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사고가 발생하자 언론은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강하게 질타했다. 철저한 재난대비책도 세우고, 안전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대구 지하철 사고와 같은 재해는 안전설비를 제대로 갖추고, 재난대비훈련을 충실히 한다고만 해서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다.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외면하는 주변사람에 대한 분노가 무차별 범죄로 이어진 불행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재산이나 지위나 학벌에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답게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룬 언론 보도 중에는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존엄성을 모독하는 보도가 적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서도 방송사들은 여전히 오락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생지옥에서 간신히 빠져 나온 부상자들에게 기자들은 거침없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나 가장 모욕적인 것은 희생자들의 생명에 값을 매기는 보도였다. 사고 발생 다음날, 미처 사망자의 신원과 숫자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희생자 1인당 보상받을 수 있는 액수가 얼마라고 상세하게 보도했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에는 얼마를 받았는데, 이번 사고에는 얼마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기까지 했다. 한국 언론은 보상금 계산에 그치지 않고, 성금 모으기 경쟁까지 벌였다. 9시 TV뉴스가 끝나면 액수의 크기에 따라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이 화면을 스쳐지나갔고, 신문지면 역시 성금액수의 자릿수 순서대로 기부자의 이름이 실렸다. 그러나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에게 시급한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홍수나 산불로 하루아침에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인 지원이 우선이겠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시신을 수습하고 실종자를 확인하는 작업이 훨씬 시급했다. 충격에 휩싸인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규명을 하고 책임소재를 가려,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이 먼저 해야할 일인 것이다. 진실규명, 근본원인 천착이 언론 본연 임무 이를 위해 언론이 담당해야할 몫은 왜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는지 국민들로 하여금 깊이 성찰토록 하는 것이다. 대구 지하철 사고가 자신의 어려움에 무관심한 사회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결국 곤궁하고, 차별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을 보이고 배려해야겠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또 다른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도 반성하고 변해야 했다. 한국사회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이유 중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보다는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인 언론 탓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하면서 조차도 언론은 과거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3월 4일자 조선, 중앙, 동아, 세계, 국민, 대한매일 등 주요 신문에는 서울대에 합격한 후 대구 지하철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여학생의 애절한 사연이 실렸다. 그녀는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했을 테고, 그녀를 뒷바라지 해주었던 부모의 아픈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유독 그 부모의 고통을 강조한 언론의 보도 태도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를 잃은 부모의 슬픔에 관한 보도가 아니라, 일류대에 합격한 딸을 잃어 애통해하는 부모에 관한 보도였기 때문이다. 학벌 조장·약자차별 보도관행 언제까지… 희생자가 만약 재수생이었다면, 지방대학 입학 예정자였다면 그렇게 여러 신문과 방송에서 일제히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일부였긴 하지만 한국언론은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에게까지 학벌주의 잣대를 들이대고 차별한 것이다. 잘난 사람만 대접하고 못난 사람은 무시하는 한국사회의 풍조가 결국 대구지하철 사고와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한국언론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듯 보여 안타깝다. 낮고 어두운 곳에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돈과 권력 주위를 하이에나 떼처럼 맴돌아온 한국언론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일까? 대구 지하철 참사만큼이나 한국 언론이 부끄럽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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