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매년 10월은 국정감사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된다. 국회는 정부를 상대로 질의하고, 정부는 대학을 상대로 대대적인 종합감사를 한다. 언론은 연일 감사에서 밝혀진 부정비리에 관한 단발성 기사를 자극적으로 쏟아낸다. 대학의 구성원은 국회, 정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감사를 받는다. 감사는 조직의 부정비리를 근절하고 일상 속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처방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감사는 자칫 농사에서 농약을 쓰는 것과 같아서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약은 병해충이나 잡초만 없애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생태계를 위협한다. 감사자는 시간여행자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감사대상 현실에 갑자기 나타나 시간을 정지시키고 그 현실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그 누구로부터의 반론도 받아들일 의무는 없고, 오로지 시간여행자의 관점으로 그 정지된 세상을 해석한다. 감사자에게는 그런 절대적 힘이 있다. 다만 우리는 감사자에게 누구보다도 뛰어난 통찰력, 가장 이상적인 판단력, 높은 도덕성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러한 절대적 수준의 능력자는 없다. 여기에 더해 감사자는 현실을 인식하는 관점에서 몇 가지 일반적 편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조건에 놓여 있게 된다.

먼저 포지티브 규제 편향성이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에 허용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뒤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방식의 규제를 말한다. 감사자가 판단하는 가장 주요한 근거는 법령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바라보면 감사자는 당연히 포지티브 규제 중심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도 인식될 수 있다. 하지 말라고 금한 게 아니면 최대한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관점이 그것이다. 조직은 창의와 혁신을 통해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이 능동적 세계는 네거티브 규제 관점으로 응시해야만 보인다. 포지티브 규제 관점으로 바라보면 창의와 혁신은 사라지고 복지부동하는 소극적 조직만 남게 된다.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극 적용해 정부 사업비의 종이영수증 보관을 폐지하고 전자영수증 보관만으로도 같은 효력을 갖도록 했다. 이와 같은 좋은 선례를 많이 만들어가야 스스로 포지티브 규제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다. 네거티브 규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현실이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으로는 회계 수단 편향성이다. 빌 레딩스는 《폐허의 대학》에서 ‘대학이 그 책임의 성격에 대해서 오로지 회계의 언어(그 통화 수단은 수월성이다)로만 논란을 벌이는 것을 거부’하면서, ‘회계사들이 현재 사회의 지평을 이해할 능력을 가진 유일한 사람들도 아니고 심지어 그 과정에 가장 능숙한 사람들도 아니라고’ 봤다. 인간을 생물학적인 몸의 관점에서만 이해한다면 동물과 다른 점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키와 몸무게로 평가되지 않는 품격과 정신을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회계는 현실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지만, ‘회계의 언어’만으로는 조직 생명체 역동적 움직임과 정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회계 이외에 조직 생명체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을 키와 몸무게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이나 글 그리고 삶과 예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감사는 조직 생명체에게 그 존재의 의미에 관심을 가지고 자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러면 조직은 그 감사를 계기로 번뜩 깨어날 수 있다. 과거와 미래, 수단과 목적, 어느 관점으로 인식할 것인지는 시간여행자인 감사자의 권한에 속한다. 이 두 관점을 잊지 않고 현실을 응시하면 ‘넥커의 정육면체(Necker Cube)’처럼 인식의 반전이 일어나 다양한 현실을 볼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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