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영 호서대 공연예술학부 교수

호서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부교수 임유영
임유영 교수

6월, 학교의 예술관은 언제나 분주했다. 1층 야외무대 위에는 채색된 배경막이 몸을 말리며 화려하게 너울져 있고, 2층 아고라에서는 노트북을 맞대어 놓은 채 기획회의가 한창이다. 그 너머로 의상을 제작하는 재봉틀 소리, 그리고 그 한 층 위 예술극장에서는 테크니컬 리허설이 무르익고 있다. 연출부는 객석에 자리를 잡았고, 조명 담당은 스캐폴딩(Scaffolding) 작업대 옆에서 대기하고 있고, 음향 책임자는 오퍼레이션룸에서 큐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는 각자의 배역을 맡은 학생들이 발을 구르며 서로의 눈을 맞추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열렬히 상대방에게 자신의 대사를 쏟아내고 있다. 연극제작실습 공연이 바로 내일모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6월은 그랬다.

그러나 2020년 6월, 학생들의 열정 넘치는 모습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이고 소극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그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연극은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무대예술이다. 특히 연극 예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는 인간 자체를 매개로 삼는 기예(技藝)다. 따라서 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연기 교육은 대부분 직접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실습으로 이뤄진다. 연기를 배우는 학생들은 극중 인물의 삶을 직접 느끼며 극중 인물의 삶을 체험한다. 무대 위에서 진실하게 연기하는 과정을 통해 배움을 발견하며 그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의 엄습은 그 모든 과정을 공포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무대 위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침을 튀기며 땀을 흘리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배움에의 열정과 성취라는 미덕이 아니라 가장 경계해야 할 금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코로나19의 창궐로 사람과의 대면 자체가 금기시됐고 대학의 대부분의 교과목이 즉각적으로 온라인 강의로 전환됐다. 예술 실기 교육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무엇보다 최우선시돼야 하는 것은 생명 관리와 공중보건이기에 그 어떠한 파격도 용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온통 혼란이었다. 당황스럽기만 한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보다도 예술 계열의 교수자와 학생 모두에게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실기 교육이 온라인으로 가능한가?’였다. 예술 실기 교육은 지식과 더불어 경험의 체계를 습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수자는 빈번히 직관을 활용, 학생을 주시하고 그들의 감정과 행위의 순간을 포착한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반복 경험함으로써 인간을 표현하는 설득력 있는 방법들을 탐구하고 이를 자신의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 체득한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은 실기 교육을 평면의 온라인 화면 속에 가둬버렸다. 교수자는 실기 연습실 대신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서른 평이 넘는 연기 연습실에서는 마이크 헤드셋을 끼고 수업한 적이 없었지만 15인치 노트북 앞에는 마이크를 설치했다. 화상 회의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학생들은 헤드셋을 끼고 노트북과 휴대폰 화면 앞에 햄릿을 연기하고 있다. 학생들은 TV나 영화 등 매체 연기를 경험하는 것 같아 나름대로 좋은 면도 있다고 자조적인 위로를 하지만 연기술이 단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선량한 학생들은 격렬한 감정을 그나마 마음껏 토하기 위해 가족을 쫓아내고 1인 연습실을 빌려 온라인 화상 수업에 참여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실기 교육을 이어갈 수 있을까? 화상 회의 플랫폼의 화면은 학생 수대로 촘촘하게 분할돼 떠 있지만, 화면 속에 갇힌 우리들은 오히려 점점 더 비어가는 듯한 공허함을 느낀다. 

코로나19는 교육의 체계를 그야말로 삽시간에 바꿔 놓았다.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로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도 교육 현장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언택트(Untact)가 보편화되고 원격수업의 새로운 체계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콘택트와 현장 수업이 중심이 되는 예술 실기 교육은 어떻게 재구성돼야 하는가? 연극 예술이 가지는 가장 큰 교육적 미덕은 협업에 있다. 학생들은 학년별로 또는 전 학년이 모두 모여 만드는 연극 제작 실습을 통해 실기를 배우는 동시에 사회의 일원이 돼가는 과정을 배운다. 학생들은 매일 함께 모여 연습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미워하다가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고 세상과 화해한다. 그러한 소통의 과정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술 교육의 또 하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예술 교육도 분명 재구성돼야 한다. 휩쓸려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의 과정을 성실하게 보여주는 변화여야 할 것이다. ‘무대 위에서 진실하게’를 배운 학생들은 진실한 것만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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