물이 없다. 1학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2학년부터는 서울, 베를린 등 7개 도시 기숙사를 이동하며 생활한다.

수업은 100%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미네르바스쿨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수업에 참여한다. 수업 방식은 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 플립트 러닝이란 학생이 수업 전에 온라인 영상으로 먼저 학습하고, 수업 시간에 교수와 학생이 토의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수업의 초점은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효과적 커뮤니케이션 △효과적 상호작용에 맞춰진다.

미네르바스쿨 사례에서 보듯이 미래교육의 핵심은 온라인 플랫폼 기반 교육이다. 켄 로스 미네르바 프로젝트 아시아 총괄 디렉터는 “교육기관은 새로운 교수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미네르바는 전혀 다른 교육모델을 만들었다. 미네르바의 디지털 온라인 학습은 물리적 공간에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의) 다채널을 통해 상호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원격교육 시대 개막, 필수이 아닌 선택 = 미네르바스쿨이 일찌감치 미래대학 실현에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국내 대학은 벤치마킹 수준에 그치고 있다. 미국과 달리 각종 규제가 한국판 미네르바스쿨 탄생을 가로막는다.

벤 넬슨 미네르바스쿨 창립자는 “한국에서도 미네르바스쿨이 혁신대학으로 주목받으며 미네르바스쿨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싶다는 10여 개 대학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면서 “하지만 한국은 오프라인 기반 대학의 경우 원격교육을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온라인 기반의 미네르바스쿨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19로 전국 초중고와 대학이 원격교육 시대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에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원격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김기영 전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으로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이후로, 대학에서도 새로운 변화에 대해 논의가 많았다. 논의의 하나가 오프라인 강의를 줄이고 온라인 강의를 활성화하는 것이었다”며 “그동안 어려운 대학재정과 온라인 수업 허용 범위 제한 등 현실적인 원인으로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온라인(원격)교육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격교육으로 미래교육 기반 마련···평가지표는 구시대 산물 = 교육부는 지난해 8월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이하 2021 진단) 기본계획(시안)을 발표했다. 당시 교육부는 2021 진단의 목적을 대학의 자율성 존중, 지역대학 배려 강화, 대학의 평가 부담 완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부는 2월 7일 전국 대학에 공문과 함께 2021 진단 편람을 발송했다.

편람에 따르면 2021 진단 평가지표는 △발전 계획의 성과 4점(특성화 계획 또는 중장기 계획 등 발전 계획+자율지표) △교육 여건 20점(전임교원 확보율+교육비 환원율) △대학 운영의 책무성 9점(법인 책무성+구성원 참여‧소통) △수업 및 교육 과정 운영 29점(교육과정 운영 및 개선+수업 관리 및 학생 평가) △학생 지원 13점(학생 학습역량 지원+진로‧심리 상담 지원+취‧창업 지원) △교육 성과 25점(학생 충원율-신입생 충원율·재학생 충원율+졸업생 취업률-졸업생 취업률·유지취업률)로 구성된다.

2021 진단은 기본계획(시안) 발표부터 도마 위에 올랐다. 충원율 때문이다. 2021 진단 교육 성과 부문에서 충원율 배점은 20점이다.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는 10점이었다. 사실상 충원율이 2021 진단 결과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 서울’ 현상 심화로 지방대학이 갈수록 충원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2021 진단은 지방대학 죽이기라는 비판 여론에 휩싸이며 대교협,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전국대학노동조합이 일제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비단 충원율만이 문제가 아니다. 미래교육 관점에서 보면 2021 진단의 프레임은 구시대의 산물이다. 미래교육의 키워드로 온라인 플랫폼과 에듀테크가 꼽힌다. 하지만 2021 진단에서 대학의 온라인 플랫폼·에듀테크 인프라와 역량을 평가할 지표가 전무하다. 예를 들어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학습 관리 시스템) 구축 현황, 원격수업 강좌 개발 현황, 원격수업 강좌 만족도 등의 지표다. 이는 2021 진단 평가지표가 코로나19 이전에 설계됐기 때문이다.

대학재정지원사업 평가지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국회 교육위원회 박경미 의원이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주요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정량 평가지표를 분석한 결과 △교원 △교사 △교육비환원율 △학생 1인당 교육비 △장학금 △등록금 △충원율 △취업률 △교육과정 △연구 △산학 △국제화 △정원 조정 △총장 선출 등 14가지 정량지표가 대표적으로 활용됐다. 교원 지표(11개 사업)가 가장 많이 활용됐고 취업 지표(10개 사업), 충원율 지표(8개 사업) 순이었다. 장학금지급률, 교원 연구실적, 산학협력도 6개 사업에 공통적으로 포함됐다. 대학재정지원사업 평가지표 역시 과거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박 의원은 “재정지원사업에서 특정 평가지표가 중복 적용되는 것은 특정지표에 따라 ‘대학 줄 세우기’가 될 가능성이 크고, 대학의 자율 운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기본역량진단 재설계, 미래교육 향한 발걸음 = 코로나19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빠르게 향하고 있다. 미래교육의 핵심은 온라인 플랫폼, 그리고 에듀테크다. 온라인 플랫폼과 에듀테크 기반의 미래교육에서는 교수법과 학습 스타일, 하드웨어(건물)와 소프트웨어(시스템), 대학 설립 조건 등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과거의 프레임으로 절대 미래교육을 실현할 수 없다.

벤 넬슨 미네르바스쿨 창립자는 “미국에서도 미네르바스쿨 설립 당시 전통 대학과의 차이점 때문에 미국 대학설립기관의 통제로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미국에서도 대학 혁신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한국 정부도 교육혁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규제를 유연하게 풀어나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에 교육부는 기존 일정과 방식에 얽매이지 말고, 대학기본역량진단 재설계에 착수해야 한다. 지금 대학은 온라인 플랫폼과 에듀테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본격적으로 미래교육 준비에 한걸음씩 나가고 있다. 따라서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지표도 대학의 미래교육역량을 측정·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은 “한국은 ICT 강국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정작 에듀테크가 공교육에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대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코로나19 위기는 첨단 ICT 기술 기반의 에듀테크가 고등교육에 뿌리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 5G 등이 교육에 접목되는 것이 바로 에듀테크다. 에듀테크를 고등교육에 도입, 오프라인 교수학습을 대체·보완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과 서비스 인프라 구축 방안을 고민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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