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칼럼니스트 서보혁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세계화의 거센 파도와 함께 교육개방이 밀려오고 있다. 지난 3월 6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무역 협의회에서는 교육시장 개방의 구체적인 절차와 내용을 갖고 회원국들간에 회의를 갖고 ‘자율적 개방 조치를 위한 양식’을 마련하였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협상 결과가 아니라 향후 회원국들이 따를 협상 절차와 방식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회의 직후 패니치파크디(S. Panitchpakdi) 위원장은 “협상 목표의 중요한 부분이 달성됐다”고 말해 개방 범위와 일정에 관해 가시적인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WTO는 교육시장 개방 협상을 이미 2000년부터 시작하여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각국 장관회담에서 맺어진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의 규정에 따라 이후 본격적인 양자간, 다자간 협상에 들어갔다. WTO는 지금까지와 같이 순조로운 협상이 전개된다면 목표시한인 2005년에 회원국들이 교육시장을 개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올해가 교육시장 개방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달 31일까지 회원국들의 입장과 회원국들간 협상 결과를 담은 1차 양허안을 제출하고, 이후 멕시코에서 제5차 각국 장관회담을 통해 향후 이행 일정을 결정하도록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서비스 시장에 분류되어 있는 교육개방을 부동산, 보험 등과 함께 1차 양허안에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WTO에서 교육시장 개방은 국가들간 입장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대학교육, 성인교육, 직업훈련 등을 개방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들은 다양한 교육기회의 제공을 명분으로 위 세가지 외에도 초?중등교육 시장의 개방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중국, 대만 등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적어도 고등교육의 개방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일본정부도 교육의 공공성과 각국 여건의 차이를 들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대학교육의 개방을 반대하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도 공공성을 감안해 초?중등교육 분야를 개방대상에서 제외하되 이미 개방이 이뤄진 고등교육과 성인교육 부문에서 비영리학교법인을 조건으로 전문대 이상의 대학 또는 어학교육 등을 목적으로 한 학원의 설립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같이 교육시장 개방 협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WTO, 회원국 정부, 관련 단체들간에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시장 개방이 WTO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추진되고 있는 것에 상응하여 각국 교육단체들도 국제적 연대를 전개하고 있다. WTO는 교육시장을 포함한 서비스분야의 개방이 회원국들의 개발과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밝은 미래를 제시하고 있지만, 교육단체들은 교육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광고, 통신, 건축, 부동산, 법률 등과 한묶음으로 시장에 개방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 유엔이 정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도 교육기회의 평등을 천명하며 무상 초등교육과 점진적인 무상 고등교육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민교협, 민변 등 관련 단체들이 WTO의 교육시장을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같은 취지의 국제교육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각국 참석자들은 교육시장 개방이 중등학교에서 맥도날드 햄버거 배달 교육이 직업훈련으로 채택되는 것에서 보듯이(호주 빅토리아주의 사례), 상업성이 공공성을 잠식하여 교원의 근무조건 악화, 교육재정의 상업자본으로의 종속 등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지적은 교육개방이 서비스분야 개방의 일환으로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경우의 폐해와 교육의 공공성 및 기회 균등의 원칙 그리고 각국 교육의 문화적 특성을 망각한 처사라는 비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교육개방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할 때 개방의 범위와 속도를 조절하되, 열악하고 부실해진 교육현실을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3월 말 WTO에 양허안을 제출하기에 앞서 관련 단체와 협의하기로 한 만큼 관련단체들과 충분한 협의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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