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진 /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이라크 전의 전황보도가 연일 신문지상을 채우고 있다.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고, 전쟁이 장기전화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반전여론도 더욱 드세어지고 있다. 전쟁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우리나라로서는 한편 전쟁이 일찍 끝나기를 바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일단 벌어진 전쟁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우리나라의 경제를 위하여, 우리는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결국 그 경우 전쟁의 승자는 연합군이 될 터이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약소국가가 설 땅이 좁아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쟁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파병요청이 있었고, 인권위원회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취지의 성명이 있었다. 결국 국론의 분열은 국가기관에까지 이른 셈이다. 초등학교 2-3학년 때 닭을 잡는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애써 기르던 귀여운 닭의 목을 비틀어 잡고 털을 뽑는 모습이 끔찍하고 잔인하게만 생각되었다. 왜 정직하고 착하게 살라고 하시던 어른들이 저렇게 닭을 죽이는가? 문제는 내가 닭요리를 맛있게 먹었다는 점이다. 누군가 닭을 잡지 않으면, 닭을 먹을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상급생에 이르러서이다. 내가 끔찍하다고 닭을 잡지 않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그 일을 미루는 것일 뿐이었다. 결국 중학교 때쯤, 어머니 대신 내가 닭을 잡기 시작하였다. 고기를 먹으면서, 백정을 업신여길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경제원론을 가르칠 때 장화와 포장의 이야기를 한다. 열 집이 모여 살고 있다. 큰 길까지 나가는 진입로가 진흙탕 길이어서 돈을 모아 진입로를 포장하자는 제안이 있다. 포장비용은 100만원이니까, 한집이 10만원씩 부담하면 된다. 포장하지 않고 각자가 장화를 사 신으면, 가구당 4식구분의 장화값 20만원을 부담하여야 하므로, 결국 모든 가구가 10만원씩 절약되는 셈이다. 이러한 좋은 제안도 실제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10만원을 부담하는 것이 낫지만, 잘 하면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남은 아홉 가구로서도 장화값 180만원보다 포장비 100만원이 싸니까, 내가 빠져도 다른 가구들이 포장하겠지. 이것이 잘 알려진 무임승차의 문제이다. 아, 정의의 관념은 달리 말한다. 그렇지만, 기실 다른 가구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 내가 10만원을 내도 결국 다른 사람들이 분담액을 내지 않아서, 결국 포장이 무산될 수 있다. 그 경우에 분담금도 내고, 장화도 사야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분담금을 내기 않고 기다려야 한다... 퍼즐은 이렇다. 자발적 합의에 의하여 진입로가 포장될 수 있다고 치고, 위의 네 가지 상황 중 최선의 전략인 분담금을 전혀 내지 않는 전략보다, 더욱 나은 전략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포장이 포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포장을 반대하는 것이다. 반대하는 이유는 개인적 취향이든 자연보호는 아무래도 좋다. 이 경우, 남은 아홉 가구는 사회적 잉여 중 얼마간을 반대자에게 뇌물로 줄 용의가 생기게 된다. 단순히 포장의 문제라면, 이러한 처신은 성공하기 어려울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안이 조금 복잡해지면, 실제로 유사한 처신이 생겨나고 또 적지 않게 성공하기도 한다. 댐을 질 때마다 보상금을 노리고 수몰지구의 과수원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닭을 잡는 문제도 결국 같은 셈이다. 잘하 면, 명분도 챙기고 이득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실 닭을 잡는 것을 회피하거나, 포장을 반대하는 것이 꼭 용기로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비겁해 보이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일 수 있다. 공자는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행하지 않는 것을 비겁이라고 불렀다. 무엇이 행해야 할 일일까? 결국 민중의 삶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가치와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닐까? 명분과 실리를 함께 좇는 것이 아니라, 내 의견대로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졌을 때, 민중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책임 있게 검토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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