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 본지 전문위원,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홍익대 겸임교수

서울대학교가 대학원 후기 박사과정 모집에도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되는 사태를 가져왔다. 이공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인문계마저도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하였다. 그동안 정부와 대학에서는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화의 흐름에 걸맞게 국가 경쟁력 신장과 대학의 수월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막대한 국고를 지원하고 대학의 다양화·특성화를 독려하며 고급인적자원 육성에 많은 노력과 관심을 쏟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한국 사람들이 지극히도 선망하는 명실공히 한국의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원 박사과정 모집에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사실은 놀랍다 못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국내에선 확고부동의 최고 위치를 고수하면서 최상의 교수진과 우수한 학생들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우쭐거리던 ‘한국 최고 명문대학’의 명성은 실상이 아니고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언론에서는 서울대학교의 2002년도 SCI 등재 논문 편수가 세계에서 34번째로 세계 유수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들 대학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 지원과 연구 환경하에서도 짧은 기간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렸다고 넌지시 추켜 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연구실적을 낼 수 있는 탁월한 교수가 있음에도 그들에게서 수 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던 우수하고 영악한 학생들이 모교에서의 최고 학위과정을 외면하고 있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한 이유를 몇 가지 들자면, 먼저 국내 대학원 박사과정에서의 전문가 부족과 프로그램의 부실화를 지적할 수 있다. 전문가 부족과 프로그램의 부실화는 대학원 전임교수의 부재와 더불어 대학원에서 전문지식을 익히고 고도의 과학기술을 연마하기에 필요충분조건을 채우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간에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전공분야 학습을 위한 도제관계가 학문의 전문성 신장보다는 인간관계에 치우쳐 ‘내 사람 만들기’에 주력하면서 ‘학문의 동종번식’에 급급한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열악한 연구환경과 미흡한 재정지원을 들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은 논문지도조차 충실히 받을 수 없는 이름뿐인 지도교수 아래서 온갖 일을 다 하면서도 등록금 충당하기에도 부족한 연구비를 받아가며 귀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외국의 유수 대학에 가서 훌륭한 설비와 더불어 고도의 전문적 자질을 갖춘 교수의 지도 아래 충분한 연구비를 받아가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장래 입지 선택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과도한 학력·학벌사회의 풍토에서는 서울대학교에서 학부,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외국에서(특히 미국) 박사학위를 획득한 사람은 전문직 취업에 소위 ‘0 순위’의 최우선권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독일, 캐나다, 미국에서 수 년 동안 만학으로 여러 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많은 한국 유학생을 만났고, 그들이 유학생활을 하는 여러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비롯한 여러 전문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눈여겨 보아왔다.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나름대로의 여건과 환경 속에서 선진 학문을 배우고 익히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으나, 일부는 선진 학문을 충실히 익히는 일보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 '요직(?)'을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 요령과 잔꾀를 부리며 요구학점을 따고 논문을 마무리하여 최고 학위를 획득하는 ‘소아적 식자’(小我的 識者)도 더러 있었다. 만일 금번 서울대학교 박사과정 지원 미달 사태가 필자가 지적한 첫 번째나 두 번째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우리 정부와 대학은 고질적인 ‘탈 국내박사’ 질환에 걸린 국내 대학원 교육을 올바르게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전을 제시하여 정상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노파심에서 언급하지만 서울대 박사과정 지원 미달 사태가 소아적 식자의 지향성에서 기인된 마지막 이유에 해당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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