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 / 문학비평가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발표된 내각명단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인사가 만사라는 이유 때문일까. 역시 그 관심과 열기는 뜨거웠다. 언론들은 그 인사의 성격을 ‘파격’ 또는 ‘신선’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새로운 장관들의 임명을 둘러싼 이러한 평가의 핵심에는 여성들의 약진이라는 현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정부의 핵심부처에 4명의 여성장관이 임명된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사항처럼 보도되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양성평등의 신념이 발현된 결과라는 해석도 뒤따랐다. ‘신선·파격’ 시선 이면에 드리워진 노골적 여성차별 구조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신선하지도 파격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4명의 여성장관이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두고 파격과 신선을 느낀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그만큼 남성중심의 문화와 권력의 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미진하다고 받아들일 때,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지수는 높아갈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며, 그것은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평등한 사회라면, 정치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비율이 50%는 되어야 합당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한국사회의 모든 분야,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핵심 분야에서 여성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한국사회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성격을 근근히 유지하고 있다는 대학에서조차, 몇몇 여대를 제외하면 총장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 교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공부하는 여성이 없기 때문에? 공부하는 여성은 많지만 학문적 역량과 재능을 가진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물론 천만의 말씀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사회 전체가 여성에 대한 암묵적이거나 노골적인 차별을 구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출생의 순간에 시작되어 죽음에 이르러 종결된다. 때문에 한 여성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 구조적 차별의 질서를 뚫고 남성들과 동일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으로 일정한 세속적 성취를 이룬 여성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남성들에게는 가해지지 않는 끈질긴 감시와 부당한 평가에 직면할 확률이 높다. 야만 깨는 첫발걸음, 대학내 성차별 문화 없애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것은 물론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해법도 필요하다. 가령 ‘여성인재 할당제’와 같은 것이 제도적인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여성의 사회로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인 해법만으로는 완전치 않다. 제도적인 차별이 철폐된다고 할지라도, 성차별적인 남성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완전한 양성평등은 불가능하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특히 대학생들이 심각하게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이성의 성숙기’를 보내는 시기이자, 이후의 사회적 활동에 필요한 문화적 관습과 행동원리를 내면화하는 공간이다. 게다가 대학이라는 공간은 여타의 사회적 공간보다, 인간해방과 차별철폐에 대한 평균적인 문제의식이 높은 곳이다. 그런데 적어도 여성차별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남성들조차 꽉 막힌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평균적인 의식을 가진 많은 수의 남성들은 고생스러웠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3년 동안의 군대생활을 빼놓지 않는다. 폭력과 자유의 차압이라는 불쾌한 경험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3년의 세월은 여성차별의 그 지난한 인류 역사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미미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거의 1900여 년 동안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존중받지 못했으며, 한 개인으로 치자면 평생에 걸쳐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차별과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믿기 힘든 야만의 세월이다. 양성평등을 실천해 보자. 일상적인 문화로부터. 그것은 야만을 깨뜨리는 소중한 역사의 발걸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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