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육혁신본부장

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육혁신본부장
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육혁신본부장

마침내 1학기가 끝났다. 종강일이 7월을 훌쩍 넘겼고 심리적으로도 가장 길게 느껴진 학기였다. 짧은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 여행을 계획하다 이내 포기해 버렸다. 마음이야 하루라도 빨리 산과 들로 떠나고 싶었으나 아직 초등학생 아들이 등교 중이고, 유명 관광지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을 알면서 “우리는 좀 예외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하기는 낯짝이 두껍지 못했다.

그래서 미리 2학기 온라인 수업을 촬영에 들어가려는 요령으로 수업설계를 고민하던 도중에 전문대학교육협의회의 역량개발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PBL 교수법을 주제로 교원 연수를 진행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어차피 특별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방학이고 PBL 강의를 해본 경험도 있는지라 별다른 생각 없이 수락했다. 하지만 첫 연수준비를 위한 회의를 다녀온 이후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 했던가. 온라인으로 PBL 연수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다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PBL은 학습에 있어 경험을 중시하며 팀을 이뤄 활동하는 교수학습방법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연수가 되려면 팀별 실습은 필수적이다. 게다가 PBL의 특성상 경험으로부터 학습이 시작돼야 하는데 처음 온라인에서 만난 다른 대학의 교수들끼리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팀별로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고민이 커가던 차에 올해 졸업한 제자들을 만났다. 급격히 증가한 코로나 확장세로 인해 졸업식이 열리지 못해 제대로 된 축하를 해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졸업 후 6개월 만에 만난 것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식사를 같이하며 최근 취업한 직장 이야기, 학교 다닐 때 있었던 에피소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전에 수업시간에 보여줬던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영화는 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이상적인 노년 부부 톰과 제리, 그리고 그들의 지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톰과 제리’라는 부부의 이름과는 달리 이들은 서로를 걱정하고 사랑하며 주위 사람들까지 보살피는 따뜻한 존재다. 이들 부부가 가진 온기는 외로운 삶을 사는 직장동료, 형제 등 주변인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단지 그 순간뿐. 외로운 그들은 자신 스스로 온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이들 부부 주위를 배회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며 ‘결국 행복은 자기 자신의 몫’이라 말했었다.

PBL은 ‘학습자 중심 교육’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참여자가 제시된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제와 유사한 과업에 몰입하도록 만들고, 상황을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교수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핵심은 학습에 대한 주인의식 형성과 그로 인한 학습 선택권이 학습자 본인에게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PBL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교수자에게나 학습자에게 모두 학습자가 학습을 주도하는 일이 낯설다는 데 있다.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PBL연수를 참여자의 주도성을 중심으로 설계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4회차의 PBL 연수가 모두 종료됐다. ‘재미’와 ‘동기유발’에 초점을 두고 참여자 주도의 연수를 운영한 효과가 있었는지 온라인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또 하나 특징적인 성과는 1시간 정도의 PBL 팀별 활동시간이 있었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만났던 동료 교수들 간에 상호작용이 효과적으로 이뤄졌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몇몇 교수들은 온라인상에서 협업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랐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번 경험으로 온라인 교육환경에서도 PBL과 같은 혁신 교수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뉴노멀 시대의 교육 슬로건을 ‘학습은 학습자의 몫’으로 정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그렇다. 학습자중심 교육이 한층 강조될 새로운 교육환경에 우리는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학습자에게 학습주도권을 이양할 수 있는 새판을 어떻게 멋지게 짜야 할지 날카로운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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