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희 미원상사 연구소 연구부장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가 조만간 국내 대학에선 처음으로 글쓰기 교실의 문을 열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육과 상담을 시작한다고 한다. 논술고사 없이 입학한 대학생들이 글쓰기와 토론 등의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대학 나름대로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것이 이번에 결실을 맺은 모양이다. 그동안 대학의 서열화와 집단 정신병 수준으로 고착화된 학벌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별다른 노력을 안 하고도 우수 신입생은 싹쓸이 하듯 독점하고 재정적으론 교육부의 온갖 특혜 지원을 받으면서도 창조 능력 평가면에선 세계에서 수백등 한다 하여 비난을 들어온 서울대가 내놓은 이번 계획을 보며 필자는 서울대가 오랜만에 한국의 많은 대학 속에서 그 자신의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래에 지식의 창조와 확산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에서 글쓰기를 교육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식의 창조를 그 훈련 과정의 한 부분으로 하는 대학원 교육과정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여태까지의 우리의 대학원 교육은 심히 유감스러웠다. 필자가 국내외의 여러 기관을 전전하면서 만난 수많은 석, 박사 학위 소지자들로부터 그들의 학위 논문 작성에 대하여 지도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는 소리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 대부분이 그들의 모교가 하늘만큼 높은 수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아마 필자도 영국 유학생활 과정 동안의 소중한 경험이 없었다면 우리의 그런 현실이 아직도 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필자가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는 글쓰기를 유난히 강조했다. 지도 교수의 설명으로는 좋은 언어(영어)로 논문을 작성하는 능력 자체가 학위 심사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필자의 지도교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학생이 쓴 학위 논문 초고를 집에까지 들고가 한 줄 한 줄 교정을 해주었다. 일일이 설명을 곁들여가며 직접 교정까지 봐주는 것은 이미 지도교수의 고유한 학생 지도의 한 부분이었다. 비록 그곳의 모든 학생이 학위과정 동안 필자가 경험한 것 만큼의 세심한 글쓰기 지도를 받는 건 아니라고 해도 학교 전체 분위기가 글쓰기를 대단히 강조한 것만은 사실이다. 학위 논문 작성에서 총 글자수 제한도 있었다. 요약문은 몇 페이지 이내로 작성해야 하고 본문 또한 이공계는 6만자 이내, 인문사회계는 8만자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좋은 글로 쓰면 이 제한 글자수 이내에서 모두 작성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우리 신문이나 잡지에 기사화 되는 과학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종종 본다. 심지어 어떤 문장은 주어 동사도 구분 할 수 없이 작성되어 문장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생의 글쓰기 능력의 심각성은 정부 연구비로 연구 종료 후 제출하는 연구보고서를 보면 더더욱 실감난다. 작성자가 모두 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엔 초등학생 수준의 문장이라고도 여겨지지 않는 연구보고서가 즐비하다. 그래도 그들 모두가 심사에서는 무사 통과했으니 그 수준이 현재 우리 과학계의 상식 수준인 셈이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지식이 곧 힘과 부의 원천이다. 그리고 지식의 생산과 대중에로의 신속한 전파는 그 사회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사항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핵심에는 글쓰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서울대의 글쓰기 교육은 늦어도 많이 늦었다. 그러나 아직 발상조차 하지 못하는 대다수 많은 대학에게는 좋은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아무쪼록 이번 서울대의 글쓰기 교육 시도가 계기가 되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과 대학원 교육계로 확산되어 지식기반 사회의 기초가 튼튼해지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