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대학지자체상생발전위원장)

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아내가 뒤집어졌다. 누룩만 봐도 얼굴색이 홍당무가 되는 아내가 ‘막걸리 한 잔’에 뒤집어졌다. 뽕짝이나 트롯 종류는 내 취향이 아니라며 얼씬거리지도 않았던 아내가 트롯 가수 영탁의 ‘막걸리 한 잔’에 푹 빠져 있다. 젊은 미남자이기도 하려니와 밝은 에너지와 미소, 구성진 가락과 음색에 젖어든 것이다. 여느 중장년처럼 감성 발라드로 일관하던 아내가 영탁의 ‘뽕필’에 ‘매력이 쩐’ 이유는 모 방송사의 트롯 프로그램 때문이다. 미스터 트롯은 7명의 걸출한 트롯 스타를 배출했다. 진 임영웅은 세련되고 정교한 트롯 교과서로, 선 영탁은 트롯의 ‘완전 찐’으로, 미 이찬원은 청국장 목소리를 소유한 진또배기로 손색이 없었다. 김호중은 탄탄한 성악 베이스 동굴 보이스를, 장민호는 올곧은 트롯 사랑을 남자의 무게감으로, 정동원은 앳된 소년의 외형으로 중장년의 곡절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아내 얘기를 끄집어냈지만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가수 에일리가 ‘눈물이 맘을 훔쳐서’, ‘하이어’로, 박정현이 ‘꿈에’, ‘하비샴의 왈츠’를 부를 때 나는 그들의 덕후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21세기형 트롯 버전인 미스터 트롯이 나에게 감성충격을 가할 줄이야.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김희재의 ‘나는 남자다’에 ‘희며들’었다. 카리스마와 절도를 무기로 현란한 댄스를 선보인 희재야말로 가장 딴따라다운 트롯 가수라고 생각한다. 뒤끝 작렬이라 욕하지 말라. 장윤정이 그를 ‘띄엄띄엄’ 보려고 할 때는 약간의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톱7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강태관은 베테랑 판소리꾼으로서, 김수찬은 능수능란한 기성 가수의 품세로, 나태주는 태권을 접목시킨 전혀 새로운 장르로 시청자들의 ‘입틀막’을 감행했다. 후속 프로그램인 사랑의 콜센터에서 신청자들은 갖가지 이유로 최애 가수, 최애곡을 선정한다. 이는 톱7의 개성과 다양성을 방증하는 또다른 표현이다.

여타 장르에 비해 홀대받았던 트롯이 K-pop 후광에 힘입은 ‘국뽕’이 아닌 새로운 가요 판도를 형성하는 ‘트롯갑’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결승전 시청률은 자그마치 37.5%를 점유했다. 현재 트롯 관련 방송 프로그램은 미스터 트롯 : 사랑의 콜센터, 나는 트로트 가수다, 트롯신이 떴다, 트롯 전국체전 등 10여개에 이른다. 1년 전에 비하면 ‘차고 넘칠’ 정도다.

‘트롯갑’ 대세론에는 이유가 있다. 트롯 외적 이유는 구태의연을 되풀이하는 정치의 실종, 각박한 살림살이에 대한 고단함, 피로감에 젖은 코로나19 상황 등이다.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트롯이 자체적으로 안고 있는 장르 내적인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시와 시조가 다른 것처럼 발라드와 트롯은 다르다. 발라드는 감성의 ‘끝판왕’이지만 트롯은 여기에 감칠맛 나는 구성진 가락과 꺾기 창법이 얹혀진다. 게다가 트롯 가사는 노골적이다 못해 자유분방하고 솔직하다. ‘갑분싸’에 해당하는 ‘엄근진’을 배격한다. ‘십분내로’는 ‘여자는 꽃이랍니다 혼자 두지 말아요 당신 가슴에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될래요’로, ‘정말 좋았네’는 ‘불타던 그 가슴에 그 정을 새기면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그 밤이 좋았네’로 농익은 감성을 서슴지 않는다. 청중들은 19금을 넘는 ‘므흣’한 표현도 해학과 풍자로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한편 트롯에는 오욕칠정을 버무린 현실감 있는 서사가 들어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의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세월아 비켜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아모르 파티’의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은 국민 가사가 되었다. 다소 ‘클리셰’가 묻어나는 가사이긴 하지만 원곡 가수의 ‘저 세상 텐션’ 앞에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특정 방송의 특정 프로그램, 특정 가수를 위주로 기술하긴 했지만 오해 없기 바란다. 트롯은 즐겨 감상하는 데 묘미가 있다. 오롯 느낄 수 있다면 그 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아무튼 아내가 ‘트롯각’에 사로 잡혀 영탁의 노래에 빠져들 때면, 그가 부른 또 다른 트롯의 제목을 빌려,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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