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본지 전문위원

4월 19일은 무슨 날일까. 4.19혁명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역사적으로 4월 19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데이’였다. 물론 4.19혁명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날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던 날이다. 마침 이번 4월에도 국회의원 총선이 있으니 이래저래 4월은 정치의 달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과학기술인들에게 4월은 무엇보다도 과학의 달이다. 그리고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과학의 날’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국민적으로 인식시키고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노력을 다짐한다는 목적으로 만든 법정기념일이다. 과학의 날이 처음 정해진 것은 1968년이었다. 정부는 대통령령으로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부)의 발족일(1967년 4월 21일)을 기념해 4월 21일을‘과학의 날’로 정했다. 이렇게 해서‘과학의 날’을 기념해 온지 40여년이 흘렀고 올해 우리는 제37회 과학의 날을 맞는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의 날은 4월 21일이 아니라 4월 19일이었고, 그것도 193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국을 잃은 일제시대에 이미 민족주의적인 과학기술인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자‘과학데이’를 정했고 대중적인 과학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과학데이를 처음 제안하고 과학대중화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은 김용관(1897-1967)이다. 그는 1918년 경성공업고등학교 요업과를 1회 졸업한 기술자이자 신지식인이었다. 김용관은 1923년에 발명학회를 발족시켰고, 1928년에는 조선물산장려회에 참여해 고려발명학회를 조직했으며, 1933년에는 발명학회 기관지‘과학조선’을 창간했다. 그리고 1934년에 처음으로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해 제1회 과학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그는 진화론이 인류에게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는 생각에서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사망일인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했다고 한다. 제1회 과학데이는 조선지식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결국 이것은 독립운동가 여운형,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 보성전문 교장 김성수, 이화여전 교수 김활란 등 당시 쟁쟁했던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했던 ‘과학지식보급회’ 결성으로 이어졌다. 1938년 제5회 과학데이 행사 때는 김용관이 일본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의 날은 의심할 여지없이 1934년 4월 19일이다. 1934년 과학데이 당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자각했던 선각자들은‘한 개의 시험관은 전세계를 뒤집는다. 과학의 승리자는 모든 것의 승리자다. 과학의 대중화운동을 촉진하자’고 외쳤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과학기술이 그 변화의 원동력인 그런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과학대중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일제시대 지식인들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의 달을 맞아 올해 과기부가 내건 주제표어는 ‘과학기술,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이다. 4월 19일이면 선거가 끝난 후 정치적인 상황으로 다소 어수선할 시점이다. 4월 19일 우리는 선거결과나 4.19혁명보다는 과학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과학대중화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과학의 중요성을 일찍 자각했던 선각자들도 많았음에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과학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달력을 보면 과학기술관련 기념일들이 적지 않다. 3월 23일이 기상의 날이고, 4월 22일은 정보통신의 날, 5월 19일은 발명의 날이며, 6월 5일은 환경의 날, 9월 18일은 철도의 날, 그리고 10월 30일은 항공의 날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과학기술을 만나고 접한다. 과학의 날은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낫겠지만, 정말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면 일년 365일이 과학의 날이고 일년 12달이 과학의 달이 돼야 할 것이다. 과학의 날, 과학의 달을 맞아 일부러 과학의 날을 기념하지 않아도 될 그런 미래를 꿈꿔본다. 그게 바로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과학기술중심사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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