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온갖 형태의 미디어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관련 소식으로 도배되고 있는 요즈음 새삼스레 떠오른 질문이다. 언론은 새로운 소식 곧 뉴스를 취급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전달하는 것은 언론활동의 기본이다. 그래서 언론의 일차적 사명은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 된다. 아무도 사실에 입각한 보도의 가치를 폄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사실이 반드시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의 축적 없는 진실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실들의 단순 합이 곧 진실이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때때로 특정한 사실들만의 조합으로 진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미국의 바그다드 공습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언론은 대체로 사실에 충실한 보도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어디에 미사일 몇 발이 발사되었고 특수부대는 어디에 투입되었는지를 꼼꼼히 짚어주는 중계식 보도는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언론이 '이라크전 6가지 관전 포인트' 식의 기사를 통해 전쟁을 마치 흥미진진한 운동경기나 컴퓨터 게임처럼 묘사하고 폭격에 사용될 첨단무기를 필요 이상으로 상세히 소개하는 등의 몰상식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최소한 사실관계를 왜곡하지는 않았다. 전황을 전하고 군사전략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전쟁보도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폭격의 뒤안길에는 파괴된 가옥들과 건물의 잔해, 유혈과 시신 등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는 축소되거나 때로는 무시되면서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전쟁의 참상에 대한 갈증은 아랍어 종합뉴스 위성방송 채널인 알 자지라를 비롯한 아랍권 매체와 인터넷에 기반한 대안언론 등에 의해 해소될 뿐이다. 전쟁 당사자들의 움직임도 관심거리이지만 전쟁의 본질에 접근하는 첩경은 '충격과 공포'를 야기한 극한 대립의 원인을 짚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는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일지식으로 정리하면서 후세인 정권이 '악의 축'으로 자리잡게 된 사연을 모자이크하는 차원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후세인과 부시 부자의 악연'을 들먹이는 말초적 보도도 있었다. 그나마 일부 언론이 침공의 명분 속에 감추어진 본질, 즉 석유를 둘러싼 이권이나 미국의 패권주의 등을 거론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아랍의 역사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지도 위에다 연필로 국경을 임의로 분할하던 '처칠의 팔꿈치'(Churchill's elbow)가 미끄러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의 경계선이 급격히 휘어졌다는 얘기가 전해오는데서 알 수 있듯이 한 형제였던 아랍인들의 역사가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된 것은 오늘의 전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언론의 이라크전 보도는 이처럼 사실에의 과도한 집착과 특정한 사실의 강조 또는 은폐, 본질보다는 현상 위주의 선정적 접근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번 전쟁에 관한 단편적인 사실의 조각들은 확인할 수 있을지언정 진실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일에 가깝다. 진실을 밝혀주기는커녕 진실을 호도하는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도 전쟁을 생중계하면서 기세를 올린 CNN 중심의 걸프전 보도에 비해 정보내용이 다양해지고 정보유통이 다변화된 오늘의 매체환경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까. 역시 진보는 매우 느린 속도의 걸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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