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석 UCN 프레지던트 서밋 원장

지금 우리는 비학위(non-degree) 시대를 맞이하는 중이다. 구글 캠퍼스, 미네르바 스쿨 등에서 과정을 이수하는 것만으로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시대다. 한편으로는 코세라(Coursera), 에덱스(edX), 퓨처런(FutureLearn), 유다시티(Udacity) 등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 강좌들이 분야별 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로 작용하며, 지구촌 학습자들을 흡수하고 있다. 온라인 학습은 이제 대세이자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 

지난 32년간 고등교육 정책에 몸담은 필자의 눈에는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점차 쇠락해 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일렁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 국가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교육이다. 특히 고등교육 분야의 경쟁력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정책은 과거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등교육 분야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해법은 없는 것일까?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사립대학을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3차 산업시대 내국인의 고등교육 수요가 넘칠 때에는 사립대학을 신설하거나 정원을 늘리기 쉬웠다. 그 과정에서 사립대학은 공공재라는 인식 속에 놓이게 됐다. 

하지만 4차 산업시대에 접어들며 얘기는 달라졌다. 학령인구 감소, 국경을 넘나드는 혁신교육 시스템 등 국내 대학들은 무한 경쟁에 놓이게 됐다. 과거 시각으로 만들어진 고등교육법과 사학법은 무거운 족쇄로 작용, 대학들의 발목을 잡을뿐이다. 대학들에게는 정부재정지원사업에 의지해 근근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그나마 현상유지를 하는 대학들마저 각종 평가라는 시험대 앞에 놓여 있다. 다소간의 개선은 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혁신에 나서기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학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진다. 현재 전체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들이 무너지면, 국가 시스템도 붕괴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반대로 사립대학들을 옭아매는 족쇄를 풀어주고 자율성을 부여한다면, 각자도생을 위해 대학들은 학습자 중심 교육 혁신에 매진할 것이다. 이는 활력 넘치는 산업군 양성으로 이어져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하게 된다. 

사립대학은 공공재로 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공공재가 아닌 산업재로 정책당국의 인식부터 바껴야 한다.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금지된 것 이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이 될 수 있도록 사학법에 손을 대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교육 수요자들을 흡수할 수 있도록 ‘교육산업진흥법’을 제정해 대학들이 멀리, 높게 날아갈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 

정부의 정책기조도 달라져야 한다. 공급자 중심이던 시대는 저물었다. 수요자 중심인 시대가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학습자는 줄고 요구는 갈수록 까다로워진다. 하지만 정부는 대학들보고 ‘변하라’ 얘기만 할뿐 기존 Top-Down 정책을 일관되게 선보이는 중이다. 

정부는 대학을 규제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대학을 진흥의 대상이라 생각하며, 아낌없는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학습자 개개인이 스스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대학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정부는 대학들이 순기능적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선순환적’ 정책지원을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정부가 변하면, 대학도 변화한다. 자율과 지원을 등에 업은 대학들은 자연스레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게 될 것이다. 그러한 노력들은 경제를 살리는 데 일조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자율성 부여라는 맥락에서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은 각종 사업을 통해 줄세우기나 평가를 하기보다 학생 수에 비례한 교부금 성격이 돼야 한다. 대학에 대한 지원은 국가가 응당 해야 할 책무이기에 평가라는 수단을 통해 대학에 피로감만 주기보다는 규모에 따라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합당한 방법이다. 

혹자는 일부 사학에 비리가 존재하고,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한 정부가 대학을 감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일부 일탈자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법의 처벌을 피할 방법은 없다. 일부 사례를 들어 ‘침소봉대’ 하기 보다는 무엇이 더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대학들에게 자율이라는 날개를 달아 더 높이 더 멀리 날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식 콘텐츠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평가를 얻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그간 ‘넘사벽’으로 여겨졌던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방탄소년단(BTS)은 K-Pop을 세계음악의 주류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e-스포츠는 한국이 마치 종주국인 것처럼 인식된다.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 창의력과 열정을 발휘하고, 시장 변화를 꿰뚫어 보며 꾸준히 도전했던 것이 이들의 성공 비결이다. 

이처럼 해법은 정말이지 간단하다. 정부가 생각을 바꿔 국립대에게는 공공재로서의 책임을, 사립대학에게는 산업재로서의 역할을 요구하길 바란다. 사학들이 일으키는 K-EDU 열풍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끄는 것은 물론 세계 교육 허브 국가로 우리나라를 발돋움시킬 것이다. 

본지가 창간 32주년을 맞아 희망 대한민국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학령인구 감소 등 어려움에 직면한 대학들을 격려하고, 희망의 메시지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캠페인은 참여한 대학 관계자 및 저명인사들이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다음 기고자는 장제국 동서대 총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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