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순천향대 교수(신문방송)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기자실 개혁이 언론계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청와대와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브리핑룸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고, 정부의 다른 부처들도 이를 뒤따를 것이라고 한다. 기자실이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서 언론사 기자들에게 제공해주는 사무실이다. 기자실이 언론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운영방법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관공서의 기자실은 민원실과 같은 공공장소로, 기자이던 시민이던 관계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평등하고 개방된 공간이다. 다만 미국 백악관이나 유엔본부처럼 취재진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만 그 출입을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자실은 개방된 공간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자실은 해당 관공서를 출입하는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에서 승인한 기자들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기자회견 중 기자가 기자를 내쫓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위해 기자실을 사용하겠다는데도 못하게 막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기자실 임대료나 전화사용료를 내는 것도 아니다. 기자실 운영비는 대부분 국민의 낸 세금으로 충당된다. 최근 인터넷 언론이나 전문매체가 늘어나면서, 기자실 사용방법을 두고 많은 불만이 제기되어 왔다. 현재의 기자실은 기자단에 가입 못한 신생 언론사나 군소 언론사 기자들은 들어갈 수 없고, 이로 인해 그들은 취재경쟁에서 일단 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나 학계, 그리고 공무원 노조에서도 현행 기자실 제도의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해왔으며, 현재 위헌소송까지 제기된 상태이다. 한때 기자실이 언론에게 생명선과 다름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노트북도, 승용차도 없던 시절, 분초를 다투어야 하는 기자들에게 유선전화기를 갖추어 놓은 관공서 기자실은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 없었다. 기자실에 하나 뿐인 전화기를 먼저 차지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곤 했다고 원로 언론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동전화와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세계 어디에서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사진을 전송할 수 있게 된 지금, 기자실은 그 효율성이 소진된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실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언론의 신속한 보도나 국민의 알권리와는 무관한 이유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부는 기자실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과 질을 조절할 수 있었다. 수많은 기자대신 기자실 출입이 허용된 소수의 기자들만 잘 관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편 기자실을 선점한 기자들은 뉴스보도에 필요한 고급정보를 독과점할 수 있었다. 권력과 언론이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솥밥을 먹고 한 지붕 밑에 기거하는 한 식구로 전락한 것이다. 자연히 기자실은 언론 부조리의 발원지로 변질되곤 했다. 기자들이 공직자들을 감시하거나 추적하기보다는, 공직자들에게 포섭되어 정부 정책의 홍보도구나 정당의 대변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댓가로 향응, 접대, 촌지 등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비윤리적 행위들이 기자실을 통해서 공공연히 이루어지곤 했다. 물론 모든 기자실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개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기자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개방 정책에 대한 저항과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나라당은 “정권차원의 본격적인 언론길들이기를 위한 신보도지침”이라며 공격했다. 많은 신문들이 국민의 알권리가 위축될 수 있다고 비판했고, 기자실의 개방이 “미디어 하향 평준화“를 가져온다며 특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반면 문화관광부는 과거와 같은 정부와 언론간의 ”밀월관계“를 청산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서 ”잘잘못에 대해선 서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누가 진정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일하는지는 결국 국민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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