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 교육혁신본부장

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육혁신본부장

조금씩 쌀쌀해지나 싶더니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다. 색색의 단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른다. 영화 속 가을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지 못했더라도 누구나 영화의 제목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그만큼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중학교 때 처음 이 영화를 봤다. 내 인생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사춘기 시절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은 크고 깊었다. 훗날 교직으로 진로를 정하는데도 이 영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영화는 60년대 미국 전통을 중시하는 남자 사립고등학교에 새롭고 진보적인 교육관을 가진 영어교사 키팅이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학업과 성적에 대한 압박 속에서 수동적으로 생활하던 아이들이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을 키우고, 학교의 보수적 가치관과 충돌해 갈등을 빚게 된다는 이야기다. 청소년기를 그린 성장영화로 한편으로는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만드는 철학 영화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 교사 키팅이 영어 수업 중 교탁 위에 올라가 선 후 이 위에 서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이후 학생들은 줄을 서서 교탁 위에 올라서는 경험을 갖는다.

키팅이 말한 새로운 관점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다 한참 연구 중인 전문대학 교양교육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됐다. 전문대학에서 교양교육은 어떤 의미로 운영되고 있는가? 전문대학 교양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모든 전문대학에서 교양교육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전문대학가에서 교양교육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아닌가. 대학 핵심역량과 관련지어 교양교육이 새로운 화두가 돼야 한다.

서양권에서 들어온 ‘교양’이란 개념은 영어로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 또는 자유교육(Liberal Arts)로 불린다. 애초에 특수성을 전제하는 개별 전공과는 대비되는 개념인 것이다. 만약 전문대학에서 교양은 없이 전공 교육만을 실시한다면 어떨까? 이 경우 폴리텍 대학 등 직업훈련기관이 있음에도 굳이 전문대학이 따로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답하기 어려워진다. 현재 전문대학의 상당수 전공은 직업훈련기관을 통해서도 학습할 수 있다. 전문대학에는 교양이 필요하지 않고, 전공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할수록 직업훈련기관과 차이가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재정과 인력 같은 현실적 어려움으로 교양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현 상황이 문제일뿐 전문대학에서도 교양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섰다. 아내가 작년부터 가고 싶어 하던 양평에 위치한 개인 미술관을 방문했다. 작은 미술관이겠거니 하고 방문했는데 세련된 건물에 한 개인의 소장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국내외 유수의 작가·디자이너의 작품이 많았다.

미술관에서 보낸 2시간여 동안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낯선 관점을 오랜만에 공유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새삼 예술가들의 창의성과 미적 감각에 놀라게 됐다. 이들이 가진 창의성의 원천은 미술 전공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닐 것이다. 색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낯설게 볼 수 있으려면, 다양한 분야 곧 철학·사회·문학·과학·종교 등에 관심을 넓게 형성해야 한다.

앞으로 AI가 대중화된다면 단순 직무일수록 AI로 빠르게 대체 될 것이다. 트렌드도 빠르게 변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지금 20대 이하 세대는 현재 전공이 무엇이든 졸업 후 자신의 직종을 여러 번 바꾸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견한다. 직업이동에 따라 매번 새로운 관점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때 수강한 교양수업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빛나는 가치를 발할 수 있다. 아울러 대부분 사립대학으로 구성된 전문대학은 개별 대학마다 추구하고 있는 특별한 교육철학을 교양교육을 통해 교육현장에서 구현해 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전문대학이 추구하는 직업교육이 한 단계 더 상승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교양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지금부터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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