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보안·안전 문제로 ‘보이콧’ 의견 모아…취지 이해하지만 현실성 없어
시험장 방문 시에는 응시기회 제공, 자가격리자 ‘이동 수단’ 마련 필요

(사진=한국대학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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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교육부가 코로나19 대책으로 내세웠던 ‘권역별 대학별고사’ 시행이 사실상 무산됐다. 보안 문제와 감염 위험성 등을 이유로 서울권 주요대학을 비롯한 대학들이 교육부의 권고를 ‘보이콧’하기로 잠정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들이 교육부 방침을 따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자가격리자들이 최대한 대학별고사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교육부의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간 형국이다. 처음부터 교육부가 대학들과 소통 없이 무턱대고 해당 지침을 내놨다는 점에서 예상된 결과였다는 평이 나온다. 

최근 대학가에 따르면, 교육부가 코로나19 관련 수험생을 위한 대책이라며 내놓았던 ‘권역별 대학별고사’ 시행이 사실상 무산됐다. 대학들이 “현실성이 없는 방안”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관계자 간 모임 등을 통해 이미 해당 방안을 따르기 어렵다는 의견이 모인 상태다. 

지난달 초 교육부는 ‘코로나19 대응 2021학년 대입 관리방향’을 통해 “자가격리 수험생의 전국단위 이동에 따른 감염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권역별 별도 시험장을 마련한다”고 했다. “수험생은 지원대학이 아닌 권역별 시험장을 방문해 시험에 응시하고, 대학은 시험 관리인력을 파견해 전형을 운영·관리”토록 한다는 것이다. 자가격리에 들어간 수험생들이 최대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권고가 대학들에 함께 전달됐다. 

하지만, 대학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학별고사의 필수 전제인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자가격리자 관리 측면에서 생길 수 있는 ‘안전’ 관련 위험성도 크다는 점에서다. 

대학들은 권역별 시험장을 통해 대학별고사를 시행하는 경우 철저한 보안이 지켜지기 어렵다고 본다. 특히, 동일한 문제로 시험이 치러지는 논술고사는 권역별 시험을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대학들의 판단이다. 

서울권 주요대학 입학관계자는 “논술고사는 보안이 철저해야 한다. 합숙 출제 과정은 물론이고, 문제지 인쇄 등도 철저한 보안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문제지를 이동시킬 때에도 보안 요원과 담당자 등이 철저히 관리한다. 캠퍼스 내에서만 논술고사를 실시해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각 권역마다 논술고사 문제지를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인력과 관리 인력, 보안대책 등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수험생들에게 최대한 대학별고사 응시 기회를 부여하자는 교육부의 취지에는 대학들도 동의한다. 때문에 담당자가 USB에 문제를 담아 권역별 시험장으로 이동하자는 등의 얘기도 나왔다. 이 경우 많은 인력이 필요치 않으며,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USB에 담아간 문제를 권역별 시험장 주변에서 출력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문제 유출 등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은 상태다.

보안 문제에 더해 안전 문제도 권역별 대학별고사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게끔 만드는 부분이다. 자가격리자들이 모인 시험장에 파견되는 ‘관리 인력’이 짊어져야 할 부담감은 상당하다. 감염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으며, 자가격리자와 접촉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 권역별 시험장 파견 이후에는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 대학들은 이같은 관리인력을 선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라고 말한다. “직원·교수 등 내부 인력을 보내야 하는데, 위험성이 너무 크다. 특정 인원을 지목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학들은 자가격리자의 시험 응시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할 생각은 없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자가격리자가 시험장까지 오기만 하면 별도의 고사장을 제공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자가격리자가 고사장에 오면 응시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내부 지침을 마련했다. 교육부는 권역별 시험장 같은 현실성 없는 얘기보다는 자가격리자들을 위한 이동수단 마련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권역별 대학별고사가 사실상 무산된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고 대학들은 반응한다. 지난달 교육부가 해당 지침을 발표하기 전 대학들과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무턱대고 정책을 밀어 붙이니 이런 일이 생긴다. 미리 권역별 시험장 운영에 대한 의견을 대학들에 묻고, 세부적인 사항들을 다듬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교육부는 덮어놓고 발표부터 해놓고 대학들에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다. 처음부터 대학들과 논의의 장을 열었다면, 보안·안전 문제 관련 해결책이 나왔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날카롭다. 

대학들은 권역별 대학별고사가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교육부가 미리 인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바라본다. 대학별고사에 응시하지 못하게 된 수험생이 나오는 경우 책임을 대학들에 떠넘기기 위한 ‘면피용 대책’이 아니었겠느냐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권역별 대학별고사가 보안·안전 등에 있어 문제가 많다는 점을 교육부가 몰랐을 리 없다. 대학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점도 교육부는 인지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같은 정책을 내놓은 것은 ‘책임 떠넘기기’를 위한 것이라고 대학들은 바라보고 있다. 교육부는 최선을 다 했는데, 대학들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고 얘기할 구실을 만든 것”이라며, “올해 대학별고사는 예년과 달리 방역대책을 적용해야 해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전형료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대학들이 철저한 방역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책을 내놓지는 못할망정 교육부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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