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갈등은 해소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에 대한 교육계내의 반목은 증폭되고 있고, 새만금 간척지 사업을 둘러싼 대립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대미 외교정책을 둘러싼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견해차이도 쉽게 좁혀질 것 같지 않다. 한편 이창동 문광부 장관은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이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증폭시켜 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언론탓”을 중단하라면서 “국정의 난맥상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정부는 언론의 비판에 귀를 막기보다 겸허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훈수했다. 중앙일보도 “언론의 사명을 십분 이해하고 그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할 주무 장관이 언론의 건전한 비판을 '갈등 증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언론보도 때문에 한국 사회의 갈등이 증폭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론이 다른 뉴스 소재보다 갈등현상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새만금 사업,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화물연대파업 등에 관한 언론보도를 보면, 사태가 갈등국면으로 번진 후에야 많은 시간과 지면이 할애되었다. 여기에는 보수언론이건 진보언론이건 큰 차이가 없다. 반면 갈등 해소의 방법에 대한 신문 사설에는 상반된 입장이 나타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못해먹겠다”는 발언에 대해 한겨레는 노무현 정부가 “애초 내걸었던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해소 원칙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단호한 대처'라는 극단적 처방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나라 전체가 갈등과 혼돈의 늪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으니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라며 대통령을 거들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정부가 “나라를 지키고 운영하는 근본인 법을 철저하게 수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작금의 위기상황에는 언론에게도 책임이 있다. 오히려 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갈등해소 기능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익과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 때 언론은 공동체 내의 대화와 타협의 매개체가 된다. 민주주의 사회는 언론이라는 공론장을 통해 형성된 여론을 바탕으로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언론은 공론장이라 보기 어렵다. 자신들의 주장만 반복해 외치는 확성기에 가깝다. 보수이건 진보이건, 신문의 기사나 사설이나 칼럼은 대개 동일한 의견들로 채워진다. 반대의견에 지면을 내주는 신문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찬반 격론이 벌어지는 방송토론이 노무현 대통령 취임이후 유행하고 있지만 진정한 토론은 드물다. 토론이란 대화를 통해 진실에 도달하거나 합의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방송토론은 궤변과 억지를 통해서라도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목소리로 넘쳐난다. 언론이란 공론장을 통해 갈등해소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수를 자처하던, 진보를 표방하던 한국의 언론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다르거나 주장이 다른 사람들은 배제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의 이념적 획일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다원화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요구가 여론의 주목을 받지도 정책에 반영되지도 못한다. 언론으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은 시위나 파업과 같은 극단적 행동을 취해서라도 자신들의 입장을 주위사람들에게 알리려 한다. 그래야만 언론이 관심을 보이고 정책결정자들이 주목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사회가 월남전 반대와 흑인평등권 쟁취를 위한 거리투쟁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졌을 때, 지각있는 미국의 언론인들은 불법시위를 비난하거나 무능한 정치인들을 탓하기 전에 국민들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반성했다. 그 결과 당시 ‘국법질서를 문란케한’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은 언론의 충실한 보도로 정당한 사회적 평가를 받았고,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기둥으로 남게 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 언론들은 현재의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집단이기주의나 국가기강해이 탓으로 전가하고 있다. 시위나 파업과 같은 극단적 행동은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생긴다는 사실을 한국 언론이 자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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