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바이오 분야 창업 강세 여전, 교수창업 분야 다양화 ‘조짐’
창업 꿈꾸는 학생들, 교수창업 ‘최고의 롤모델’
해외 사례 어떨까…‘창업 대학’ 이미지 구축 나선 대학 많아
교수창업은 ‘돈벌이’? 부정적 인식 이제는 달라져야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대학가에 창업 바람이 불고 있다. ‘제2의 벤처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내 창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 중에서도 창업의 양대 주체인 학생과 교수 가운데 교수들이 주체인 ‘교수창업’이 증가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학알리미만 보더라도 교원 창업자 수는 2017년 242명, 2018년 253명, 2019년 280명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교수창업은 학생창업과는 다른 특징을 띤다.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학생창업과 달리 교수창업은 교수 고유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발전과 공익에 직결되는 원천기술 산업화 가능성이 학생창업에 비해 더 크다. 최근에는 교수창업 분야가 다양해지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교수창업이 활성화되는 분위기를 타고 한 발짝 더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대학의 체계적 지원, 규제 수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교수창업은 전공 연구를 기반한 전문 창업이 많다. 특히 바이오 분야와 의료 분야에서 창업 강세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교수창업은 전공 연구를 기반한 전문 창업이 많다.
특히 바이오 분야와 의료 분야에서 창업 강세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의료·바이오 분야 창업 강세 속, 교수창업 분야 다양화 흐름 = 최근 들어 교수창업은 본격적으로 영역 확장에 나선 모양새다. 의학·생명공학 교수들이 주도해온 의료·바이오 창업 분야가 여전히 강세이긴 하지만, 경영대·공대·인문대 등에서도 학문 분야와 관계없이 창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감지된다. 

바이오 분야는 창업계의 ‘전통적인 강자’다. ‘바이오 벤처’로 그간 꾸준히 산업화돼 왔다. 2016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창업에 뛰어든 서울대 전임교원 65명 중 43명이 바이오 분야 사업에 속해 있을 정도다. 

서울대는 1997년 한국 최초 코스닥 상장 바이오벤처인 정밀의학 생명공학기업 ‘마크로젠’ 설립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교수 창업 사례를 선보인 대학이다. 신영기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 교수가 이끄는 코넥스 상장 바이오 기업 ‘에이비온’은 2007년 서울대 약대 벤처로 설립, 코스닥 상장에 세 번째 도전장을 내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다른 대학에서도 바이오 분야 교수창업은 활발히 이뤄진다. 김완규 이화여대 대학원 생명과학과 교수가 창업한 데이터·AI 기반 신약개발 벤처 ‘카이팜’은 올해 2월 50억원 투자를 받았다. 2만여 개 인간 유전자가 약물 처리에 의해 변화하는 발현 패턴을 분석하는 독자적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지 14개월 만에 이룬 성과다. 

황수경 경북대 의학대학교 소아신경과 교수가 2017년 창업한 난치성 신경질환 신약 개발기업 ‘아스트로젠’도 최근 다양한 투자처로부터 50억원을 유치했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선정하는 ‘아기 유니콘(기업가치 1000억원 미만)’에도 선정됐다.

바이오 분야 교수창업이 이처럼 활발하게 이뤄지고, 기업화 사례도 유독 많은 것은 연구 성과 자체가 특허로 보호받아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고급 연구력이 뒷받침돼야 성과가 나온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 있어 자금 유치도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허준 고려대 산학협력단장은 “바이오는 ‘한 방’이 있다. 때문에 기업으로 당장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투자 유치가 다른 분야보다 많이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분야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임상시험 단계를 거치는 과정이 다른 분야 대비 길다. 

대신 개발에 성공하면 사업 가치가 급속도로 커진다. 때문에 잠재 가능성만 두고도 지분 거래가 가능하다는 게 허 단장의 설명이다. 길어지는 신약 개발 과정으로 인해 초기 투자자가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가기 어려운 경우 중반기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재투자가 이뤄지기에 끊이지 않고 자금이 조달된다는 것이다.

허 단장은 “다른 분야 창업에서는 ‘가능성’만 보고 몇십억원대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인공지능, 컴퓨터 사이언스나 여타 인문 분야 교원 창업도 독려하고 있다. 창업 지원 심사 시 분야 안배를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교수들의 창업 분야는 다양해지고 있다. 최대우 한국외대 통계학과 교수가 세운 ‘애자일소다’는 인공지능(AI)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 기업이다. 애자일소다는 의사결정 최적화와 자동화에 특화된 ‘AI Suite’ 제품 라인업을 구축해 작년 매출 42억원을 달성했다. 

인지심리학 중 언어심리학 분야 전문가인 남기춘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가 만든 ‘마인드세팅케이유’은 이전까지 대면으로 이뤄져 왔던 인지검사 서비스를 인공지능과 융합해 포털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해 이목을 끌었다. 남 교수는 “교수들의 기초 연구가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으면 그 가치가 온전히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며 “‘좋은 연구’는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산업 모델’로 개발돼야 한다”고 했다.

교수창업은 분야를 막론하고 교수 본인의 전공 연구를 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에 접목해 사업화되는 사례가 많다. 대학의 오랜 연구 성과가 교수창업이라는 통로로 이어져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창업 롤모델’이자, 일자리 제공 기능까지 = 교수창업은 정부도 독려하는 ‘제2의 벤처 붐’ 분위기 속에서 학내 ‘창업 롤모델’로도 급부상했다. 교수창업 사례가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학 창업지원단은 창업교육 활성화를 위해 기존 창업기업과 학생 간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긴다. 지도 교수가 연구를 통해 창업에 성공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있어 실제 창업의 롤모델을 직접 목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손홍규 연세대 창업지원단장은 교수창업이 창업교육에도 시너지 효과를 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손 단장은 “교수들이 연구를 연구실에 묵혀두지 않고 창업으로 연계해 냈을 때 학생들도 창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며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 분야가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좋은 계기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창업을 너무 어렵다 여기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수창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교수창업이 늘면, 고용자 수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수창업이 성공하면 창업에 참여한 교수들은 물론이고 함께한 연구원·대학원생도 그대로 창업 기업의 일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의 연속성과 창업의 기반을 동시에 확보하는 효과가 더해진다. 

창업교육 관련 명망이 높은 피터 코핸 뱁슨 칼리지 교수도 자신의 저서에서 “교수들이 창업에 나서야 학생들이 이를 보고 창업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교수가 창업한 기업에 학생들이 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창업 교수의 활동을 보고 자극을 받아 동료 교수들의 창업 활동이 증진될 것이란 예측도 덧붙였다.

뱁슨 칼리지 전경(사진=뱁슨 칼리지 홈페이지)
뱁슨 칼리지 전경(사진=뱁슨 칼리지 홈페이지)

■스탠포드부터 뱁슨 칼리지까지…‘성공 사례’로 보는 교수창업 = 해외에는 이미 대학이 창업의 메카가 된 사례가 존재한다. 1919년 창업과 경영, 기업가 정신에 초점을 맞춰 설립된 미국 보스턴 소재 사립대 뱁슨 칼리지(Babson College)는 ‘창업 대학’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다진 대학이다. 졸업생의 창업 비율이 17%로 스탠퍼드대(13%), 하버드대(7%), 컬럼비아대(5%) 등을 압도한다. 연구 중심 대학이라기보다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기업가 정신)을 최고 가치로 둔 ‘창업 중심 대학’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뱁슨 칼리지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 교육도 운영한다. 창업 이론과 실전이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실현될 수 있도록 교수진에 기업을 이끄는 경영인이 다수 포함돼 있다.

손 단장은 “창업을 통해 기업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교육자가 교내에 있다면 창업 교육이나 창업 활성화가 더 활발히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최근에는 뱁슨이 유명해졌지만, 오래 전부터 스탠퍼드대에는 교수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창업에 도전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엔지니어링을 전공으로 하는 박사 논문은 결론에 ‘해당 연구가 어떤 분야에 상용화돼야 한다’고 기재하는 부분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손 단장은 “최근에는 UC버클리대도 ‘학문 대학’의 위상보다 ‘창업 대학’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를 낼 정도”라며 미국 대학들이 창업에 얼마나 중점을 두고 있는지 설명했다. 대학들이 조성한 창업 분위기와 기술 경쟁 덕분에 실리콘밸리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교수창업에 뛰어든 교수들은 '자금 조달'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아이클릭아트)
교수창업에 뛰어든 교수들은 '자금 조달'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세 가지 변화 필요…인식, 대학제도, 정부 지원 = 대학 경쟁력은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교수창업이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다양한 재원 확보와 대학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교수창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

긍정적인 것은 대학가에서 교수창업을 비판적으로만 보는 시선이 최근 들어 조금씩 줄고 있다는 점이다. 창업과 관련이 깊은 산학협력단·창업지원단 인력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교원창업 규정도 이전보다 완화됐다. 

교수창업이 본격 태동한 것은 1997년의 일이다. 당시 만들어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교수가 벤처 창업을 하면 겸직을 허용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하지만 자금 조달의 어려움과 겸직 기간 문제, 학내 부정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교수창업 활성화는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교수 업적평가 시 창업도 업적으로 인정해 교수창업에 활기를 불어넣은 대학들이 많다. 대다수 대학이 총장 승인을 거쳐 겸직을 인정하고, 추후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창업 기업의 CEO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대학의 제도적 지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고려대는 교수 창업 지원을 위해 ‘수업 면제’ 제도를 만들었다. 한양대는 ‘창업(산학) 연구년’ 제도를 신설했으며, 창업 교원에는 해외 출장 횟수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물론 논란이 되는 부분도 있다. 대부분의 대학은 교수 창업자가 수익을 얻을 시 얻은 이익의 5%에서 10%를 학교에 환원토록 강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해당 제도가 교수 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이고 학교 발전에도 이바지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해당 규정을 바라보는 대학가의 시선은 엇갈린다. 학교 연구 인프라를 이용하고 행정 업무에서도 제외되는 점을 볼 때 10%도 적다는 의견과 교수창업은 학교 수익 창출이 아니라며 창업활성화와 거리가 먼 규정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녹록치 않은 교수 창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교원 창업 휴·겸직 제도를 시행하는 학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창업 겸직 자체는 쉬워졌지만, 교수가 연구 원천기술을 활용해 겸직할 시 연차에 따라 보수를 삭감하는 대학도 있다. KAIST는  근무비율과 관계없이 교원 겸직근무 지침에 따라 창업 겸직 1년 차에는 전체 급여를 지급하지만, 2~3년 차에는 70%, 4년 차부터는 50%만 지급한다.

보수 삭감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것은 아니란 평가도 존재한다. 창업승인 이후 사무실 공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창업 분야가 지도 학생 논문과 유사한 경우 학생을 창업에 참여시키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에 실패할 경우 해당 교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내 창업을 독려한다면서도 정작 창업 안전망은 약한 꼴이라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재원 마련이 어려운 점도 창업 증진의 걸림돌로 꼽힌다.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R&D 사업으로 몇십억원을 수주하는 연구실이라도 창업을 위한 재원 마련은 개인투자를 받지 않는 이상 쉽지 않다. 류창완 한양대 창업지원단장은 “국가가 R&D 연구 성과물을 이미 인정했다면, 이를 국가사업으로 키울 재원도 융통성 있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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