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4번 ‘독서문항’, 미움받을 용기, 침묵의 봄 등도 많이 언급돼
정의란 무엇인가, 죽은 시인의 사회, 엔트로피 등도 꾸준히 ‘상위권’
‘따라 읽기’ 능사일까? ‘자신만의 독서 리스트’ 만들어야

서울대 입학웹진 아로리 메인 화면
서울대 입학웹진 아로리 메인 화면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지난해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쟝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다. 이어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가 쓴 《미움받을 용기》,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N. H. 클라인바움의 《죽은 시인의 사회》,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었다고 답한 지원자들이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서울대는 자기소개서 4번 자율문항으로 ‘독서문항’을 두고 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3권 이내 선정해 그 이유를 기술하라”는 것이다. 대학이 별도 문항을 제시하면서까지 수험생에게 묻고 싶은 부분을 나타낸 것이기에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앞선 ‘선배’들의 선택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당장 대입을 앞둔 고3보다는 독서활동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고1, 고2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다만, 많은 사람이 고른 책이라고 해서 나도 뒤따라 같은 선택을 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은 금물이다. 서울대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능숙한 독서능력’일 뿐이다. ‘특정한 책’을 읽는다고 해서 유리하다는 생각은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지원자들의 독서 경향을 살피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고, 자신만의 문제 의식이나 탐구활동 등을 통해 만난 ‘자신만의 독서 리스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대 아로리, ‘2020학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공개 = 서울대 입학본부는 최근 웹진 ‘아로리’를 통해 ‘2020학년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을 공개했다. 자기소개서 4번 문항인 독서문항을 통해 수험생들이 읽었다고 제시한 책들을 집계한 결과다. 

서울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시모집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쟝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다. 현재 서울대는 수시모집 전부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두고 있으며, 전형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서울대 수시모집 지원자는 총 1만 7988명으로 이 중 365명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었다고 답했다.

이어 지원자들이 많이 읽은 책은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N. H. 클라인바움의 《죽은 시인의 사회》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조지 오웰의 《1984》도 200명 이상이 읽었다고 답한 책이었다.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20권의 도서를 한 해 전과 비교한 결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권의 도서 가운데 이름이 바뀐 건 단 2권에 불과했다. 2019학년에는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이 16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19위에 각각 선정됐지만, 2020학년에는 이들 책 대신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각각 14위와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간 서울대 지원자들 어떤 책 많이 읽었나…2014학년부터 2020학년까지 = 서울대는 2014학년 대입을 기점으로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목록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 자율문항인 ‘독서문항’을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대 입학본부는 “계열별, 모집단위별로 읽어야 하는 책이 정해져 있는지, 대학 이상 수준에서 공부할 어려운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 원서로 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만화책은 안 되는지 등 다양한 궁금증”들이 있다고 했다. 

서울대의 독서목록 공개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로도 서울대는 꾸준히 2년 주기로 지원자들이 많이 읽은 책 목록을 공개했다. 전체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권과 단과대별 지원자들이 많이 읽은 책 3권을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2015학년에 20권이 아닌 10권이 공개된 차이가 있을뿐 다른 해에는 매년 동일한 방식의 공개가 이뤄졌다. 

서울대가 이처럼 독서목록을 꾸준히 공개한 것은 지속적으로 궁금증을 표출한 교육 수요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지원자들이 많이 읽은 책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알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2014학년 처음 독서목록 공개 당시 학생부종합전형을 ‘정형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중복되지 않은 책이 2014학년 8700여 권, 2015학년 9000여 권, 2016학년 9500여 권 등으로 늘어나며 지원자들의 독서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서울대가 공개한 2014학년부터 2020학년까지의 독서 목록을 조사한 결과 총 7권의 책이 가장 많이 읽은 책 ‘베스트 20’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10권의 목록만 공개된 2015학년에 이들 책은 모두 베스트 10 안에 들었다.

지난해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었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서울대 지원자들의 독서목록에서 단연 눈에 띄는 책이다. 7년간 한 번도 최상위권에 거론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2014학년부터 2016학년까지 1위를 연거푸 차지했고, 2017학년부터 2019학년까지는 《미움받을 용기》가 1위를 차지하면서 2위로 밀려났지만, 2020학년 다시 1위로 올라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최근 7년간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N. H. 클라인바움의 《죽은 시인의 사회》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수험생들의 선택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책이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도 7년 연속 순위권에 든 책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수험생들의 관심이 예년만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4학년부터 2017학년까지는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8학년 14위로 순위가 내려앉은 데 이어 2019학년과 2020학년에는 20위와 19위를 각각 기록하는 데 그쳤다. 

7년 연속 선정되지 못했을 뿐 최근 들어 꾸준히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도서들도 존재한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의 경우 2016학년 7위를 기록한 이후 2017학년부터 2019학년까지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에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위에 선정됐다. 《미움받을 용기》가 국내에 발간된 것이 2014년 말의 일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보다 앞서 자소서를 제출해야 했던 2015학년 입시에서는 이름을 올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상황. 발간 직후부터 꾸준히 서울대 지원자들이 선호하는 도서로 자리매김해 있는 모습이다. 이외에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2015학년 10위 내에 들지 못했을 뿐 다른 해에는 모두 베스트 20에 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과대별 독서 베스트3는? 매년 달라지는 단과대, ‘뚜렷한 경향’ 단과대로 나뉘어 = 서울대가 공개한 단과대별 독서 ‘베스트 3’는 어느 단과대냐에 따라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 매년 지원자들이 많이 읽었다는 책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 단과대가 있는 반면, 매년 같은 책들이 꾸준히 상위권에 드는 단과대도 존재했다.

사회과학대학은 같은 책들이 매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뚜렷한 경향’을 보이는 단과대의 대표 격이었다. 2014학년부터 2020학년까지 7년간 1위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고, 2위도 《정의란 무엇인가》로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3위만 매년 달라졌을 뿐이었다.

농업생명과학대학도 마찬가지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이기적 유전자》가 매년 3위 안에 꾸준히 모습을 보였다. 《침묵의 봄》도 2015학년 《이중나선》에 밀려 3위 내에 들지 못했을 뿐 나머지 해에는 모두 ‘베스트 3’ 안에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마치 ‘필독서’라 여겨질 정도로 지원자들이 공통적으로 많은 읽은 책이 존재하는 단과대는 많았다. 자유전공학부는 《정의란 무엇인가》, 수의과대학은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사범대학은 《죽은 시인의 사회》, 공과대학은 《엔트로피》, 경영대학은 《경영학 콘서트》, 간호대학은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등이 ‘베스트 3’ 내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독서문항을 통해 ‘지원 동기’와 대학 입학 후의 ‘전공 적합성’ 등을 표현하려는 경우가 많다보니 생긴 일로 풀이된다. 

반면, 인문대학·자연과학대학·미술대학·생활과학대학·음악대학·의과대학·치의학대학원에서는 7년 연속 ‘베스트 3’에 든 책이 없었다. 다만,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과학대학의 경우 《이기적 유전자》가 2020학년, 《페르마의 정리》가 2019학년에 각각 빠졌을 뿐 지원자들이 많이 읽은 책으로 여섯 차례 선정됐다. 

치의학대학원에서도 《치과의사가 말하는 치과의사》가 2015학년부터 6년 연속 ‘베스트 3’에 든 것으로 조사됐다. 《미움받을 용기》와 마찬가지로 2015년에 책이 발간됐기에 2014학년에는 순위 내에 드는 것이 불가능했던 상황이다. 

■합격에 유리한 책? ‘왕도 없다’ 자신만의 독서 리스트 만들어야 = 이처럼 서울대 입학본부가 공개한 자료를 통해 다른 지원자들, 특히 앞서 서울대에 지원한 ‘선배’들이 많이 읽은 책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체 지원자 뿐 아니라 단과대별 현황도 공개하고 있어 수험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 참고로 삼기에 충분해 보인다. 

주의해야 할 것은 ‘무작정 따라하기’는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대는 ‘합격에 유리한 책’은 없다는 점을 처음 독서목록을 공개하던 2014학년부터 누누이 강조해 왔다. 서울대가 원하는 것은 특정한 책을 읽은 수험생이 아닌 ‘능숙한 독서능력’을 지닌 수험생이라는 것이다. 충분한 독서활동을 통해 연마한 우수한 독서능력은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쌓아야 하는 대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서울대는 평가한다.

서울대 지원을 원하는 수험생이라면, 서울대가 독서문항 작성에 있어 ‘매직 솔루션’이 없다고 강조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독서 리스트’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는 그간 ‘학생부종합전형 안내’를 비롯해 독서목록 베스트 20 등에서 “타인에 의한 수박 겉핥기식 독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많은 책들 중 왜 그 책이 의미가 있엇는지, 읽고 나서 어떤 변화를 줬는지 생각하기 바란다. 독서를 통해 생각을 키워온 ‘큰 사람’을 서울대는 기다린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쉽사리 감이 오지 않는다면, 서울대 합격생이 소개한 ‘꼬리물기’ 방법을 써보는건 어떨까. 올해 아로리에 공개된 경제학부 합격생 인터뷰에는 “관심 있는 책 한 권을 골라 읽은 후 더 알아보고 싶은 내용이나 흥미로웠던 부분을 떠올려 이와 관련된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것”과 “책을 쓴 작가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을 찾아 읽는” 방법 등이 소개됐다. 독서방법에는 ‘정답’이 없기 마련이지만, 한 분야에 대해 비교적 깊은 지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 관심있는 특정 분야가 생기기도 한다는 점 등 장점이 많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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