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는 언제나 정치적 명분을 내세운다. ‘독재자를 응징하고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든지 아니면 ‘대량살상무기생산을 막기 위해서’라는 등의 정치적인 이유 말이다. 오늘날 세계경찰 역할을 자처하는 미국은 국제법을 무시하면서도 자신들의 대외정책과 군사적 행동이 ‘정치적으로 옳음(politically correctness)'을 확신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옳고 그름이 진리나 선악의 기준이 될 수는 없으며, 정치적인 옳음이 다른 가치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가령 정치적으로는 옳더라도 도덕적으로 그를 수가 있고, 정치적으로 옳더라도 문화적으로는 잘못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정치적 옳음이 도대체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가 있겠는가. 이라크전의 장기화 전망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런 정치적인 옳음의 또 다른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역사는 언제나 강자의 편이었다. 성공하면 혁명이 되고 실패하면 쿠데타가 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확인해 왔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도 강자의 논리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끌려가고 있다. 그 논리는 언제나 ‘정치적인 옳음’으로 치장되고 있다. 신유고연방의 내부적인 민족분쟁에 미국 주도의 나토군이 무력으로 개입해 세르비아를 공습한 것도 정치적으로는 옳았고, 뚜렷한 물증도 없이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빈 라덴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기근과 가난에 찌들려온 세계최빈국 아프가니스탄을 폐허로 만든 것도 정치적으로 옳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수행한 이런 전쟁이 정치적으로 과연 옳은가 자체가 논란이 될 수 있겠지만, 설령 정치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모든 다른 가치를 상쇄할 수 있는 정당성과 명분이 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모래폭풍 속에서 전개되는 이라크전쟁 이후 세계경제는 또다시 모래폭풍 속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더라도 추가테러, 무역마찰, 북핵 등의 악재가 남아있어 세계경제의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옳은 전쟁이 경제적으로는 옳은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난 전비를 쏟아 붓고 세계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뒤, 이라크 유전에 대한 이권은 미국이 독식하고 이라크 전후복구사업에 대해 열강들은 엄청난 경쟁을 벌일 것이 뻔한데, 이런 것이 과연 경제적으로 옳은 것인가. 파괴한 후 재건설하는 경제가 경제적인가. 문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이유이든지간에 전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폭력으로 인위적인 질서를 강요하는 전쟁은 가장 반문명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가지는 전쟁으로 인한 문화유산의 파괴이다.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진원지로 살아있는 인류의 역사현장이며, 문화재의 보고이다. 이런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파괴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미국의 폭격으로 특히 무술과 티크리트 지역, 그리고 바그다드 시내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훼손되었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지식인들이 계속 침묵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문화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문화재의 파괴는 곧 역사와 문명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의 사무총장 고이치로 마쓰우라는 이라크는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문명의 요람으로 이곳에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인 보물과 유적지들이 무수히 있다는 점을 환기시켰고, 이라크 문화재보존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를 위해 미영연합군이 신중한 폭격을 한다는 보도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한편, 기독교 국가 미국이 가공할 폭격을 하고 있는 이라크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동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태어난 고향, 우르가 위치한 지역이라는 점은 종교적인 아이러니이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옳은 것이 경제적으로 무모할 수도 있고 문화적으로 반문명적일 수도 있으며 종교적으로 모순일 수도 있다. 설사 정치적으로 정당하더라도 그 속에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정치적인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전쟁이라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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