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재앙’이자 변화 ‘촉진제’
‘온라인 수업 전환’ 초유의 결정…완벽한 인프라, 유리한 위치 선점
한국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 수면 위, 교육기관 ‘탈규제화’ 만족해선 안돼
4차 산업혁명 시대 ‘자유’의 가치 중요, 출세·성공 한정 대학 교육 문제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은 시종일관 '한국대학의 자율성 확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더불어 교육이 출세와 성공에만 경도되지 않고,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명섭 기자)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은 시종일관 '한국대학의 자율성 확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더불어 교육이 출세와 성공에만 경도되지 않고,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2020년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인류가 큰 변화를 겪게 된 원년이다. 사람 간 대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육계는 ‘온라인 수업 전환’이라는 초유의 결정까지 내렸다. 학생과 대학 간의 갈등, 교육의 질 문제, 나아가 한국 대학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까지 한 번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부 장관, 서울시 교육감 등을 지내고, 현재 청소년폭력 예방 활동에 중점을 둔 푸른나무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 교육계의 원로이자 전문가인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은 “코로나19는 재앙이지만, 우리나라 대학들에 변화를 촉진해줬다”고 힘줘 말한다. 본지는 창간 32주년을 맞아 문 전 장관에게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을 마주한 교육계가 어떻게 ‘대전환’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혜안을 구했다. 

- 코로나19가 ‘교육 대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말이 많다.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보나.
“코로나19는 ‘재앙’이지만, 동시에 ‘촉진제’다.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교육계는 변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뿐이다.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되더라도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기본 인프라를 완벽히 구축해 이 ‘재앙’ 속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우리나라처럼 학교와 가정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곳에 광케이블이 완벽히 깔린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전방위적인 온라인 수업이 가능한 나라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수업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면 PC구입부터 시작해 각종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부모들까지 온라인 교육에 대한 마인드 세팅이 돼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계는 탄탄한 디지털 인프라에 선진 디지털 의식 수준까지 더해지며 코로나19로 닥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갖췄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온라인 수업 준비를 ‘잘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 코로나19로 ‘탈규제화’도 속도가 붙었다. 원격 교육 비율 20%를 대학자율로 푼 것에 대학들은 만족하는 편이다.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코로나19와 같은 특별한 상황을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자유’가 없다는 점이다. 탈규제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교육기관의 자율성을 확실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황에 맞춰 규제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대학에 과도한 평가체제를 적용해 교육을 일원화하고, 교육 전반을 정부의 뜻대로 끌고 가려는 면이 짙다. 지원을 해주더라도 교육 콘텐츠는 대학이 알아서 하도록 둬야 한다. 교육효과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평가 지표로 대학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모습은 ‘특정 콘텐츠만 가르쳐야 재정을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흡사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 지붕에 노란 칠만 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 대학생들의 교육만족도가 최하로 떨어져 ‘등록금 환불’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시대 속에서 대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코로나19 때문에 교육 방향성이 크게 바뀌어야 할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결국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80년대 제시된 키워드와 다르지 않다. 바로 ‘다양화’와 ‘특성화’다. 이미 70년대, 80년대에 2000년대 들어 인구가 급격히 줄 것이라는 추계가 나와 있었다. BK(브레인코리아)21 같은 정부 사업도 대학의 특성화와 다양화를 의도하고 기획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들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 지금의 상황을 대비해두지 못했다. 대학들이 좋았던 시절에 건물 올리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다양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교육부도 학과 정원이나 교수 정원만 제한했지 실질적으로 특성화와 다양화를 위해 뚜렷한 계획을 실현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정부는 대학들이 다양화·특성화에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는 자유를 택했다’고 판단했다. 다양화와 특성화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과를 허물어야 한다. 학생 입장에서의 다양화와 특성화가 무엇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A대학 영문과, B대학 영문과에 차이가 없다면, 결국 똑같은 인재만 양성된다. A대 영문과를 나오면 어학이 강하고, B대 영문과를 나오면 영문학에 강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대학들은 그렇지 못하다.”

문용린 전 장관(현 푸른재단 청예단 이사장)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현 푸른재단 청예단 이사장)

- 대학들은 현재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학과 구성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학과 이기주의’도 문제시 되는 상황인데.
“책임을 지고 ‘자유’를 집행할 수 있는 대학이 없다. 반대로 ‘나는 이제껏 이렇게 가르쳐 왔는데 이제 와서 왜 그러나’하는 저항심만 팽배하다. 미국의 경우 국가가 ‘대학’ 단위로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별로 없다. ‘교수’ 개인을 보고 재정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단위로 큰돈을 집행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학자들의 연구는 실용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대학 단위의 ‘대학 행정’을 컨트롤하지 않고, 교수 개인을 지원하며 ‘연구 방향’을 컨트롤하는 나라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경쟁을 기준으로 재정을 지원하면 학교 행정이 대학의 주인이 된다.

우리나라 대학이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인 ‘학과이기주의’도 결국 ‘다양화와 특성화’를 통해 풀어 나가야 한다. 예전에는 수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수요가 없다면 예전만큼 학생을 선발할 필요가 없다. 대학은 젊은이들의 삶에 영향을 줘야한다. 최근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졸자의 전공과 직업 간 미스매치는 50%(OECD 평균 39.1%)에 달한다. 대학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 앞으로 대학이 혁신 동력을 마련하고 발전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모든 대학이 다운사이징(Downsizing)해야 한다. 많게는 절반까지 줄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행 사립학교법을 바꿔야 한다. 법인관리법에 의하면 학교 법인은 자유롭게 교지를 팔 수 없다. 이 기회에 대학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나 지분을 필요한 만큼 처분할 수 있도록 처분권을 줘야 한다. 처분을 통해 얻은 수익을 원격 시설 확충이나 온라인 교육 전환에 투자하면 된다. 고등학교만 봐도 과거에 10개 학급이 있었다면, 이제는 5개로 줄었다. 어차피 사립학교 부동산 문제를 조정하는 법안을 만들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적어도 30% 이내에서는 학교 법인 재산 처분을 허용하고, 이를 교육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 사학이 50%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대학 자력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학문적으로는 ‘훔볼트(Humboldt)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훔볼트 교육관’은 지식이나 기술은 단순한 습득이 아니라 평생교육이기에 지식을 만들어내는 연습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대학은 ‘연구하면서 가르치는 대학’이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수업을 통해 지식을 전수하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대학이라 할 수 없다. 대학을 두고 ‘연구중심’이니 ‘교육중심’이니 하는데 너무 기계적인 분류다. 우리나라에는 ‘마스터’(장인)가 되는 대학이 적다. ‘학력’을 위한 대학만 있다.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지식을 창출해 나가는 그룹은 석·박사 과정을 밟는 대신 나머지는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4차 산업혁명이 바라는 인재상은 어떤 것이며, 이러한 인재양성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삶의 기본은 똑같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실질적으로는 아니다. 지식 창출자가 있는가 하면, 이를 수행할 사람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낼 차이는 ‘지식 전달자’의 필요성이 낮아지는 반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많이 요구된다는 데 있다. 새로운 지식이 많아지면, 이는 경제적 성과로 이어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는 디지털을 수단으로 사용할 줄 알고, 아이디어 활용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컴퓨터 활용법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재 양성 부분에 있어서도 ‘자유’는 중요한 키워드다. 자유를 줘야 창의성이 발현된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자유의 가치를 높게 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회가 자꾸 경직되고, ‘분배’와 같은 이념적인 성향에 집중하는 것 같다. 정부 방침에 어긋나면 온라인상에서 많은 비판이 쏟아진다. 대학들의 자유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쟁도 창의성 발현과 인재양성에 있어 도외시 돼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다. 경쟁 없이는 창의성이 나오기 어렵다. 

교육학적으로 얘기하면, 대학들은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삶의 퀄리티를 위한 교육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 대학 나온 사람들이 과연 다른 대학 나온 것보다 행복한가를 봐야 한다. 하버드대는 1920년대부터 1990년까지 ‘하버드대 졸업생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한가’를 추적조사했다. 조사 대상자 600명 중 반은 하버드대 졸업생, 반은 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람들로 꾸렸다. 조사 결과 하버드대 졸업생보다 나머지 반이 더 행복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버드대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공부만 잘하는 학생만을 선발하지 않게 됐다. 리더십, 봉사활동 경력까지 학생선발에 반영하는 학교로 변모했다.

좋은 대학만 나오면 마냥 행복할까? 대학들은 ‘행복교육’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교육은 출세와 성공에만 경도돼있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에 있다. 교육을 받은 사람의 ‘삶의 퀄리티’가 높아져야 한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현 푸른나무 청예단 이사장)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현 푸른나무 청예단 이사장)

- 본지가 올해로 32주년을 맞이했다. 앞으로 어떤 언론이 되어야 할지.
“교육도 하나의 전문영역이다. 하지만 교육자들 간에 교류가 없다. 현재 인간개발연구원(HDI) 회장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중소기업 사람들을 만난다. 중소기업가들은 기업의 발전을 위해 소통할 때는 기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IT회사와 비료회사가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여도 대화가 통하는 이유다. 반면, 교육계 특히 사립학교 이사장들은 문제를 마주하면 혼자서 앓는 편이다.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해보면 방법이 생길 수 있을 텐데도 모이지 않는다. 논의를 통해 문제 해결 효과만 얻는 게 아니라 예방 효과도 생긴다. 서로의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시행 중인 서밋(Summit)처럼 대학들이 주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모이는 장을 만드는 역할을 한국대학신문이 해야 한다.”

■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교육심리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냈으며, 한국교육학회 회장, 서울시교육감,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는 푸른나무 청예단 이사장,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대교문화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문용린의 행복교육⟫ ⟪한국인의 도덕성 발달 진단⟫ ⟪지력혁명⟫ 등이 있다. 

<대담=최용섭 발행인 / 정리=허정윤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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