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희 유한대학교 사업통합관리본부 팀장

정원희 유한대학교 사업통합관리본부 팀장

시간은 이끼를 만든다. 냇가의 맨질맨질한 돌멩이나 숲 속 고목의 등걸 등 습기 많은 어느 곳에나 시간은 이끼를 끼게 한다. 하지만 돌멩이나 고목의 등걸에 낀 이끼는 우리가 탓할 바 없다. 천년고탑(千年古塔)에 낀 이끼는 때로 탑을 더욱 탑스럽게까지 한다. 문제는 사물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나 눈에도 이끼가 낀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몸에 낀 이끼는 급기야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 사람과의 밀접한 관계를 끊어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무디게 하고 이해와 판단의 눈을 멀게 한다.

동서고금의 현인(賢人)들은 이 점을 염려해 부단히 자신의 몸에서 이끼를 걷어내려고 애써왔다. 상(商)나라 탕왕(湯王)은 반명(盤銘, 세수대야)에 날로 새롭게(日日新又日新)란 글귀를 써 붙였고, 《대학(大學)》은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이끼는 일개범부(一個凡夫)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사회지도자나 조직의 책임을 진 사람의 경우라면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역사를 오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람이 아무리 그것을 염려하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시간의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 한계는 대체로 10년 정도가 아닌가 한다. 사람이 아무리 이성을 갖고 자신의 몸에 낀 이끼를 걷어내며 사물을 바로 보려 해도 10년이 하루 같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동서양 역사에서 예를 들것도 없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10년 권세가 없다’는 우리 속담이 이를 말해준다. 이 말을 뒤집으면 10년 이상 한 자리에 권세를 누릴 생각은 하지 말라는 충고로 해석할 수도 있다. 서양의 주요 국가들이 대통령 임기를 중임까지 합쳐 10년을 넘지 못하도록 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A대 총장은 “총장 10여 년 동안 젊음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뺏긴 것이 많다”며, 듣기 싫은 말이나 귀에 거슬리는 충고를 해 주는 친구, 후배가 없어져 외롭더라고 했다. 자의든 타의든 이 역시 시간과 자리가 가져다 준 이끼가 아니겠는가.

멀리 보지 않아도 우리 시대에 있었던 불행이나 불행한 지도자들의 경우도 이 논리에 대입하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눈과 마음에 일단 얇은 이끼가 끼기 시작하면 그것이 이중삼중의 이끼를 불러온다. 인간의 이끼, 권력의 이끼, 돈의 이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경우 흔히 사람들은 ‘그 사람은 좋았는데 그 밑에 사람들이…….’ 하고 주변을 욕하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먼저 지도자 자신의 몸에 이끼가 끼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을 보는 눈, 판단의 눈이 멀어버린 때문이리라. 

그대들의 함성이 어제 같은데, 주역들의 귀에서 이끼가 보인다. 이제 우리가 시간의 이끼를 스스로 염려해야 할 시기에 놓였다. 

부단히, 눈과 마음에 이끼를 걷어내고, 시간의 한계도 더불어 의식해“苟日新日日新又日新(진실로 하루라도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이라고 적어놓고 매일 세수를 하면서 보고 또 보면서 진실로 하루라도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고 다짐, 또 다짐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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