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는 “막연한 전공 융합 목적 불분명”
전공 장벽 허물고 분명한 연구 목표 설계해야 지적도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인공지능(AI)을 가르칠 교원도 심지어 커리큘럼도 확정이 안 됐다. 막연하게 인공지능을 가르친다고 말은 했지만, 어떤 것을 목적으로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 A대 인공지능 관련 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수 년간 대학의 키워드는 ‘융합’이었다. 인문계, 이공계를 가리지 않고 융합전공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융합 없는 융합전공이 여전하다'는 현장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 주관 사업에 선정된 지역 대학 융합전공 주임 B교수는 “그간 학과 간 장벽이 너무 심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미래 신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의 경우 더더욱 전문교수를 찾기 힘든 이유도 ‘융합’이 불가능해서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은 컴퓨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연구 방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어렵다”면서 “각각 다른 분야의 교수들이 협업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경인지역의 C교수도 융합전공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교수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라고 밝혔다. C교수는 “학교에서 융합하라고 하지만 교수들은 자기 학문 외에는 다 변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융합의 걸림돌은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인데 고정관념을 깨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전공 장벽·재정지원 한계 등 개선사항 허다 = 앞서 나온 사례처럼 현장에서 느끼는 융합교육 장애물의 하나는 전공의 장벽이다. 전문가들은 전공 이기주의에 대한 교수와 학생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융합전공을 실시한 대학에서 “융합교육이 부전공이나 복수전공 제도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전공 이기주의가 높을수록 융합에 대한 이해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융합교육이 기존 교육과 다르지 않은 단순 강의와 토론 등 병렬적 방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교육방식의 문제도 있다. 현행 대학의 융합교육과정은 대체로 학생들의 협동학습, 교수들의 팀티칭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교수와 학생 간 긴밀한 상호작용이 없기 때문에 전공에서의 융합에도 한계가 있다.

교육종합연구소에서 발표한 ‘대학 융합교육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탐색’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대학에서는 융합전공에 있어 체험중심의 현장학습이나 인턴십 등이 강조된다. 융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학생 중심의 주제 선정 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미국 버지니아대의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자율연구 방식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주제를 고안하고, 교수들과 함께 학습 과정을 구성하는 기회를 갖는다.

재정지원 방식을 통한 융합전공의 확대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학령인구감소 등으로 향후 대학 도산의 우려에 따라 교육부의 방향이 정원 축소나 정원 이동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대학에서는 대학 문을 닫지 않기 위해 공학계열의 신설, 융합, 확대 등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연구자 간 융합·연구 지속성 확보해야 융합 가능= 이에 전문가들은 융합교육의 성공조건으로 연구자 간의 융합, 분명한 연구 목적 설정, 연구의 지속성 확보 등을 꼽았다.

연구자 간의 융합은 전공 장벽을 없애는 데서 시작한다. ‘학제 간 융합연구자의 시행착오 극복을 위한 성공적 융합연구 방법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융합연구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어려움 중에서 연구자들 사이의 융합이 연구 자체의 융합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연구자 간의 물리적 거리는 물론, 연구자 고유 학문 영역의 차이로 인한 융합의 한계를 극복해야 연구 진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다.

확실한 연구 목표를 가지고 연구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다. 초기 과제 진입에 필요한 구성원 간 공통 지식이 형성된 뒤 향후 연구 방향과 가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보고서는 “(연구 공유와 논의가) 해당 연구팀의 미래 목표를 설정하고 팀원들이 목표를 공유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갈등의 소지가 공동의 목표 아래 조율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C교수도 “그간 (융합에 대한) 어려움이 있어서 이번에는 연구방향에 대한 목표를 확실히 설정했다”며 “상대방 분야를 배우고 같이 연구하는 방향으로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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