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에 설립 추진 중인 한국폴리텍대학 로봇 캠퍼스 조감도. (사진=영천시)
경북 영천에 설립 추진 중인 한국폴리텍대학 로봇 캠퍼스 조감도. (사진=영천시)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학교법인한국폴리텍이 설립 준비 중인 폴리텍대학 로봇 캠퍼스(이하 로봇 폴리텍)에 대해 사실상 기존 대학의 유사 학과들과의 차별성이 없음을 인정하는 내용의 입장을 밝혔다. 전문대 총장단이 로봇 캠퍼스 설립을 거세게 반대하며 ‘기능 중복’을 문제 삼고 있는 상황이라 파장이 예상된다. 폴리텍대학의 설립 준비에도 미비함이 엿보여,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학교법인한국폴리텍이 경북 영천에 로봇 폴리텍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현재 캠퍼스 건물과 기자재, 실습실 등을 갖추고 교육부의 설립 인가 심사를 받고 있다. 지난 20일,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는 캠퍼스 부지를 방문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이미 로봇 학과 운영 중…“추가 설립은 낭비” = 그러나 전문대학가에서는 설립 인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로봇 폴리텍이 인근 전문대 학과들과 기능이 겹쳐, 설립 명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25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회장 남성희, 대구보건대학교 총장)는 전국 135개 전문대 총장단의 이름으로 로봇 폴리텍의 설립 인가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서에서 전문대 총장단은 영천과 같은 지역의 로봇관련 전공이 이미 운영되고 있어 기능적으로 중복되는 추가 교육기관의 설립은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문대교협에 따르면 로봇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전문대 수는 전국 25개교다. 이 중에서도 영천 지역과 동일한 권역 내에는 대구 소재 영진전문대학교와 영남이공대학교, 경북 소재 안동과학대학교에서 로봇 자동화 시스템 전공, 로봇 메카트로닉스 전공, 전기자동화과 등의 로봇 관련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세 전문대의 로봇 관련 학과에서 양성하는 인원은 매년 730명으로, 현재 1442명이 재학하고 있다. 로봇 폴리텍은 설립 인가를 받으면 기계‧전자‧자동화‧IT 등 4개 학과에서 각 25명씩 총 100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전문대 총장단은 성명서를 통해 “전문대가 이미 전국 25개교 로봇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경북 영천시에 신규 폴리텍 로봇 캠퍼스를 설립하려는 것은 과잉 인력의 양성과, 막대한 국가 재정의 손실을 초래한다”고 꼬집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관련 분야에 대한 우수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면 현재 운영 중인 전문대에서 필요한 직무나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과잉 인력의 양성이나 국가 재정 낭비를 막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부처 간 입장도 엇갈린다. 특히 교육부는 로봇 폴리텍의 신설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정윤경 교육부 전문대학정책과장은 “교육부도 기획재정부도 폴리텍대학이 비학위 과정 위주로 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이 반영돼 폴리텍대학 캠퍼스 신설 시 타당성을 검토하는 고시가 제정된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앞서 2019년 6월 교육부는 로봇폴리텍에 대해 비학위 과정을 위주로 개설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교육부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로봇 폴리텍에 학위과정을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밀어붙이겠다는 계획이다. 정언숙 고용노동부 직업능력정책과 사무관은 “설립 인가를 심사받는 것이 학위과정을 설치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폴리텍대학, 전문대와 차별성 설득 실패…일부 기능 중복 인정하기도 = 폴리텍대학 측에서는 로봇 폴리텍과 기존 대학의 로봇 관련 학과의 교육과정이 다르다며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차별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부족한데다, 심지어 산업 현장의 수요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인정하는 관계자의 발언까지 나와 설립 명분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대를 중심으로 로봇 폴리텍 설립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폴리텍은 ‘차별성’을 내세워 설립 필요성을 설명하고 나섰다. 로봇 폴리텍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폴리텍대학 법인 기획부 관계자는 “(로봇 관련 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다른 데와 똑같이 교육을 하겠다는 게 아니다. 교육과정이 다르다”고 밝혔다. 최무영 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 추진단장 역시 “로봇 폴리텍은 산업 수요와 교육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준비했다”며 교육과정의 차이를 강조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교육과정상의 차이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폴리텍대학 측은 정확한 근거를 대지 못했다.

로봇 폴리텍의 교육과정에 대해 폴리텍대학 법인 기획부 관계자는 “산업에서 요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교육과정을 설계했다. 실습실 등을 산업 현장과 거의 유사하게 구축해, 실습을 받고 나면 실무에 즉시 적용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과제, 문제해결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전문대의 교육과정 설계와 다를 바 없다. 전문대 역시 현장 실무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산업 현장과 동일한 구조의 ‘현장미러형 실습실’ 등을 구축하고, 산업체 인사를 교육과정 설계 과정에 참여시키는 등 현장 맞춤형 교육을 운영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 점을 지적하자 “교육의 트렌드가 산업 현장에 즉시 적용 가능한 인력을 바라는 산업의 요구를 반영하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전문대와 폴리텍대학의) 공동의 목표”라고 말하며 사실상 교육과정과 지향점의 차별성이 없음을 인정했다.

심지어 “기존 대학의 로봇 관련 학과와 유사하다면 로봇 폴리텍이 설립된 후 상호 협력하는 방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발언도 덧붙였다.

기존 로봇 관련 학과와의 차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교육혁신총장협의회 회장을 지낸 바 있는 김영도 동의과학대학교 총장은 “로봇 분야는 기존 학문 분야인 기계, 메카트로닉스, 전자제어, IT 등과 연결돼 있는 기술”이라며 “로봇 분야라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학문이 아닌, 기존 학문의 토대 위에서 접근해야 하고, 여러 전공이 융합돼야 한다. 새로운 접근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대와 폴리텍대학 간 기능 중복 문제는 정부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사안이다. 정윤경 교육부 전문대학정책과장은 “폴리텍대학과 전문대학의 기능이 중복되는 면이 있다”며 “이런 이유로 지난 2019년 11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신설할 때 사전에 관계부처 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타당성심의위원회에서 설립 사업 추진의 타당성을 검토하기로 고시를 제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고시는 로봇 폴리텍 설립 추진이 상당 부분 진전된 후 제정돼 로봇 폴리텍 설립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교육여건 사전 조사는 충분했나 = 폴리텍대학 법인이 로봇 폴리텍 설립을 추진하기 전, 충분한 교육여건 분석을 실시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더해진다. 폴리텍대학이 로봇 관련 전문대 학과 개설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다.

전문대와의 교육과정상 차이점을 설명하던 과정에서 폴리텍대학 법인 기획부 관계자는 “전문대교협에서 관련 학과가 있다고 말을 했다. 지금은 로봇폴리텍이 설립 단계이기에, 정리가 되고 나면 전문대교협에서 말하는 학과들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전문대교협이 파악한 학과들과 로봇 폴리텍의 유사성을 비교했느냐는 질문을 하자 “전문대와 비교분석을 하진 않았다”고 이야기할 뿐, 폴리텍측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답하지 못했다.

또한 전문대교협이 밝힌 자료 외에 대학의 로봇 관련 학과 개설 현황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대 총장단은 로봇 폴리텍 설립 추진 전에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대 총장단은 성명서에서 “미래사회 주력 신산업인 로봇 산업분야는 국가차원의 전략적인 정책으로 추진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로봇 폴리텍 설립 추진은 사전에 로봇분야에 대한 적정 인력 및 국가 재정의 효율적 투자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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