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 서정대 대외협력처장

조훈 서정대 대외협력처장

27년간 글로벌 삼성그룹을 이끌어 왔던 이건희 회장의 부고를 접하며 그가 생전 강조했던 ‘업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2003년 6월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해외 경력사원으로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에 채용됐다. 한 달 동안 삼성인력개발원인 창조관에서 연수를 받으며 처음 접한 용어가 ‘업의 개념’이다. 업의 개념은 사업의 본질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호텔업을 ‘장치산업’, 백화점은 ‘부동산업’, 전자산업을 ‘타이밍 산업’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업의 개념 정립을 통해서 핵심성공요인을 찾아내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업(業)은 저마다 독특한 본질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업의 개념을 모르면 전략·전술이 나올 수 없다.

패러다임 전환기 전문대학의 업의 개념은 무엇일까? 고등직업교육을 표방하는 전문대학만의 본질과 특성은 어떻게 정의할까? 이러한 노력은 누가 하는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진다.

1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확보한 ‘교육부 주요 대학재정지원사업 관련 4년제와 전문대 예산지원현황’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전문대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5791달러로 OECD 평균 1만2422달러의 46.6% 수준이다. 초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인 1만1702달러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2020년 기준 일반대에 대한 정부 지원예산은 1조6409억원인 반면 전문대는 4940억원으로 3배 이상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대학에 대한 차별적 대우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더 뼈아픈 것은 “전문기술인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전문대별로 특성화된 발전전략이 중요하다”는 강 의원의 지적이다.

최근 전문대학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짜기 위해 고심 중이다. 중앙정부 위주 인력양성사업을 벗어나 인구감소·고령화, 중소기업 인력문제 등을 고민하고 있는 지방정부와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것, 평생직업교육 허브로서의 전문대학 역할을 정립하는 것 등이 주요 전략이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해 전문대학에서 전문기술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마이스터대학 설립 예산확보 등도 나름대로의 성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형편없는 재정 지원과 인프라확보 미흡으로 인해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원활한 재정 확보를 위해 ‘직업교육진흥법’을 제정하고, 고등직업교육 교부금제 등을 전향적으로 도입하는 것에 대해 국가와 교육부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수시1차 원서접수 결과에서 볼 수 있듯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전년 대비 지원율이 10%p 이상 급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가 재정의 확보만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형국이다. 대학 내부의 뼈를 깎는 혁신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지난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경영하면서 시가총액 350배, 매출 34배의 비약적 성장을 이룬 이건희 삼성의 출발은 1993년 6월에 열린 신경영회의가 시작이었다. LA에서 출발해 동경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끝난 이 신경영회의는 68일 동안, 350시간 강의로 이어졌으며 토론시간만 800시간에 달했다. 치열한 고민을 통해 삼성은 스마트폰, 스마트카드 IC, 모바일 CMOS 이미지센서, TV, 모니터, D램, 낸드플래시, 모바일 등 9개의 ‘월드 베스트’제품을 탄생시킨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고 외쳤던 절박함이 오늘의 삼성을 견인한 것이다.

이제 대학이 이러한 절박함 속에서 생존을 고민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대학만의 ‘업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학력차별시대가 아니라 실력차별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과 관계없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주고 입사 후 승진, 승격에도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고 실력입니다.”(故 이건희 삼성 회장 어록 中)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