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대학 교수들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소위 SSCI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SCI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회과학분야에 SSCI라는 인덱스가 있고 또 구체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관련 기사와 해당 홈페이지를 방문해 수록된 학술지들의 제목을 읽어 보고 나서야 이것이 요사이 신문지상과 대학교수 공고에도 등장하는 내용임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여러 교수들과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SSCI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대학은 물론 학술관련 단체들이 SSCI가 마치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인양 혹은 국제적인 수준의 연구 질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돼는 등 몇가지 슬픈 단면을 발견했다. 이는 첫째, 한국의 대학들은 아직도 교수들이 수행한 연구논문의 질을 평가하는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근 교수들의 업적 평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마다 교수들의 연구, 교수, 그리고 봉사 활동에 대한 평가장치를 만들어 활용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교수들의 연구업적을 적절히 평가할 방법이 없어 분쟁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연구논문의 숫자만 세어 오다가 갑자기 질을 평가하라고 하니 다들 고개를 숙이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사실 연구의 질을 평가한다는 것은 몇 가지 평가기준을 설정해 그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는 측정(measurement)수준의 작업은 아니다. 그것은 학문공동체의 집단적인 공감대에 바탕을 둔 지속적이고도 체계적인 자료수집과 의사결정을 동반하는 가치지향적 평가(evaluation)에 가까운 작업이다. 때문에 해당 학문공동체가 성숙되어 있지 않거나 오랜 기간동안 연구의 질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져 오지 못했다면 연구의 질 측정은 요원한 문제가 되고 만다. 둘째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SSCI가 과연 연구의 질을 측정하거나 대변해 줄 수 있는 충실한 지표인가 하는 점이다. 말 그대로 “사회(social)"과학인데 어떤 식으로 또 어떤 논리로 국제적인 인덱스 내지는 지표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필자가 연구하는 교육학 분야를 보면 SSCI에 올라가 있는 대부분의 저널은 역시나 미국 및 영국의 저널이다. 그 중 국제적인 이슈에 관심이 있는 저널들도 있기는 하나 그 수는 미미한 수준이다. 심지어는 학술지라기 보다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잡지 성격이 강한 것도 있는데 SSCI의 저널선정 기준을 의심케 하는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기에 한국의 교육학자가 한국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논문을 SSCI학술지에 기고하여 채택될 확률은 낮다고 보인다. 학술지 편집자들도 대부분 영미의 학자들이기에 적절한 심사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이다. 결국 SSCI를 강조하면 할수록 한국의 학자들이 한국의 문맥을 살리는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해 국제화 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 들 수도 있다. 셋째, 중국, 일본, 등의 경우 몇몇 교육학 관련 저널들이 SSCI에 올라와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국을 대변하는 교육학 저널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SSCI에 속한 저널에 논문을 내려고 하기보다는 한국의 저널 한 가지라도 SSCI 목록에 올리려 노력하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필자가 아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런 식의 발상 전환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SSCI에 수록된 논문에 출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관심사다. 필자는 SCI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 별달리 할 말이 없으나 사회과학 분야의 논문평가를 위해 SSCI가 널리 활용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해당 학회의 회원간에 활발한 토의를 통해 논문의 질을 평가하기 위한 틀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런 토론 없이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도 잘 모르는 외국 인덱스에 집착하는 한 한국 사회과학 이론의 발전과 국제화는 요원한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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